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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 BF 프로젝트 [아름다운재단스러운 사회 이슈]
특정 대상이 아닌 광범위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 캠페인
기억할게 우토로
우토로,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과 차별의 역사를 간직한 땅
이젠 시민의 힘으로 우리민족을 지켜낸 승리의 땅으로 기록하려합니다.
일본땅 우토로에 역사를 기록하는 <기억할게 우토로>에 함께해 주세요.

낡은 우토로는 이제 사라지지만, 우토로를 기억하는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기억할게 우토로>에 함께해 주세요.
정기기부 일시기부 * 캠페인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기억할게 우토로 배지”를 드립니다.
우토로의 역사를 기억해주세요
우토로의 역사를 기억해주세요
우토로는 일제강점기 아픔의 역사입니다.
1943
태평양 전쟁 중 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 우토로에 집단 합숙소(함바)를 만듭니다.
  일제강점기 엄혹했던 시대에 교토 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었습니다.
등에 피멍이 들도록 일해도 일당은 잡곡 세 홉이 전부이니 손에 쥘 수 있는 돈 한 푼이 없었지요. 그렇게 가난하고 서러운 조선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모여 살던 집이 우토로 함바입니다.
1945
일본 태평양 전쟁 패전 1300명의 조선인 노동자와 가족은 일본 땅에 방치됩니다.
  일본은 패전하면서 우리를 버리다시피 방치했습니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줄줄이 딸린 식솔을 데리고 어떻게 고국에 갈 수 있겠어요. 강제로 끌려왔어도 내가 지은 집이 있는 우토로에서 조선인으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1949
일본은 한글을 배우고 조선의 문화를 배우던 우토로 ‘민족학교’를 강제 폐쇄합니다.
  일본은 ‘가갸거겨’ 외우며 아이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고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곱게 볼리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폐쇄하라 하질 않나 무고한 사람들을 강제 연행하질 않나… 핍박도 그런 핍박이 없었어요. 그렇게 40년 우토로에 사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고스란히 견디며 그렇게 우린 우토로를 지켰습니다.
1988
수십년간 수도조차 없이 일본정부로 부터 버려졌던 우토로땅에 마침내 수도가 설치됩니다.
  조선사람들이 사는 땅이라고 수도설치는 커녕 고랑 하나도 정부가 파준 것이 없었지요. 우물도 제 손으로 파서 만들고, 고랑 만드는 일도 손수 하며 가꾼 마을이 바로 우토로입니다. 그런 마을에 수도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그땐 검은 속내도 모르고 눈물 나게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췄지요.
1989
㈜닛산은 우토로 주민 몰래 부동산업자에게 우토로를 매각하고 부동산 업자는 곧 주민들에게 땅과 건물을 빼앗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땅 주인이 바뀌었으니 우리 보고 집을 버리고 나가라는 거예요.
내몰리듯 일하게된 가혹한 땅이라지만 우리가 우토로에서 산 세월이 50년인데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생각했어요.
우린 일본 법이 우리 같은 조선인도 지켜줄 거라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2000
일본 대법원은 우토로 주민 전원에게 패소 결정을 내립니다.
  눈앞이 캄캄했지요. 힘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법밖에 없는데 일본 법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UN에 퇴거 명령 철회 권고도 무시하는 일본 정부 아래서 절망 속에 있을 때 누군가 고국에 도움을 청해 보자 했지요.
2005
한 세기를 넘겨 한국에 우토로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토로 희망모금 캠페인 33인 희망대표를 필두로 모금캠페인이 진행됩니다.
  내가 조선사람임을 잊어본 적은 없지만 그간 조국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 우리마을을 살리기 위해 유명 연예인들과 시민단체가 모금한다는 거에요. 그때의 고마움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모금에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이렇게 나서줘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2007
마지막 퇴거통보를 받고 모두가 절망에 빠졌던 때, 시민들이 희망의 염원을 모아 성금 9억여 원을 마련하고 정부지원금 30억 원을 이끌어 내는 기적을 만듭니다.
