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밀조밀 재봉틀로 손수 디자인한 쪽빛, 카드 지갑. 파우치는 물론이고 앞치마도…… 재봉틀을 다루게 된 지는 이제 1년 남짓이었지만, 김수정(가명, 47) 씨의 솜씨는 보통과 남달랐다. 그렇게나 뛰어난 재주를 꽃피우는 그녀의 일터는 구로삶터지역자활센터의 알뜰가게. 그녀는 재봉틀로 상품을 제작한다. 그리고 더러는 매장에서 손님도 맞이한다.
이제껏 그녀의 삶은 실로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한결같이 웃음기 머금은 활발한 성품으로 전력 다해 삶을 달려왔다. 그야말로 이를 악다물고……. 그래서 그녀의 치아가 그토록 손상됐는지도 모르겠다. 그간 그녀의 치아는 제법 상해 버렸으나 그녀는 치아를 챙길 삶의 여력이 없었다. 충치와 구취 등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치아가 늘 신경이 쓰였다. 그 같은 치아 탓에 그녀의 웃음은 주춤거리기만 했고, 그것은 그녀의 삶이 멈칫거리는 것과 동일했다. 웃음이란 그녀에게 있어 삶의 태도였으므로 정말 그랬다.
어금니 꽉 깨물고 세월을 버티다
스물한 살, 김수정 씨는 한부모 가정을 이끄느라 힘이 부쳤다. 하지만 무릎이 푹푹 꺾일 것만 같은 순간마다 하나뿐인 아들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아들은 삶의 비타민이었다. 엄마로서 결코 무너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25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세월만큼 아들은 말썽도 없이 청년으로 잘 장성했지만, 그 사이 그녀의 치아는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아무래도 치아 따위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았으나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삶을 좀먹고 있었다.
“사실 잘 먹지를 못했어요. 그리고 자고 일어났을 때 스스로 구취를 느끼니까 특히 견디기가 힘들었죠. 사회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 온 신경이 치아에 가 있었어요. 그래서 구강청결제를 항상 갖고 다니기도 했거든요.”
20년 전, 그녀가 치과에서 치료했던 크라운(치과에서 치아를 덮는 금속관을 지칭하는 표현)이 벗겨져서 떠 버렸다. 바로 그 틈새를 음식물이 메운 것. 칫솔질을 해도 좀처럼 빠지지가 않았다. 그곳에서 썩어가는 음식물 탓에 구취가 발생했다. 그뿐 아니었다. 잇몸에서 항상 피가 났고, 급기야 식사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렇게 5년을 버텼다. 그 결과, 치과에선 발치 및 신경치료 등 10개의 치아에 대해서 진단을 내렸다. 치료가 시급했지만 비용은 기백만 원이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치료를 받으려면 병원비가 많이 드니까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구로삶터지역자활센터를 통해 재단에서 지원받게 돼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 말고도 사정이 좋지 않은 다른 분들도 정말 많은데 말이에요.”
그녀는 사회활동에 자신감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저소득 근로자 치과치료 지원사업’의 나눔을 받았다. 아무래도 3년 이상 성실하게 노동을 해왔던 터라 사업의 대상자에 부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저소득 근로자 치과치료 지원사업’을 협력해줄 수 있는 치과를 수소문한 끝에 예전에 치료받던 치과에서 당장 진료를 시작했다.
웃음 없는 행복은 없다
크라운을 다시 입히는 등 아랫니 6개, 윗니 4개의 치료. 장장 6개월에 걸친 시간 동안 김수정 씨는 치료에 집중했다. 다니는 치과가 예약제를 운영하지 않아 회사생활을 하며 시간을 맞추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전력을 다해서 치과에 드나들며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는 그녀만의 웃음이 슬그머니, 그러나 당당하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직장 동료나 알뜰가게를 찾는 손님에게 더욱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을 잘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만족스러운 게 구취가 없어졌다는 점이고요. 치아의 사이사이가 새로 메워져서 양치도 편해지고, 이렇게 지원받게 돼서 지금은 불편한 부분 없이 여러모로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앓던 이를 싹 치료한 그녀. 오른편 아래쪽 어금니가 하나 빠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녀의 웃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점차 만개하는 웃음꽃은 그녀에게 찾아드는 봄소식을 또 하나 알려줬다. 사실 최근에 그녀는 임대 아파트가 당첨됐다.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거주했던 그녀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아들과 더불어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됐다.
“또 올해는 1종 보통 면허도 취득했거든요. 그래서 운전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해 봤어요. 가능하면 머지않아 1종 대형 면허도 따서 마을버스라든지, 유치원이나 학원버스를 운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서비스업도 괜찮지만 제가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라 그게 더 적성에 맞을 것 같더라고요.”
꿈이란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인 법. 치아를 치료한 후, 그녀는 수순처럼 미래를 설계했고 희망에 찬 삶을 살아갔다. 돌이키면 그녀는 그때그때 지독하게 힘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나가고 나니 벅찬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에겐 현재가 중요할 뿐이었다.
과연 치아를 치료한 효과가 행복한 삶이라면 과언일까? 아니, 진실이다. 그녀는 진료 받은 다음 그녀만의 당당한 웃음을 되찾았고, 그 웃음은 행복한 삶의 필수적인 가치였다. 웃음 없는 행복은 없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그녀는 또 다른 분들도 치과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마음 다해 소망했다.
글. 노현덕 ㅣ 사진. 임다윤
<건강한이세상기금>은 구강 보건에서 소외되는 이웃들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지속적인 사업을 전개해나가기 위한 건강한 사회를 위한 치과 의사회(건치) 회원들과 아름다운재단 1%회원들의 귀한 마음이 하나하나 모인 기금입니다.
건강한이세상기금을 기반으로 하는 <저소득근로자치과치료지원사업>은 경제적인 이유로 구강보건에서 소외되는 이웃이 없기를 희망하며 보철치교 및 치과진료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 연말에 41명의 저소득 근로자를 선정하여 2014년 한해 동안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바라보는 복지는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입니다. 주거권, 건강권, 교육문화권, 생계권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사회적돌봄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