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도시의 하늘은 괜찮은가요?”
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우린 무엇을 상상하고 답하게 될까?
아마도 미세먼지나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 혹은 내내 이어지는 불볕더위처럼 기후의 문제를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싶다. 그런데 앞선 물음은 짐작되는 질문의 의도와 예상된 답변을 모두 살짝 빗겨나간다. 이 질문은 다름 아닌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초고층 빌딩 사이로 겨우 보이는 하늘이 어느새 너무나 익숙해져버렸고, 공활한 하늘은 애국가에나 있다는 자조가 농담이 되어버린 요즘, 저 조각난 하늘부터 주택가의 담벼락까지 공간에서 시작되는 일상의 성찰을 올해의 <마음을 잇는, 나눔산책> 두 번째 자리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됐다.
공간에 대한 감각을 건드려준 이는 집합도시를 운영하고 있는 이영미 대표. 건축공학박사이기도 한 그가 강연자로 나서기 전, 아름다운재단 기부자와 일반 참가자로 나눔산책에 모인 사람들은 영화 한 편을 함께 봤다. 코고나다 감독의 콜럼버스(Columbus)였다.
공간이 갖는 치유의 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간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 같아요. 진과 케이시라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로 엮여 공간을 더 돋보이게 하고요. 영화는 클로즈업이나 줌인아웃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등장인물과 관객을 거리 두게 만들어요.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지요. 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콜럼버스는 미국 인디애나 주 동남부에 있는 작은 소도시지만 유명 건축가들의 모더니즘 건축물이 가득한 도시로 유명하다. 실제로 영화감독이 도시공간에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 밝혔듯 비어 있는 이야기의 사이마다 건축물이 등장해 각자의 인물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품어주는듯한 인상을 받는다. 물론, 스토리라인에서도 건축이 매개가 되어 등장인물들이 치유 받고 삶의 새 의지를 다지게 되기도 한다.
“공간이라는 것은 너무 익숙한 것이라서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돼요. 우리는 늘 공간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기 때문에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의 공간이 삶의 형태를 바꾸기도 하죠. 삶의 형태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수록 삶의 질도 나아질 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콜럼버스는 건축 공간이 우리 삶을 바꿔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엔 학살당한 유대인을 기념하기 위한 메모리얼 공간이 있다. 높낮이와 폭이 다른 계단과 밟을 때마다 절겅거리는 바닥 때문에 공간에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불편하고 답답하다. 의도적인 설계다. 홀로코스트라는 아픔을 건축으로 표현해 놓음으로써 관람하는 많은 이들에게 당사자의 고통과 역사의 비극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든 장치인 것이다. 이처럼 공간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도 하는 것이었다.
공감하고 연대하는 공간으로
경쟁하듯 지은 초고층 아파트, 건물 외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간판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거리의 풍경들. 인간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인간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유기적 관계라면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도시의 모습에 문득 의문이 든다. 우리의 공간, 이대로 좋은 걸까?
“제가 지방에 살고 있어서 서울에 올 때 고속철도를 타게 되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바깥 풍경을 하나도 볼 수 없더라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우리의 욕망과 맞닿아 있어요. 높은 곳에 올라가면 하늘을 점유할 수 있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고층건물에 가려진 만큼만 하늘이 보이잖아요? 하늘을 보는 건 모두의 권리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경쟁적인 것, 빠른 것이 선이고 느린 건 도태되어버리는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적적한 시골길, 터널, 호수 이런 모습들이 차곡차곡 모여 추억이 되듯이 도시공간도 조금 느리게 가게 되면 그 시간에 축적된 것들이 문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속도 경쟁에 내몰린 도시의 모습에 이영미 대표는 성찰과 연대를 강조한다. 도시의 모습을 만든 것 역시 우리이니 다시 도시공간을 변하게 만드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걸맞지 않다면 남들이 다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 공간엔 꼭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개인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을 말이다.
“연대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는 공간에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내 의식이 좋다고 해서 남들도 좋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처럼 누구의 불편함이 우선인지를 따지기보다 연대해서 함께 변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런 연대의 과정을 경험 하면 할수록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과정은 더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속도와 맞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을 치유하는 공간의 탄생이라면, 더는 속도가 아니라 형태의 다양성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사는 세상이 된다면 더딜지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보고 싶다. 조각난 하늘을 같이 맞춰 끼우며, 빠르게 달려오느라 놓치고 말았던 도시의 풍경을 하나씩 주어 담으며 말이다.
글 ㅣ이소망
사진ㅣ김권일
영상ㅣ정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