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도 어김없이,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휴식] 부문에 총 14팀이 선정되어 계획한 대로 혹은 좌충우돌하며 각자 나름대로의 쉼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합니다.
생태지평연구소의 활동가들은 하와이 마우이로 고래를 찾아 다녀왔습니다. 여성 환경활동가들의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선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활동가로 성장하기 위한 소중한 시간을 가지면서 다양한 환경운동에 관한 아이디어와 생태여행 모델을 볼 수 있었답니다.
떠나기 전..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까지 시간 여유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연수나 지식을 채우는 것이 주요 목적인 아닌 활력 충전 여행이고,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하와이라는 지명이 익숙해 한글 자료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다 할 참고자료가 없어 정작 가는 곳에 대한 자료준비는 시간에 쫓기고, 준비를 하고도 마음에 차지가 않았다. 준비하는 데 여유가 많으면 항상 마지막에 여유가 없다더니 이번에도 꼭 그러했다. 휴~
우리가 주로 머물렀던 곳은 하와이제도 내 마우이(Maui)이다. 왜 하와이 대표 휴양지인 호놀룰루 해변이 있는 오하후가 아닌 마우이인가? 우리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고래를 찾아 떠난 여행이어서 하와이제도에서 가장 고래와 연관이 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래관광지이자 고래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태평양고래 재단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마우이는 섬이다.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게 바다와 해변뿐일까? 마우이섬은 하와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조금 큰, 화산분화로 생겨난 두 개의 섬이 연결된 화산섬이다. 제주도처럼 산과 습지가 곳곳에 숨은 보물처럼 있는 곳이다. 그 중 하와이 전설 속 반인반신 ‘마우이’가 올가미로 태양을 붙잡았다고 하여 ‘태양의 집’이란 의미의 하와이말로 불리는 ‘할레아칼라(Haleakala)’. 해발 3,055m로 마우이에서 가장 높은 산은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에코 투어로 고래를 보호하는 태평양 고래재단 방문
2014년 12월 5일 누나들은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인 태평양 고래재단(Pacific Whale Foundation)을 방문했다. 생태여행과 고래보호 활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재단의 다양한 활동이 궁금했고, 사전에 인터뷰 신청을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간판도 보이지 않고, ‘여기 맞아?’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무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곳은 반전의 매력을 숨긴 곳이었다.
고래재단의 프로그램 책임자인 Black Moore씨와 고객관리 담당인 John Gaskins씨를 만나 고래재단의 다양한 활동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0년에 설립된 태평양 고래재단은 에코 투어와 모금활동을 통해 하와이이 생태계 보전활동을 하는 재단이다. 마우이의 고래, 거북이, 물범, 산호초, 자연지형 등 다양한 주제의 생태여행 프로그램과 모금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은 해양환경 교육프로그램과 해양생태계 조사 및 보전활동에 다시 투자한다.
재단은 재단 근무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에코 유니버시티(Eco-University)라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재단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코 투어도 진행한다. 이 투어에는 연간 약 25만명의 관광객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약 2천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고래 보호활동과 연구조사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단에서 하고 있는 활동 중 가장 큰 일은 고래 모니터링이다. 20여년 전 자료 부터 최근 자료까지 고래에 관한 기록이 모두 망라되어있는 자료 보관실이 기억에 남는다. 그 방대한 자료들이 재단활동가들의 자긍심, 자부심의 바탕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팅을 끝내고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념품점을 들렀다. 흔한 티셔츠 부터 스티커 등 다양한 품목들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디자인과 실용성을 갖춘 상품들이 지름신을 부를 만한 했다. 이 기념품 가게의 수익 또한 고래보호활동에 쓰이겠지 생각하니 쇼핑은 더욱 신났다.
명랑누나들, 쉬러 와서도 자원봉사냐? 할레아칼라 자원봉사 프로그램
우리는 태평양 고래재단의 ‘Volunteering on Vacation’ 프로그램을 알아보다가 할레아칼라 국립공원(Haleakala National Park)의 외래식물 제거 자원봉사를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에 모집하고 있다는 것을 홈페이지에서 알게 되어 여행 일정을 맞추어 자원봉사를 신청하였다.
오전 7시 30분, 마알라에아 항구에 위치한 재단의 기념품가게 앞에서 재단 활동가인 스베나와 자원봉사를 신청한 6명이 만났다. 서로 간단한 인사와 국립공원 출입 신청서 등을 작성하고, 할레아칼라에서 해야 할 작업, 보전해야 할 식물과 제거해야 할 식물 설명과 제거방법, 주의사항을 들었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잠시 출입절차를 밟는 동안 하와이 고유종이지만 멸종위기에 있는 ‘네네’(Nene, 하와이안 구스)를 만났다. 예민한 번식기여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데, 짝짓기 모습과 새끼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역시 운이 좋았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면서 다시 할레아칼라는 키 작은 나무와 관목, 초지의 풍경이 바뀌었다.