  같이 울어주고 나서 싸워주는 것도 고마운데 시민들이 우릴 위해 한푼 두푼 보내준 돈이 9억 원이나 된다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모금 전례가 없는 기록이라며 한껏 들뜬 목소리로 한국정부도 돕겠다고 연락을 해오는데 기쁜 일에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지는 거예요. 고맙고, 미안하고, 나에게도 조국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2018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모금으로 매입한 토지 위에 지은 1기 시영주택에 우토로 주민 39가구가 먼저 입주했습니다.
  일본에서 조선인이 가장 핍박 받던 땅 우토로를 우리 조국의 시민이 사버린 거나 다름없지요. 시민들이 나서면서 한국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섰고 드디어 당당히 살아갈 터전이 생긴 거에요. 이 감사함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하는 마음으로 우토로를 지키고 있어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우리가 우토로를 지켜낸 역사는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것이 고국으로 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토로의 역사를 기억해주세요
우토로는 일제강점기 아픔의 역사입니다.
1943
일본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일본 우토로에 조선인 마을을 형성합니다.
“일제강점기 교토 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었습니다.
등에 피멍이 들도록 일해도 일당은 잡곡 세 홉이 전부이니 손에 쥘 수 있는 돈 한 푼이 없었지요.
그렇게 가난하고 서러운 조선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모여 살던 집이 우토로 함바입니다.”
1945
일본 태평양 전쟁 패전 1300명의 조선인은 일본 땅에 방치됩니다.
“일본은 패전하면서 우리를 버리다시피 방치했습니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줄줄이 딸린 식솔을 데리고 어떻게 고국에 갈 수 있겠어요.
강제로 끌려왔어도 내가 지은 집이 있는 우토로에서 조선인으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1949
일본은 한글을 배우고 조선의 문화를 배우던 우토로 ‘민족학교’를 강제 폐쇄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폐쇄하라 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강제 연행하곤 했지요.
그렇게 40년 우토로에 사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견디며 우린 우토로를 지켰습니다”
1988
수 십 년간 일본 정부로부터 버려졌던 땅에 마침내 수도가 설치됩니다.
“조선사람들이 사는 땅이라고 수도설치는 커녕 고랑 하나도 정부가 파준 것이 없었지요.
그런 마을에 수도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그땐 검은 속내도 모르고 눈물 나게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췄지요.”
1989
바뀐 땅 주인은 우토로 주민의 땅과 건물을 빼앗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땅 주인이 바뀌었으니 우리 보고 집을 버리고 나가라는 거예요.
우리가 우토로에서 산 세월이 50년인데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생각했어요.
우린 일본 법이 우리 같은 조선인도 지켜줄 거라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2000
일본 대법원은 우토로 주민 전원에게 패소 결정을 내립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법밖에 없는데 일본 법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UN에 퇴거 명령 철회 권고도 무시하는 일본 정부 아래서 절망 속에 있을 때 누군가 고국에 도움을 청해 보자 했지요.”
2005
한 세기를 넘겨 한국에 우토로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토로 살리기 모금캠페인이 진행됩니다.
“내가 조선사람임을 잊어본 적은 없지만 그간 조국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 우토로를 위해 모금한다는 거에요. 그때의 고마움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저 이렇게 나서줘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2007
시민들이 희망의 염원을 모아 성금 9억여 원을 마련하고 정부지원금 30억 원을 이끌어 내는 기적을 만듭니다.
“시민들이 우릴 위해 한푼 두푼 보내준 돈이 9억 원이나 된다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모금 전례가 없는 기록이라며 한국정부도 돕겠다고 연락을 해오는데
기쁜 일에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지는 거예요.
고맙고, 미안하고, 나에게도 조국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2018
정부의 지원과 민간 모금으로 매입한 토지 위에 지은 시영주택에 우토로 주민이 입주했습니다.
