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그리고 탐색
한국 사회에서 미군기지는 어떤 의미일까?
전 세계 곳곳에 이토록 많은 미군기지가 필요한가?
냉전 이후에도 미군기지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오염, 독성물질, 주거권 침해, 범죄, 구조화된 차별, 불평등한 SOFA(주둔군지위협정), 정보비공개 등등. 군사기지는 많은 곳에서 환경오염 원인자로 존재하지만 정보는 은폐되고, 피해는 지역주민 개개인이 감내해야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미군기지 주둔국마다 환경오염을 둘러싼 법제도 정책은 상이하다는데 어떻게 다를까. ‘안보’로 많은 것들이 ‘퉁’쳐지는 상황에서 그 답답함 속에서 다른 나라 상황과 그곳의 분쟁 현장은 어떤지 궁금하던 찰나에 감사하게도 해외연수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계획과 조율
독일, 일본, 한국, 이탈리아 – 미군기지가 가장 대규모로 집중 배치된 나라 순이다. 한국을 제외한 세나라는 전쟁을 일으킨 국가이기도 하다. 미군기지는 70여개국 이상의 나라에 800개 이상 존재한다.
기름 유출, 고엽제 매립, 탄저균 반입, 범죄 등 미군기지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면 언론에서는 종종 해외의 미군기지 주둔국과 비교를 하고는 한다. 해외 미군기지의 환경 관련 법제도 정책은 주둔국마다 상이한데, 독일과 견주었을 때 한국이 더 불평등한 상황이라는 논지가 주를 이룬다.
과연 어떤 상황일까? 해마다 교류와 연대활동을 하는 일본은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으니 방문지에서 제외하고,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미군기지 현장을 답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열흘 간의 일정동안 현장도 돌아보고 궁금한 것들을 확인하려면 동선을 잘 짜야한다. 현지의 주민, 시민단체 활동가 안내도 받아야하고 전문가, 공무원 인터뷰도 하고자 했다. 여간해서는 두 번 가기 어려울테니, 한 방에 잘 하자는 마음으로 계획과 일정을 조율해나갔다. 전화와 이메일로 말을 거는 이방인에게 대부분 흔쾌히 답장을 해주었다. 녹색연합에서 인턴십을 했고 영국에서 평화학을 공부 중인 H가 일정이 꼬일 때마다 조율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영국의 평화활동가 린디스 퍼시에게 받은 거꾸로 성조기 “미군기지가 아니라 녹지를!”
영국 요크셔 브래드퍼드에서 만난 핵군축캠페인(CND) 활동가, 캐서린의 안내로 멘위스힐(Menwith Hill) 기지를 둘러보았다. 명목상 영구기지이지만, 실제 미 국가안보국NSA에 의해 운영되며 전 세계의 극초단파를 감지, 분석하는 곳이라고 한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사찰하고 처리하는 곳. 소설속에서나 읽던 요크셔 지방은 과연 푸르고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한가롭게 말과 소가 풀을 뜯고 있는데, 느닷없이 골프공 모양의 커다란 레이더 돔이 30개 넘게 모여있는 기지가 나타나 기이한 느낌이었다.
평화활동가들과 주민들은 2000년부터 매주 화요일, 멘위스힐 기지 앞에서는 항의집회를 한다고 했다. 80년대 반핵 평화운동의 주역이었던 여성들은 60대, 7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기지 앞에서 거리에서 활동 중이었다.
25년간 500번의 체포, 15번의 구속 경력을 갖고 있는 영국의 평화활동가 린디스 퍼시, 그녀는 항상 자신의 분신인 거꾸로 된 성조기를 들고 다닌다. 알래스카 에스키모 이누이트들의 미국에 대한 저항에 연대의 의미를 담아 ‘거꾸로 성조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조기를 불에 태우는 것보다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성조기를 거꾸로 드는 저항에 대해 영국 고등법원으로부터 사용 가능하다는 판결도 받았다. 이번 방문에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했으나 “미군기지가 아니라 녹지를!”이라고 적힌 ‘거꾸로 성조기’를 선물로 전달 받았다. 평화운동을 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비폭력 직접행동’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군사기지에서 시민공원으로
독일 베를린에서는 템펠 호프(Tempelhof )공원을 탐사하였다. 군 공항으로, 민간 공항으로 사용하다 지금은 공공의 공간으로 모두에게 개방된 곳, 공원을 걸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100% 템펠호프’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마라이케가 소개해주었다. 미군 반환이 완료되고, 민간공항의 사용도 종료된 이후 베를린 시는 이곳에 대한 개발계획을 본격화했는데, 시민들 사이에서 개발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결국 주민투표를 통해 온전히 공원화하는데 성공한 이야기.
