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1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을 찾아
‘마음표현 박스’가 ‘우토로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우토로 마을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일본 땅의 조선인 마을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군비행장 건설에는 수많은 조선인이 동원되었습니다.
해방 후, 가난했던 1,300여 명의 조선인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렇게 일본 땅에 남아 서로를 의지하며 피땀으로 일군 마을이 우토로입니다.
1988년까지 수도조차 연결되지 않아 우물 물을 먹었던 마을.
여전히 하수도는 놓이지 않아 비만 오면 침수되는 마을.
우토로의 주민들은 우리가 잊고 있던 세월 동안 일본 땅에서 차별과 억압을 견디며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인권이 지켜지지 않았던 억압의 세월 속에서도,
일본 땅에서 조선말을 배우며 조선인으로 남아 고국을 지켜냈던 사람들에게
2019년 4월 우토로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전하러 마음표현 박스가 우토로에 찾아갔습니다.
마음표현 박스는 마음이 담긴 꽃을 선물하는 아름다운재단만의 마음 표현 방법입니다.
꽃을 건넬 때 그 꽃에 담긴 따뜻한 마음의 온기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고국 동포들의 마음을 담은 꽃에는
한글이 서툰 우토로 주민들을 위해 한글과 일본어로 작은 카드를 달았습니다.
ウトロの歴史を忘れません。
故郷の同胞たちが心を込めてこの花を贈ります。
우토로의 역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고국의 동포들이 마음을 담아 이 꽃을 전합니다.
오사카 공항부터 교토 시내까지
4월의 일본은 벚꽃이 만개해 화사한 봄날이었습니다.
꽃잎이 흩날리는 교토의 작은 일 차선 도로를 달려가다 보면 공사가 한창인 마을이 나옵니다.
마을 길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공사 팬스가 보이면 그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토로 마을 입구입니다.
우토로 마을 벽화가 있던 건물이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우리가 알던 우토로가 다 사라져 버렸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한발 한발 들어간 우토로는 다행히 입구만 철거된 상태였습니다.
동네를 천천히 돌아도 30분 정도면 충분한 작고 조용한 마을
“앞집 월임이는 평택에서 왔고, 뒷집 갑수 할배는 경주에서 왔다지?”
서로의 고향을 기억할 만큼 고국을 그리며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일궜을 사람들.
그들이 일본 땅의 조선인으로 이 작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쳐 싸워온 30여 년의 세월을 생각하니 우토로 주민들의 삶이 먹먹하게 다가왔습니다.
우토로 마을은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본 자위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4월의 철조망 너머 자위대 길옆에는 푸르른 나무와 벚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우토로 마을에 우연히 꽃나무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 제 할 일 을 다하고 지고 있는 동백나무 한 그루와 들꽃만이 피어있는 우토로 마을과
흩날리는 벚꽃이 만개한 자위대를 한눈에 보고 있자니
우토로 주민들이 겪었을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벚꽃 대신 고국의 마음 꽃을 우토로 마을 곳곳에 피우기로 했습니다.
조선인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모여 살았을 무너진 함바 옆에도
마을 주민들이 모여 불고기(야끼니꾸) 축제를 열었던 마을회관 에루화 앞에도
누군가의 집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 담장 위에도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위대를 바라보는 언덕에서도
시민의 힘으로 지어 올린 시영주택 길목에도
우토로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동포의 마음을 담을 꽃은 우토로 주민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몇 세대를 거쳐 살아온 일본이지만 한국말을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 말해준 우토로 주민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긴 우토로의 마지막 재일교포 1세대 강경남 할머니는 연시 허리를 굽히며 고국의 동포들에게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10대 때 일본으로 넘어와 우토로에서 산 세월이 80년이 넘었다는 할머니는 연신 고국의 말을 많이 잊으셨다면서도
한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를 기억해 아리랑을 불러주셨습니다.
할머니가 80년을 기억한 고국의 노래는 구슬프고 가슴 먹먹해지는 가락으로 우토로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