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파릇하게 물든 2019년 4월의 부산을 아름다운재단 기부자소통팀의 두은정 팀장, 박수진 간사, 이혜진 간사가 찾았습니다. 마음이 통한 걸까요? 어떤 마음결을 가진 기부자님을 만나게 될까 기대 가득한 저희 앞에 예고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등장하신 박진우 기부자님. 전에 뵌 적 없지만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소탈한 웃음 뒤로 사회와 이웃에 대한 깊은 정과 마음이 비쳤던 박진우 기부자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일과 삶 모두에 깊게 스민 나눔의 향기
“저는 원래 기부나 나눔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아름다운재단이 생기고 1%나눔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보통 기부라고 하면 거액을 투척해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름다운재단의 1%나눔은 달랐어요.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어떤 누구라도, 꾸준하게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습니다. 1%나눔을 시작한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고도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저는 기부로 뜻을 함께 하겠다 마음먹게 되었죠.”
2003년부터 아름다운재단의 곁을 지키고 계신 박진우 기부자님. 깊은 관심과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재단의 옛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새삼 기부자님들이 아름다운재단의 주인이자 동료이며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며 진정 아름다운 가족이 되신 기부자님은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그 마음을 이어주고 계셨습니다.
“2005년에도 기부자를 만나러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이 부산에 왔었어요. 당시 저는 자영업 중이었는데, 이 간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재단의 일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마침 채용공고가 뜬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지요. 이곳에서 지역사회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시간을 나누고, 쓰지 않는 물건이 다시 쓰임을 받는 걸 보며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부금이 만들어지고 이웃을 돕는다는 것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뿌듯함이 있어요.”
기부자님의 일터에서 만남을 가진 덕에 일상을 훔쳐보았습니다. 사람과 일을 대하는 모습, ‘따뜻하고 정 많은 부산 아저씨’ 그대로의 기부자님을 본 듯했습니다.
타인의 슬픔, 주변의 아픔을 바라보며
아름다운재단 외에도 관심이 필요한 곳곳을 살피고 계신 박진우 기부자님. 사파기금, 인권연대, 지역아동센터, 반빈곤센터, 부산참여연대 등 여러 분야의 의미있는 활동에 힘을 보태고 계셨습니다. 주중에 계속되는 업무에도 일요일에는 가톨릭프란치스코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평화장터’에서 중고 물품의 판매와 관리를 돕는 자원활동 역시 꾸준히 하고 계셨습니다.
“세상에는 부당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약한 사람은 살기가 어려워요. 부단히 싸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노동자들은 부당한 노동 행위에 대해 파업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파업 중에는 급여가 안 나오니 싸울 수가 없죠. 그래서 지원합니다. 싸울 힘을 낼 수 있게.”
짧은 이야기 속에도 기부자님의 삶 깊이 이웃에 대한 공감이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부자님의 마음 한켠 자리잡고 있는 미안함이 있으시다며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세상 수많은 곳에 다른 이의 고통을 위해 일하고 있는 분들이 계신 것을 압니다. 대부분 제대로 된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저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좋은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자니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늘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요. 제가 89학번입니다. 선배와 후배가 격동의 국면을 맞아 고통받았는데, 저는 그 중간에서 피해 없이 비켜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목숨을 잃거나 병을 얻은 주변인들이 더욱 쓰립니다. 어떻게든 보탬이 되고 갚아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타인의 슬픔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신 경험에서 나눔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미안함의 깊이만큼 많은 시간과 마음을 나눔의 활동에 쓰시는 것일까. 감히 제가 그 깊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나의 오랜 벗, 아름다운재단
박진우 기부자님은 아름다운재단을 믿는다며 긴 시간 쌓인 신뢰와 고마움을 표현하셨습니다. 본인 마음이 향하는 길을 재단이 나서서 걷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름다운재단이 사회적 이슈에 과감한 행보를 보여주는 게 참 마음에 들어요. 보통은 정부나 기부자의 눈치를 많이 보고 또 그것이 당연할텐데 아름다운재단은 그렇지 않잖아요.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상 규명에 있어 적극 의견을 개진했고,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노동자와 함께 해주어 자랑스러웠어요. 그 활동에 함께하고 싶은 샘 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잘하면 기쁘지만 부럽기도 하잖아요. (하하)”
칭찬에 이어 기부자님의 마음 속 아름다운재단은 어떤 곳인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했으면 하는지 기대와 염려가 담긴 말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을 사랑하는 기부자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단말만 건네지는 않을테니까요.
