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잇는, 나눔산책>은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님과 함께 나눔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2018년의 세 번째 나눔산책 !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했던 시간을 소개합니다. |
가을비가 서촌의 골목을 적시는 11월 저녁 역사책방,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인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줄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의 강연으로 <마음을 잇는, 나눔산책> 세 번째 자리가 진행됐다. 아름다운재단을 거점 삼아 연결된 기부자들은 마음을 나누는 아이스브레이킹 진행 후, 사회와 우리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가 평등한 도서관을 꿈꾸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후원으로 운영되는 사립공공도서관이에요. 그래서 기부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하고 많은 길을 찾아야 해요. 이곳에 오신 기부자분들께 ‘무엇이 기부를 실천하게 만들었나’를 여쭙고 싶었어요. 긴 시간이 흘렀네요. ‘누구나 꿈꿀 권리를 누리는 세상’ 저 한마디가 저희가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해 온 지난 20년 동안 붙들고 있었던 말입니다.”
공부방과 야학이 많던 시절, 누구나 ‘쟤는 복지사가 될 거’라고 장담하던 한 사람이 20년째 맡고 있는 직책은 도서관 관장이다. 사서자격증도 없어 스스로를 도서‘간장’이라 부르는 박영숙. 그가 제일 싫어하는 건 ‘자선’이다. 물어보지 않고 예측하고 재단해서 선심 쓰듯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사람과 삶을 보는 게 아니라 기준에 따라 나누고 그룹 짓는 복지체계에 환멸을 느끼던 즈음, 밥이나 옷이 아닌 책을 건네는 의미를 깨달은 그는 이후 도서관에 매진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건 이만큼이야”라고 규정하는 걸 보며 꿈이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누구도 아닌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보며 공사장 함바집에서 일하거나 중기기사를 하면 좋겠다고 말할 때, 이 세상 누가 어떤 한 사람의 꿈의 크기를 결정할 권리가 있을까 고민했죠.”
처음엔 도서관이라고 명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용인시 수지구의 40평 남짓한 지하에 책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공간을 열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책을 쌓아두고 소극적으로 빌려주는, 주로 시험공부에 최적화돼서 장애인과 학교 밖 청소년, 다문화가정 당사자가 드나들기 부담스러운 도서관이기를 거부했다. 공공도서관의 서비스는 나이, 인종, 성, 종교, 국적, 언어, 신분 등과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을 거머쥐며 도서관의 가능성을 만났다.
땅을 사고 건물을 지으며 눈치 보지 않고 맘껏 드나드는 장소, 그들로 인해 다양한 표정이 생기기를 희망했다.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은 지 20년, 박 관장은 한시도 쉬지 않고 도서관 현장의 고민과 미래 전망에 대한 답을 찾고자 애썼다. 그 사이 곳곳이 공사장이던 수지‘읍’은 해마다 최고치를 찍으며 도시로 탈바꿈했고 경쟁, 소외, 단절이 전시되는 수지‘구’로 바뀌었다. 세상의 변화는 고스란히 도서관으로 스며들었고 그때마다 박 관장은 누구나 예외 없이 마음껏 뒹굴고 꿈꿀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도서관을 그렸고 실천했다.
사회와 삶이 담긴 도서관, 시민을 탄생시키다
“설립 초기에 쥐었던 ‘결국 공공도서관은 장서를 통해 사회를 말할 수밖에 없다. 공공도서관의 장서는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말이 큰 의지가 됐어요. 현재 전국 공공도서관이 1,050여개 인데 과연 사회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키고 있는지 궁금해요.”
새로운 책을 고를 때 사회의 풍경,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다는 박 관장. 촛불혁명, 지진, 폭염, 미세먼지 등 자연재해와 기후 에너지 환경, 노인문제, 기본소득, 젠더, 정신질환, 가짜뉴스, 한반도의 변화 등 정답도 없고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는 끊임없는 질문에 하나의 답이 아닌 열린 가능성을 찾아 시도하고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절이다. 같은 목적으로 만나 맺는 관계가 아니라 삶을 공유해야 가능한 관계를 곰곰이 돌아보며 미처 경험하지 못한 논리에 당황하기도 부지기수다.
이런 급변하는 사회, 그에 따른 개인의 필요를 제공할 수 있는 장소가 박 관장이 생각하는 도서관이다. 그곳에선 비판적 사고, 창의성, 소통하는 능력, 매체·세대·나라 간의 융합이 가능하며, 저마다가 읽고 생각하고 성찰하고 상상하며 서로 소통하고 토론한다.