템펠 호프 공원은 개발과 완성이 아닌 만드는 ‘과정’ 중에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한국에서는 용산 주민모임과 함께 ‘온전한 반환’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했었는데, 여기서 ‘온전한’은 용산 곳곳에 미군이 잔류하지 않고 오염부지를 정화하라는 의미이다. 독일의 단체, ‘100% 템펠호프’의 100%도 용산의 ‘온전한’ 반환과 의미가 통한다고 마라이케에게 말하자 관심있어 한다.
반환 이후 공원 조성 계획이 있는 용산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산과 용산, 한강의 생태축을 잇는 넓은 녹지 공간은 상상만 해도 미세먼지로 답답한 숨통을 탁 트이게 한다. 한 세기만에 돌아오는 땅을 환대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며 공공의 공간으로 재편하기에는 여전히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무겁다. 오염되고 병든 땅이 대체 어떤 상태인지 누가 치유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늘 빠져있다. 오염자가 정화를 책임지고, 처음 사용할 때 부지 그대로 돌려받는 것, 그것이 온전한 반환이다. 온전한 반환 이후에야 공공성과 생태, 역사를 담은 공간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시끄러워 못살겠다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바이에른 주의 안스바흐에 왔다. 인구 4만명이 거주하는 주변으로 밀밭이 펼쳐진 조용한 마을. 그러나 머물러보니 ‘조용한’ 마을이 아니네. 안스바흐에서 미군기지로 인한 소음, 오염에 항의 활동을 하는 단체 Etz langt’z(이제 됐어!)를 만났다.
2016년에 만들어진 단체 Etz langt’z(이제 됐어!)는 집회, 캠페인을 주도하고, 주민들 9천 명에게 지지서명을 받는 등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독일의 국내법을 준수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어 한미 SOFA의 불평등함과 자주 비교되는 나토 SOFA 독일보충협정에 대해 물어봤다. 미군기지에도 독일법을 적용하고, 환경피해에 대해서도 엄격하지 않냐는 질문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은 큰 도시는 그럴 수 있지만 각 주마다 적용되는 규정이 다르다고 답한다. 미군의 훈련이 필수적인지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인구가 적은 동네의 피해에 대해서는 중앙 정부도 주정부도 나서지 않는 상황의 답답함을 토로한다. 안스바흐에서 만난 안드레 등 주민, 활동가들은 꼼꼼하게 현장을 안내해주고 여러 자료를 미리 준비해주었으며 한국 상황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특히 한국의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과 남북 관계의 변화, 정상 회담,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 등 다양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국가간의 정책, 제도의 비교를 넘어 ‘우리’는 근본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환경과 평화의 교차점에서
열흘 간 미군기지가 주둔되어 있는 갈등 현장 곳곳을 돌아보는 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이동하는데 생각보다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었고, 예정된 단체와 전문가를 만나고 현장을 돌아보려고 하니 휴식 시간이 점점 사라졌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생면부지의 많은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환대해주었다. 가감없이 자신의 활동과 고민, 지역의 상황을 알려주었고 한국의 상황을 궁금해했다. 유럽 역시 환경과 평화의 영역이 교차하는 여러 분쟁 현장에서 비슷한 부정의(不正義)의 모습이 숱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활동 역시 많은 부분 한국과 상통하게 교차되었다. 그곳에서도 알 권리를 주장하고, 주민들의 건강권을 이야기한다. 어찌할 수 없다는 침묵 앞에서, 펜스 바깥에서 시끄럽게 굴고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을 한다.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소송을 하고, 주민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한다. 서로의 팔목을 잡고, 평화는 총칼로 지킬 수 없고 이기는 방법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되뇐다. 2018년 뜨거운 여름, 나는 한국에서 느꼈던 것을 똑같이 그러나 조금은 새롭게 다시 느꼈다. 여러 현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격려 속에 우리 안에 구획된 국경과 세대와 성별의 경계가 무너진다.
글ㅣ사진 신수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