“저는 김군자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참여에 살을 붙이고 키워서 기금이 생겨났지요. 아름다운재단은 ‘개인을 사회의 기억에 남기는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어려운 처지의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보살피는 일에 재단이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런 일이야말로 재단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 같아요. 또 이미 머리 굵어진 어른을 설득하는 일은 힘들잖아요? 아이들의 귀에 아름다운재단이라는 이름이 익도록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많이 했으면 합니다. 크리스마스씰 기억하시죠? 특정한 때가 되면 늘 떠오르는 이름처럼 아름다운재단이 아이들의 생각 속에 늘 맺혀 있기를 바랍니다.”
찾고, 들여다보고, 시작하고.
최근 불거진 기부 단체와 기부금 사용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에 기부문화는 더욱 축소되어 새롭게 기부를 시작하는 것이 더욱 망설여지는 요즘입니다. 그렇지만 관심이 필요한 문제들은 지속적으로 생겨나기에 기부자님과 아름다운재단 간사들 모두 안타까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세상에는 해야 할 일이 많고 그 중 특별히 관심이 쏠리는 곳이 있겠죠. 기부하고자 하는 기관이나 단체의 활동이 자신의 뜻과 일치한다면 약간의 기부로 참여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기부금을 목적 그대로 온전히 사용하는 곳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예를 들면 지역아동센터가 있겠지요. 지역아동센터는 기부자의 뜻대로 기부금을 사용합니다. 기부금이 헛되이 쓰이는 것을 원하는 기부자는 없습니다. 단순히 기부금을 지불하는 행위를 넘어 신뢰할 수 있는 다양한 기부처를 찾아보는 노력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기부자’. 시민들에게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아름다운재단의 간사들에게는 숙제처럼 남은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눔을 가깝게 느끼고 스스로 주체가 되도록 돕기 위해 아름다운재단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요. 그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기부자님의 고민을 가볍게 만들어 드려야겠습니다.
‘함께’ 살아야 ‘모두’ 사는 것
갑작스러운 첫 인사의 순간을 떠올리니 검정색 넥타이를 정갈하게 갖추어 매신 기부자님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연찮게도 저희가 방문했던 날이 4월 16일이었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검정색 넥타이는 그날을 잊지 않고,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려는 기부자님의 기억법이었습니다. 인터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 쓰고 싶었지만 달력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며, 매년 잊지 않고 나름의 방법으로 기억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죄를 안 짓고 깨끗해서 지금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죄를 지어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것도 아니에요.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으니 우리는 평소에 주변을 돌아보며 살았으면 합니다. ‘함께’ 살아야 ‘모두’ 사는 것 아닐까요. ‘내가 정말 작은 나눔도 할 수 없는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웃음이 끊이지 않던 기부자님과의 시간이 조용한 감동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본인의 선한 의지와 뜻으로 흔들림 없이 아름다운재단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계신 기부자님이 더욱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재단의 활동을 조용히 응원하며 본인의 몫을 다 해주실 박진우 기부자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재단은 물론 저희 간사들의 오랜 친구로 남아주시길 바라봅니다.
글 이혜진 간사 l 사진 김주찬
이혜진 간사의 한마디 |
<찾아가는 서비스란?>
기부자님과 직접 만나 따스한 눈빛을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을 쏟아낼 수 있는 뜨거운 소통이 부족함에 늘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올해도 ‘찾아가는 서비스’로 기부자님을 찾아 뵙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재단 간사가 궁금한 기부자님, 사회 변화를 만드는 일, 나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기부자님, 모두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nanum@beautifulfund.org 로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상률
평소에 주변을 돌아보며 살았으면 합니다라는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네요. 나를 발견하고 주위를 돌아보는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을 위해 더 천천히 관심가져야 할 것들에 꼭 관심가져야 할것 같아요. 박진우 기부자님, 박진우 간사님은 참 멋지고 아름다운 기부자 시민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