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을 아시나요?
만 18세,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들을 보호종료아동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열여덟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 당사자 프로젝트 ‘신선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저는 열여덟 어른 ‘신선’입니다. 저는 이번에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캠페이너로 참여하면서 다른 열여덟 어른들을 직접 만나 보았는데요. 열여덟 어른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이 자립하면서 겪었던 사회 편견부터 정책의 문제까지, 당사자의 시선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
Q. 신선 : ‘신선 프로젝트’ 첫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간단히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손지원 : 안녕하세요. 손지원입니다. 8년 동안 보육시설에서 생활했고 2017년 3월에 휴학하면서 퇴소했어요. 휴학하려면 시설에서 퇴소를 해야 하거든요. 퇴소하면서 LH전세임대 지원을 받아 집을 구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휴학하고 지금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고 내린 결정이에요. 저는 경찰이 되어 제가 도움을 받은 만큼 도움을 주고 싶어요. 명예도 있고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어서 경찰을 꿈꾸고 있습니다.
Q. 신선 : 자립 직후 경제 상황은 어땠나요? 공부하면서 생계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손지원 : 8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퇴소했어요. 퇴소하자마자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는데 교통비, 학원비 등이 나가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다행히 장학금을 하나 신청해서 공부하기 위한 여유가 조금 생겼어요. 퇴소하기 전에 주변에서 자립정착금을 너무 많이 쓴다는 얘기를 들었던터라 “나는 안 써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정말 정말 아껴서 사니까 버틸 수는 있었어요.
* 디딤씨앗통장은 아동(후원자)이 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국가에서 1:1 정부매칭지원금으로 같은 금액 적립하여 저소득층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저축통장입니다.
Q. 신선 : 자립 전에 상상했던 내 모습과 실제 자립한 내 모습은 몇 퍼센트 일치하는 것 같나요?
손지원 : 70~80% 정도요. 긍정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부분도 예상했는데, 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뭘 해도 계산하게 되고, 누구를 만나도 계산하게 되고,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고 그랬어요. 그리고 생활에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 없어서 힘든 적도 꽤 있었어요. 전기세를 어떻게 내고, 명의를 어떻게 바꾸고,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는지 등이요. 한 번은 음식물 쓰레기를 잘 못 버려서 10만 원 정도 벌금 고지서를 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매월 얼마를 써야할지 정해져 있었는데 갑자기 10만 원이라는 벌금이 생겨서 엄청 타격이 컸어요.
Q. 신선 : LH전세임대 지원을 받아 집을 구했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만족하나요? 처음 집을 구하고, 자립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꽤 많았을 것 같은데요.
손지원 : 올해 3년 차에요. LH전세임대는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 작년 2년 동안 살았던 집은 진짜 끔찍했어요. 벌레 나오고 물이 새고요. 또 여름에는 벌레가 너무 많아서 친구 집에서 지낸 적도 있어요. 저는 특히나 집과 관련해서 시행착오가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 구한 집에는 물이 새서 곰팡이가 생겼거든요. 락스를 희석하는데 물과 락스 비율을 잘못 잡아서 곰팡이는 잘 죽은 것 같았지만 ‘이러다 나도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어요. 한 번은 광진구에서 강서구로 이사를 하는데 서울 끝과 끝이라서 고생을 엄청나게 했어요. 이삿짐을 부르기엔 돈이 부담이라 지하철로 캐리어를 끌면서 다섯 번 정도 왔다 갔다 했어요. 너무 무거워서 캐리어로 옮길 수 없는 살림은 버리면서 이사했어요.
신선 : 자립 과정에서 도움이 되었던 제도가 있나요?
손지원 : 시설에 있을 때는 지원 제도 공고가 생기면 선생님들이 알려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보고 신청할 수 있는 기회가 닿았던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서 다른 친구들이 걱정돼요. 이런 걸 신경 안 쓰는 친구들은 제도가 있어도 정보를 알기 어렵고 사실상 제도가 있더라도 자기가 뿌리치더라고요.