“일본에서 조선인이 가장 핍박 받던 땅 우토로를 우리 조국의 시민이 사버린 거나 다름없지요.
고국에서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함으로 우토로의 역사가 다음세대에 기억될 수 있도록
지켜나가는 것이 내 마지막 바람입니다.”
낡은 우토로는 사라지지만, 우토로를 기억하는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2021. 우토로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평화기념관’ 건립을 시작합니다
조선노동자 합숙소 함바
주민들이 투쟁하며 그렸던 그림과 구호
낮은 지대의 집이 침수돼 기둥이 젖은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낡은 우토로는 이제 철거됩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토로는 머지않아 잊혀질 것입니다.

일본땅 우토로에 세워질 평화기념관 건립에 함께 해주세요.
우토로 평화기념관은 기억합니다
일제강점기 아픔의 역사와 해방 후 재일조선인 차별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한국 시민이 힘을 합쳐 일본 땅 위에 조선인 마을을 살려낸 승리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한국시민, 재일동포, 남과 북, 일본사회를 넘어선 연대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일본땅에 세워질 평화기념관은 일본 시민에게 우토로의 역사를 보고 배우고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낡은 우토로는 이제 사라지만, 우토로를 기억하는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기억할게 우토로>에 함께해 주세요.
정기기부 일시기부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에는 약 20억 원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평화기념관 건립을 위해, 민간 단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시작합니다.
소중한 기부 참여가 평화기념관 건립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기억할게 우토로>캠페인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기억할게 우토로 배지”를 드립니다
우토로 마을의 상징 "함바집"과 우토로 마을 "지도"를 모티브로 디자인하였습니다
이 배지는 우리가 지켜낸 우토로 마을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우토로를 기억하기 위한 평화기념관 건립에 ‘시민 캠페이너’가 함께합니다
시민 캠페이너란? 우토로의 역사와 역사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토로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건립기금 뿐만 아니라
역사구술집, 역사지도, 한글교재 , 마을안내서, 함바 재건 등 여전히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시민 캠페이너와 함께 우토로의 역사를 기억해 주세요.
시민 캠페이너
배우 김혜수
일제강점기 조선인 집단 합숙소 함바는 우토로 역사의 증거품입니다. 민족 아픔의 역사가 보존될 수 있도록 함바를 재건해 주세요.
함바 재건비용 : 1억 원
시민 캠페이너
방송인 유재석
우토로 1세대는 이제 강경남 할머니 단 한 분 뿐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토로 1세대와 2세대 목소리로 증언한 우토로 역사 구술집을 만들어 주세요.
목소리 구술집 제작 비용 : 3천 만원
시민 캠페이너
한국사 강사 최태성
우토로의 주민들은 일본땅에서 한글을 배우며 우리 역사와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우토로의 아이들을 위해 한글교재를 선물해 주세요.
한글교재 제작 비용 : 5백 만원
시민 캠페이너
방송인 하하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발전이 멈춰버린 땅.  재일 조선인을 핍박했던 자위대와 맞닿아 있는 땅.  우토로 땅의 75년간의 모습을 담은 역사지도를 만들어 주세요.
역사지도 제작 비용 : 1천 만원
시민 캠페이너
방송인 김미화
우토로 마을은 태평양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본 땅에 전쟁 가해의 역사를 알릴 수 있도록 마을 안내서를 만들어 주세요.
마을안내서 제작 비용 : 5백 만원
시민 캠페이너
크리에이터 디바제시카
우토로의 다음세대가 평화와 희망의 땅에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우토로가 아픔과 억압의 역사를 넘어 다음세대를 위해 평화와 희망의 땅으로 기억되도록 함께해 주세요
우토로를 위한 시민 캠페이너가 되어주세요
누구나 우토로 캠페인의 시민 캠페이너가 되실 수 있습니다.
우토로 자료를 활용하여 학교나 모임 등에서 <기억할게 우토로> 캠페인을 알려주세요.

아래 다양한 자료들을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용범위 및 저작권은 안내서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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