“걷지를 못해서 아기 발이 됐어요.”

김성순(가명, 75세) 어르신이 뽀얀 발을 내밀며 말했다. 굳은살 하나 없는 매끈한 발바닥은 그녀 말대로 75세 노인의 발이 아니다. 2년 전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 노상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때라 하루라도 장사를 접으면 타격이 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병원에서 권하는 주사만 맞았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어르신의 다리

“이제는 아예 다리가 펴지질 않아요. 이렇게 굽었잖아요. 하루라도 벌어야 먹고 사니까 병원에 간 건데…… 지금은 아예 못 쓰게 됐어요.”

거동할 수 없어지자 유일한 생계 수단인 행상도 접어야 했다. 살길이 막막했다. 자식들과는 연이 끊긴 지 오래였고, 유일한 수입은 기초연금 209,965원뿐이었다. 다행히 그때 <마포 노인복지센터>를 만났다. 임진주 복지사(마포 노인복지센터)는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처음 만나 뵀을 때 점점 건강이 나빠지시던 상황이었어요.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시니까 잠자리 옆에 모든 물건을 쌓아놓고 생활하셨어요. 대소변 처리나 청소를 혼자 하실 수 없어 지원이 시급했어요.”

다행히 작년 <마포 노인복지센터>를 통해 만난 봉사자가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해 청소와 장보기 등을 돕고 있다. 센터에서는 좌식 생활을 해야 하는 그녀의 상황에 맞게 싱크대의 높이도 개보수했다. 최대한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월 20여만 원의 수입은 밥을 먹고, 공과금을 내고, 약을 사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힘이 되어준 건 아름다운재단의 <홀로 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이다. 아름다운재단은 2003년부터 김성순 어르신 같이 홀로 생계를 이어가는 복지 사각지대 어르신들에게 최대 3년간 매달 10만 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마포노인복지센터에 근무하는 두명의 여성 실무자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마포노인복지센터 임진주 사회복지사(좌), 이은혜 팀장(우)

이은혜 팀장(마포 노인복지센터)은 <홀로 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은 “한 줄기 빛”과 같다고 말한다.

“김성순 어르신은 기초연금 20만 원이 수입 전부인데, 다리가 아파 일을 전혀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홀로 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이 없었다면 기본적인 식비나 병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위급한 상황이었죠. 이 지원 덕분에 어르신이 전보다 조금 더 잘 챙겨 드시고, 약도 꾸준히 먹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에요.”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는 지원을 위해

생계비 지원의 장점은 무엇보다 당사자가 자유롭게 그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은혜 팀장은 이런 현금 지원이 흔치 않다고 말한다. 수술비나 위기 가정을 지원하는 현금 지원이 있지만 대부분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고, 지원도 일시적이다.

임진주, 이은혜 사회복지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회복지사로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르신의 자유의사 존중이에요. 늘 어르신 선택을 우선으로 봐요. 현물은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다른 사람이 구입해서 드리는 거라면 현금은 정말 말 그대로 스스로 어디에 쓸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거잖아요. 어르신이 먹고 싶은 코다리를 살 수도 있고, 필요하면 운동화도 살 수 있고 자유롭게 본인 삶에 필요한 것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어르신들의 삶에 도움이 되죠.”

지원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밝아진 김성순 어르신의 표정이다. 처음에는 누워만 있던 그녀가 이제는 앉아서 복지사들을 맞이하고 대화도 많이 나눈다. 작년 초만 해도 복지사들이 집에 들어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다리 아픈 김성순 어르신이 문을 열어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복지사들에게 열쇠를 맡겼다. 그만큼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얼굴만 봐도 표정이 많이 달라지셨어요. 처음에는 누워만 계셨는데, 이제는 앉아도 계시고 웃기도 하시고. 필요한 부분도 얘기하시고, 감정 표현도 많이 하시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저희에게 키도 나눠주셨잖아요. 큰 변화에요. 마음을 열어주시는 게 느껴져요.”

어르신과 어르신댁에 방문한 재단 관계자가 두손을 포개어 맞잡고 있다

김성순 어르신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정기적 지원’ 덕분이다. 3년이라는 제한적 기간이지만, 정기적으로 현금이 지원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삶의 활력이 된다. 생계비 지원을 받은 뒤 김성순 어르신은 매달 영수증을 모으고 있다. 영수증을 보며 생활의 필요를 확인할 수 있고, 다음 지출도 계획할 수 있다. 지원받은 생계비 10만 원은 주로 약값과 공과금, 식비로 쓴다. 덕분에 간헐적으로 복용하던 당뇨와 혈압약을 꾸준히 먹게 됐고, 더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어르신이 생계비 지원금을 어디에 쓰셨는지 정성스럽게 모아놓으신 영수증 사진

“김성순 어르신이 생계비 지원금을 쓰시면 영수증을 모아주세요. 병원비, 코다리, 콩, 돼지고기도 가끔 사 먹고 공과금도 내시고요. 이렇게 잘 챙겨서 TV 위에 모아주셔요. 영수증을 내실 의무는 없는데, 본인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시고 하시는 거예요.”

두 복지사는 이런 생계비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공부조가 늘어나도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하고, 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민간의 후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생계비가 필요한 분은 계속 새롭게 발견돼요. 저희 센터에서만 1년에 40명 이상이죠. 송파 세 모녀 사건의 경우도 생계비 지원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이 없을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지원이 계속되면 좋겠어요. 이런 지원이 열 명에게 가능하다면 그 열 명도 언제든지 신청 가능할 만큼 현장에서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글 우민정ㅣ사진 김권일

 

홀로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 [케토톱홀로사는노인지원기금]으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케토톱홀로사는노인지원기금]
은 아무도 찾아 와 주지 않는 단칸방에서,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냉장고 대신 방문 앞 조그만 계단에 음식을 보관하는 홀로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금입니다.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14%를 넘으면서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정부의 지원으로 기초연금, 노령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 중이지만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중복 지원이 어려워서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2003년부터 가족의 돌봄없이 홀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에게 최대 3년간 매달 1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은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와 협력사업으로 진행하며, 주거비, 의료비 등 어르신들이 각자의 용도에 맞게 지출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하여 경제적·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