할레아칼라는 화산지형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경관과 토종야생동식물을 가진 중요한 생태지역이다. 할레아칼라의 정상에만 서식하는 하와이어로 ‘아히나히나(Ahinahina)’로 불리는 ‘실버 소드(Silver Sword)’, 즉 은빛칼이라 명명된 해바라기과의 하와이 토종식물이 자생한다. 20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는 식물로 무성한 단검 모양의 잎에 은빛 솜털이 찬란하게 나있다. 사람이 만지면 죽는다는 아주 까다로운 식물이다. 할레아칼라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지만 실버소드는 멸종위기에 있으며 환경의 변화가 아닌 사람들의 잦은 출입과 외래식물들이 사람들과 함께 번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거해야 할 외래식물은 한국에도 길가에 흔히 자라는 창질경이((plantago lanceolata)이다. 원래는 유럽에 살던 것인데 어떻게 한국과 망망대해 하와이까지 건너왔을까 궁금하다. 정상부근에서 각자 비닐봉투와 작업도구를 들고 외래식물을 뿌리까지 뽑기 시작했다. 씨앗이 남은 것은 파내는 동안 씨앗이 다른 곳으로 날리지 않도록 비닐봉투에 뒤집어 씌워 파내야한다. 머나먼 하와이까지 와서 하는 짧은 자원봉사인지라 ‘천삽 뜨고 허리 한번 펴기‘ 운동이라도 하는 듯 정말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서 대략 2시간을 제거작업을 했다. 창질경이는 곳곳에 너무 많아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이런 활동 하나하나가 그리고 작은 힘과 노력이 쌓여 ‘실버 소드’가 정상에서 안정적으로 자생하면서 지난 2014년 8월 꽃을 피운 것처럼 계속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는 순환고리를 만들 것이다. 혹시 하와이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참여를 강추한다. 국립공원 무료입장과 할레아칼라에 대한 상세한 설명, 관광으로는 알 수 없는 곳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할레아칼라는 세계 최대 휴화산으로 둘레가 34Km이고, 바닥까지 최대 700m인 분화구가 있다. 분화구 지형은 우주공간에 있는 행성같은, 달 표면같기도 한 분위기이다. 이런 독특한 지형과 풍경으로 인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오딧세이’ 촬영장소로, NASA 우주조종사들의 훈련장소였다고 한다. 방문 당시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 그 신비한 경관에만 감탄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돌아와서라도 접하니 새롭다. 물론 분화구를 보면서 한창 한국에서 상영 중이던 ‘인터스텔라’가 상상되었다고 하니 다들 상상해보시길. 이러한 독특한 분화구 화산지형을 경험하는 3박 4일 트레킹 프로그램이 있다. 우주 속 행성표면을 연상시키는 분화구 내부는 다양한 화산지형을 볼 수 있는 최적지로 소개된다. 다시 하와이를 방문한다면 꼭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드디어 마우이 혹등고래와 하이파이브!
12월 8일 태평양 고래재단에서 운영하는 에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에코 투어의 여러 옵션 중 우리가 선택한 것은 15명 정도가 타는 배에서 진행되는 투어 프로그램으로 좀 더 가까이 고래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물론 그래서 배가 작고 가격은 더 비싸다.
배가 출발한 지 20여분 됐을 무렵 한 무리의 돌고래가 드디어 나타났다. 우와~ 사람들의 감탄에 보답이라도 하듯 배 주변을 헤엄치며 지나가는 돌고래 무리를 보고 난 후 안내자의 설명은 들리지 않고, 우리의 눈은 바다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바빴다. 왜? 혹등고래를 찾아야하니까… 그때 잠시 배를 멈춘 안내자는 수중음파탐지기를 바다 속에 집어넣더니 스피커를 켜서 고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영화에서나 듣던 그 울음소리. 가늘고 하이톤인 울음소리는 엄마와 아기 고래의 울음소리라 한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12월~2월 사이 혹등고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돌고래가 알래스카에서 먹이가 풍부한 이곳 마우이까지 이동, 새끼를 키우다 간다고 한다. 그런 설명을 듣는 사이, 눈앞에 혹등고래가 나타났다. 물 위에 있는 고래는 새끼이고 어미는 물 밑에서 새끼를 지킨다고 했다. 어미 혹등고래는 30~40분에 한 번씩 물 위를 올라온다고 한다. 고래재단 포스터와 기념품점에서 눈에 띈 특징 중 하나가 ‘왜 혹등고래 꼬리 부분만을 강조해서 디자인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직접 혹등고래를 보니 그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혹등고래는 못생겼다. 울퉁불퉁한 머리 모양에 얼굴도 잘 드러내지 않았는데 한번 물 위에 떠 올랐다가 내려갈 무렵 수면 위로 드러낸 꼬리가 정말 예뻤다. 아~ 그래서 모든 사진이 꼬리만 있구나. 그래서 우리가 찍은 사진도 꼬리가 위주였다.