이것이 필요해요, 라고 요청하면 책을 빌려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적확한 서비스를 해주려고 노력해요. 몇 평의 규모, 몇 권의 책, 몇 명의 이용자, 몇 건의 대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주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삶의 장면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모두 도서관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우리 아이가 친구를 왕따 시키는 것 같아요’, ‘거절을 잘 못해서 힘들어요’, ‘아이가 2차 성징이 됐는데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남편과 30년을 함께 살았는데 소통이 힘들어요.’ 등 일상에 뿌리내린 질문으로 이용자와 만난다. 청소년 자녀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힙합에 흑인문화를 공부하려는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청소년에게 힙합 컬렉션을 부탁하며 상호작용한다.
‘나이 듦에 관하여’, ‘인공지능, 더 이상 SF가 아니다’, ‘나는 왜 이일을 계속하는가?’로 분류해 사회과학, 문학, 철학, 예술, 역사, 기술 등 십진분류 하면 흩어질 책을 한데 모은다. 영화, 잡지, 신문 스크랩도 마찬가지다. 관습적이고 추상적인 구분으로 생긴 문턱을 삶과 맞닿은 기준으로 없앤 뒤 이용자에게 말을 건다. 누구든 스스로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데 힘쓴다.
누구에게나 이사 갈 때마다 데려가지만 읽지 않은 인생의 책이 있잖아요(웃음). 그런 책을 함께 읽는 낭독회도 진행해요. 혼자 읽기엔 문턱이 있는 책이죠. 일주일에 한 번 빈손으로 온 이용자들이 둘러 앉아 소리 내어 책을 읽습니다. 『자본론』을 1년 7개월 동안 읽었던 적이 있는데 자녀들 대학 졸업시키고 출가시킨 60대 이용자가 양극화의 분배 문제를 생각하며 이제와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되셨죠. 시민이 탄생하는 공간이라는 게 과장이 아니에요.
공공성을 삶으로 살아내는 도서관 문화
열람실 한복판에서 역사교과서, 다이어트, 정신질환, 죽음을 주제로 포럼도 진행한다. 많은 책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고 통제할 수 없는 지적 활동을 불러일으키는 도서관은 조용할 수 없다는 게 느티나무도서관의 모토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상호작용의 장소는 고요하지 않다.
“모든 시간, 어느 곳이든 공론장일 수 있어요. 이용자를 참여시키는 상황을 매순간 고민합니다. 모든 걸 제공하려고 하지 않아요. 사서가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분류난감이라는 라벨을 붙여서 여러분께 찾아달라고 해요. 또, 모든 책의 앞에는 비망록을 넣어서 ‘지금 막 나를 흔들고 간 낱말’을 쓸 수 있도록 종이를 넣어둬요. 사람들이 작성한 글을 도서관 전산시스템에 입력해서 같이 검색되도록 해요. 스크랩도 시민들이 하도록 열어둡니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공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용자에게 존중받고 신뢰받을 기회를 만들어주는 느티나무도서관. 그는 순응하거나 포기, 절망하지 않도록 질문을 이어가도록 만드는 게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체득해서 나누는 공공성은 유연하고 섬세해서 늘 가슴 뛰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공공성을 삶으로 살아내는 도서관 문화가 삶터와 일상에 스며들어 이용자가 수동적인 정보의 소비자나 공공서비스의 수혜자로 머물지 않고 세상의 흐름 속에서 주체로 살아가면서 자기 삶의 내러티브를 엮어갈 힘을 갖길 바랍니다.”
박영숙 관장은 그러한 도서관이 비로소 민주적인 시민들이 태어나는 제3의 공간으로 뿌리내릴 것이라고 강조한다. 존중받고 신뢰 받으면서 사람들의 시민성이 작동되고 커진다. 끊임없는 질문에 두려움 없이 몰입하며 함께 흔들리는 삶. 인간의 존엄을 경험하는 장소, 자존감에 말을 건네는 도서관은 박영숙 관장이 느티나무도서관에서 경험한 살아있는 나눔이다. 2018년 가을, 아름다운재단 기부자와 나눈 꿈꿀 권리의 뿌리다.
글 우승연ㅣ사진 김권일ㅣ영상 정희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