Q. 신선 : 정보에 관심이 없거나 도달하기 어려운 친구들에게 어떤 도움이 더 있으면 될까요?
손지원 : 현재 시설을 통해서 지원 정보가 전해지는데 보호종료아동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핸드폰으로 정보가 전달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리 시설 선생님을 통해서 해도 선생님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반감이 있어서 정보를 차단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Q. 신선 : 혹시 자립을 막 시작하는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손지원 : 정보!!! 나에게 맞는 정보를 어떻게 찾아보고, 실질적으로 찾았을 때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분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꽤 있는데, 있는지 존재조차도 모른다면 답이 없잖아요. 정보가 있다는 걸 모르면 정보를 찾아볼 생각도 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자립하는 시기에 놓쳤을지도 모르는 기회들이 많을 거 같아요. 그래서 꼭 정보를 직접 찾아다녀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 신선 : 마지막으로 나에게 자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문장으로 표현해도 좋고요, 내가 겪은 자립은 이런 거다는 부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릴게요.
손지원 : 자립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자립을 멋있게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처음 자립을 시작하게 되면 보조 바퀴를 달고 달리는 거죠. 보조 바퀴를 달고 자전거를 타다가 이제는 보조 바퀴가 아닌 두발자전거를 타게 되는데, 조금은 누가 뒤에서 받쳐 주다가 누군가 “자 이제 달려봐”하며 손을 놔줬을 때도 내 두발로 내가 원하는 데를 달릴 수 있는 그런 자전거 타기라고 생각해요. 결국 도움을 받아 스스로 내가 원하는 곳에 내 두발로 갈 수 있는 것이 ‘자립’이라고 생각해요!
비가 갑자기 쏟아졌던 6월 6일, 기꺼이 시간을 내 준 손지원을 만났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당사자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서 처음 한 인터뷰라 긴장한 나머지 너무나 서툴렀던 것 같다. 하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지원이 덕분에 점점 인터뷰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보호종료아동,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는 다른 ‘내가 원하는 꿈’을 찾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더욱 더 공감할 수 있었고, 준비해간 질문뿐 아니라 즉흥적인 이야기까지 하느라 인터뷰는 길어졌다. 결국 대화가 끝나고 보니 앞에 있던 음식은 다 식어 있었다. 우리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정보’였다. 그만큼 지원이는 정보를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자취방을 구할 때는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2년을 꼼짝없이 물이 새고, 벌레가 드글드글한 집에서 살아야만 했다. 또 분리수거를 자기 기준에서는 정확하게 했다 생각했는데 잘못 알고 있던 정보였고, 그로 인해 벌금 10만원이라는 계획에 없던 지출로 생활비에는 큰 타격을 입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보호종료아동들은 조언을 구할 어른이 주변에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있어도 부양 능력이 부족하거나, 자녀에게 의존적인 경우에는 조언을 얻기는 사실상 힘들다. 또 보육시설 선생님들에게는 떳떳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지 못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굳이 자신의 치부를 밝히기도 싫다. 우리에게 자립은 사회에 나와 홀로 부딪혀 넘어지고, 다쳐가며 배워가는 과정인 것 같다. |
글ㅣ사진 신선 (열여덟 어른 캠페인 캠페이너)
정종현
너무멋있습니다 하는 일 잘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신선님 화이팅!!
이민영
신선님 누군가는 꼭 해주면 좋을 프로젝트를 멋지게 실행하고 계신것에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입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선 씨에게 꼭 전달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신선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보영
훌륭하시네요~ 얼마전 라디오에서 비슷한 사연을 듣고 이런 활동이 있었으면 바랬는데 정말 꼭 필요한 활동이고 국가에서고 직접지원이 힘들다년 공식 커뮤니티라도 마련해 홍보해주면 더 많은 분들이 도움이 될텐데 하는 아쉬움도 깥이 남네요.. 힘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