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여성가장은 대부분 초울트라수퍼맘이다. 매일 직장에서 돈을 벌고, 집에 와서 식구들을 돌보며, 끝없이 쓸고 닦고 빨고 고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온갖 고민과 걱정도 온전히 혼자서 짊어진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용량 초과의 짐을 짊어진 채 오랜 시간 버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탈 없이 건강하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부모 여성가장의 빠듯한 삶에 스스로의 건강을 챙길 여유는 없다. 그는 엄마이자 딸이며, 한 가족의 유일한 생계부양자이다. 그에게 건강검진은 남의 일이다. 지금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강내은(42, 가명) 씨와 박주현(39, 가명) 씨의 상황도 딱 그랬다. 아름다운재단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 사업은 한국사회복지관협회와 아름다운재단이 파트너쉽을 맺어 진행하고 있는데 마침 협회 소속의 유린원광종합사회복지관이 두 사람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참여를 권했다. 이렇게 많은 기관과 사람들의 노력이 연결되어 그들은 마침내 지난해 가을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추가 검사 받으시겠습니까” – “…다음에 할게요”
그 때까지 내은 씨는 한번도 제대로 건강검진을 받아보지 못했다. 국가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은 받았지만 그 때도 추가로 돈을 내는 검진은 엄두가 안 났다. 위나 대장 내시경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추가 검사를 받겠냐”는 질문에는 늘 “다음에 할게요”라고 답했다.
건강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늘 염려스러웠다. 그는 종종 밤에 속이 쓰렸고, 이미 급성췌장염을 겪은 지라 혹시 췌장암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파도 참았다. 근무시간 도중에 병원에 가기도 어렵고 비용도 걱정스러웠다. 게다가 혹시라도 검진 결과 정말 췌장암이라면? 병원비는 어떻게 하나. 아이들을 두고 먼저 죽으면 어쩌나……. 그는 현실을 맞닥뜨리기 무서웠다.
아이를 키우며 아버지도 모시고 사는 주현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가족 중에 돈 버는 사람은 주현 씨 혼자인데 돈 들어갈 곳은 참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선뜻 자신의 건강을 위해 돈을 내지 못한다. 그 동안 건강검진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시간과 기회도 늘 부족하다. 눈치를 보면서 겨우 내는 연차를 이런 일에까지 쓸 수는 없다. 아이 학교에도 가봐야 하고 이런저런 집안일도 건사해야 한다. 아파도 무조건 참는 마당에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 그가 병원에 가는 경우는 아이나 아버지의 보호자일 때뿐이었다.
오랜 세월 포기하고 살다 보니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을 접했을 때도 두 사람은 조금 주저했다.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겠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참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검진을 받고 나니 참 잘했다고, 아니 천만다행이라고 느낀다. 전혀 몰랐던 자신의 몸에 대해서 알게 됐으니까.
내은 씨는 걱정했던 췌장이 다행히 깨끗했는데, 엉뚱하게도 담낭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정밀 재검진을 받아보니 상태가 꽤 심각했다. 담낭이 많이 찌그러져 있었고 이대로 두면 다른 장기와 유착되거나 암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1월 초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주현 씨는 자궁근종을 5개나 발견했다. 이미 2014년에 자궁근종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그새 새로운 근종이 여러 개 생겼고 5~6㎝까지 자란 것이다. 이번에 검사를 받지 않았으면 이런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예후를 지켜본 뒤 경우에 따라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도 받아야 한다.
‘엄마’를 내려놓고 ‘나’를 돌보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일단 멈춘다. 특히 건강의 위기를 만나면 ‘진짜 행복은 무엇일까’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고민은 전혀 다르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은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피 흘리는 무릎을 호호 불고서 얼른 일어나 걸어야 한다.
내은 씨는 다행히 잠시 그를 대신해 일을 해줄 사람을 구했다. 그래도 그가 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다. 그것도 새해 연휴와 주말을 낀 일주일이다. 수술 경과를 장담할 수 없기에 최대한 2주까지 회사에 못 나갈 수 있다고 각오하고 있지만, 그 경우에는 월급의 절반이 날아간다.
주현 씨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혹시 수술을 받게 되면 반찬을 뭘 어떻게 해놓고 입원할 지, 입원 기간만큼 수입이 줄어드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혹시라도 입원기간이 더 길어지면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이런 것들 말이다. 그는 “나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두 사람의 고민에서 병원비 걱정이 빠졌다. 아름다운재단은 건강검진 비용 70만원을 지원하고, 재정밀검진이 필요할 경우 최대 50만원을 지원한다. 또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확인되면 500만원 한도 내에서 의료비를 지원한다. 이 사업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이번에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몸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병을 키웠을 것이다.
건강검진이 가져온 효과는 단지 질병의 조기발견이나 치료만은 아니다. 자신의 몸, 더 나아가 그 동안 소홀했던 ‘나’ 자신을 좀더 돌보게 된 것이 어쩌면 더 큰 변화인지도 모른다.
주현 씨는 “이렇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세세하게 검사를 받아본 것은 살면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몸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음식도 좀더 잘 챙겨먹을 생각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종종 맥주 한 캔과 함께 드라마를 보곤 했는데, 이 습관도 버릴 작정이다.
내은 씨 역시 운동을 새로 시작하려 한다. 정 안 되면 집 근처라도 걸을 생각이다. 매일 집과 회사만 오가면서 지내온 그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집안을 어질러놓은 아이에게 종종 화를 냈는데, 검진을 받고 나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누리지 못해서 더 화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며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두 사람은 아플 수밖에 없는 엄마, 그러나 아플 때조차도 가족을 먼저 챙겨야 하는 엄마이다. 그러나 아무리 초울트라수퍼맘이라 해도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피곤하면 병이 생기고, 몸을 돌보지 못하면 병이 커진다. 병이 나면 괴롭고 다른 사람을 돌보기도 어렵다.
내은 씨와 주현 씨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아주 조금이나마 ‘엄마’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통해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들은 것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돌봐야 한다는 간절한 신호 말이다. 어쩌면 앞으로 두 사람은 물론 두 사람의 가족이 조금 많이 달라질 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재단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이 가져다 준 소중한 변화이다.
글 박효원 ㅣ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