2시간의 투어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아쉬움과 더 관찰하고픈 갈망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욕구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념품점으로 발길을 향하게 만들고 구매욕을 높이는 효과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실제로 우리가 그랬다. 이러한 에코투어가 만든 수익이 고래와 돌고래, 바다환경의 연구조사와 교육, 보호 활동 등에 쓰인다 하니 여기에 참가한 관광객들은 모금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된다는 뿌듯함을 가지게 해주는 듯하다. 고래재단의 운영 구조와 작업환경이 조금 부러운 경험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 킬리아 폰드 내셔널 야생동물보호지역
4일간의 마우이여행 중 마음에 남는 장소는 ‘킬리아 폰드 내셔널 야생동물보호지역(Kealia Pond National Wildlife Refuge)’이다. 탐조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마우이의 습지와 조류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 여행을 해 지금도 많이 아쉽다. 킬리아 폰드는 하와이섬들 내 얼마 남지 않은 자연습지 중 하나로 마우이 내 키헤이 북쪽지역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방문한 날, 방문객 센터는 에어컨 고장으로 문을 닫았고, 언제 다시 개장할지 모른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야외시설만 둘러보았다.
이 습지는 우기인 겨울과 건기인 여름동안 계절에 따라 다른 간헐적 범람으로 형성되며, 이 범람은 멸종위기에 처한 물새들에게 적합한 휴식처, 먹이 공급처, 번식지 등을 제공하는 초지가 있는 개방구역(Open Water)과 얕은 갯벌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곳은 미국에서 겨울을 나는 이동물새들에게 중요한 지역 중 하나로 민물도요, 중부리도요 등 이동하는 철새들의 먹이터이며, 하와이 토종 습지식물과 토종 거북이, 조류 등이 서식하는 야생동물보호구역이다.
이곳에는 하와이 고유종인 Hawaiian stilt(하와이어 ae’o)와 Hawaiian coot (하와이어 ‘alae ke oke’o) 등을 볼 수 있다. 장다리물떼새류인 Hawaiian stilt는(한국에 서식하는 장다리물떼새는 영명 Black-winged Stilt로 영어이름대로 등쪽만 검정색임) 목과 머리까지 까만 Black-necked Stilt로 구분되며(현재 아종으로 볼 것인지 논란이 있는 종이다), Hawaiian stilt는 8월부터 이듬 해 봄 4월까지 킬리아 폰드에 반 이상의 개체수가 머물다 번식지로 이동한다. 한국 물닭류인 Hawaiian coot도 하와이 고유종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Hawaiian stilt, Hawaiian coot, 해오라기, 민물도요 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방문객 센터의 도움이 있었다면 자세히 탐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여의치 않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아쉬웠다.
진화의 역사 그리고 현재진행형 하와이.
진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은 ‘도도의 노래’에 하와이의 생태계가 어떻게 생성되고 진화되었는지 추론하는 부분이 있다. 격리가 종의 분화 즉, 진화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섬생물지리학의 근거로 하와이가 언급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화산활동으로 망망대해에 생겨난 섬들은 처음엔 어떤 생명활동도 없는 불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해류를 타고, 새의 배설물로 이동해온 생명들이 싹을 틔우고 성장해 울창한 열대우림이 만들어지고, 야생동물들은 풍랑에 휩쓸려 떠밀려오고, 번식지나 월동지로 날아가던 길 잃은 새들이 정착하여 하와이 고유의 생물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윈의 갈라파고스의 핀치처럼 생물들이 진화했음을 설명하는 진화의 현장이다.
화산 분화로 새롭게 생겨난 하와이 제도에 생명이 유입되어 번성하고 지금의 생태계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높은 산의 고도차에 따른 다양한 환경으로 생물들을 진화시켰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그래서 좀 기대감이 컸다고 해야 할까? 역시나 이곳도 사람들의 많은 출입과 무지로 인한 개발로 고유종들의 삶은 위협받고 있고 이제는 보전노력을 하지 않으면 알 될 지경에 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웃프기도 했다.
글 / 사진 : 손성희, 이승화, 홍숙경(생태지평연구소)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공익활동, 특히 “시민참여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공익활동” 지원을 핵심가치로 합니다. 더불어 함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과 사회를 변화로 이끄는 <변화의 시나리오>와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