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도 드러나듯 공익단체의 프로젝트에 ‘스폰서’가 되어 주는 지원사업입니다. 사업 기간이 3개월로 다소 짧지만 그만큼 알차고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가정폭력 위험을 방치하는 경찰

2018년 10월 22일,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강서구 등촌동 자신의 집에서 잠복하고 있던 전남편에 의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아내를 죽여도 심신미약으로 6개월만 살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떠벌렸다고 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자주 전화번호를 바꿔 고위험 관리 대상이었던 가해자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1.9일에 1명. 작년 한 해 언론에 보도된 남성 파트너에 의한 살인 범죄 피해 여성은 최소 188명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가정폭력으로 신고했을 때 위험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피해자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했다면, 가해자를 구속 수사하여 처벌했다면,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경찰은 살해당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한 것과 같다.

가정폭력 범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정폭력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피해자 안전 보장과 가정폭력 재발 방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올해 7월부터 경찰은 가정폭력으로 신고 접수된 모든 사건에 대해 <가정폭력 재범 위험성 조사표>(표1. 내용 참조) 작성을 의무화하고, 현장 출동 단계에서 피해자 처벌 의사를 묻는 것을 지양하며, 재범위험성 평가를 근거로 긴급임시조치를 적극 실시하기로 하였다.

허술하게 작성되는 <가정폭력 재범 위험성 조사표>

그러나 지난 8월, 10일 동안 가정폭력 출동 사건의 <재범 위험성 조사표>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작성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약 30~40%에 달했다. 작성한 경우라도 그 내용이 매우 허술했다. 가정폭력을 여전히 가정 불화의 문제로만 바라보며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거나, 가정폭력의 빈도가 3회 이상인데도 별다른 의견 없이 재범 위험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피해 정도 조사를 통한 주된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 없이 단순하게 쌍방폭력으로 처리하거나,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흉기 등을 이용한 폭력을 사용한 현행범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사례도 빈번했다. 가정폭력 재범위험성에 대한 조사와 판단이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원칙과 절차,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연구 및 토론회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연구 및 토론회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모델 개발 및 현장 적용을 위한 정책 개선 필요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안일하게 생각하며 피해자 안전을 위한 조치를 소홀히 하는 사이 가정폭력 재범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가정폭력 재범위험성 조사표가 현장에서 가정폭력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착안하여 충분한 조치할 수 있는 척도로 활용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활용하도록 만드는 데 어떤 제도와 정책이 필요한지 되짚어 봐야 한다. 이에 한국여성의전화는 2018년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관련 국내외 연구자료를 검토하고, 현장 경찰·가정폭력 피해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활용실태를 조사하였다.

연구 결과 발표 토론회 개최
11월 29일 목요일 오후 4시,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찰의 가정폭력 재범위험성조사표- 새로운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개발 및 활용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본 토론회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대안적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모델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토론회에서는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손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활동가가 각각 「국가가 알지 못하는, 국가가 초래한 위험」, 「스냅사진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 ‘가정폭력 재범위험성 조사표’와 친밀한 폭력」, 「새로운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모델 제시 및 활용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으며, 토론자로 김항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과장, 조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가 참여하여 토론이 진행되었다.

새로운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모델과 활용방안 제시
현행 재범위험성 조사표는 1) 경찰이 피해자의 상태와 피해내용을 제대로 살피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 부재로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2) 신체적 폭력만을 기준점으로 삼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본질인 ‘통제’의 문제에 다가가지 못하며 3) 일상적으로 폭력이 발생하는 관계의 특성을 포착하지 못함으로써 피해자를 비난하는 등 잘못된 인식을 재생산하는 문제가 있다. 이에 신체적 이에 신체적 폭력만이 아닌 강압적 통제 피해를 포함하고 ‘관계’를 주목하는 척도인 영국의 DASH 모델을 기반으로 한국 상황에 맞게 위험성 평가 질문지를 마련하였다. 

질문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가정폭력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했고, 당사자분들의 도움으로 피해 경험을 잘 말할 수 있도록 어휘, 질문의 방식을 보완하고, 보충 질문을 추가했다. 이로써 새로운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모델을 완성했다. 가정폭력의 본질로서 강압적 통제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모델(안)을 제시한 만큼, 경찰의 가정폭력 재범위험성조사표 개선 활동에 적용되어 현장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연구 및 토론회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위험성 평가 연구 및 토론회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글|사진 한국여성의전화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