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보호종료 당사자 열여덟 어른 ‘신선’입니다. 저는 이번에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캠페이너로 참여하면서 다른 열여덟 어른들을 직접 만나 보았는데요. 열여덟 어른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이 자립하면서 겪었던 사회 편견부터 정책의 문제까지 당사자의 시선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
요셉이의 기억
김요셉(23)은 보육원에 맡겨지기 전 ‘강환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강환영’은 너무 낯선 이름이다. 기억도 없는 2살 때 불리던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4남매를 부양해야했던 어머니는 미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주민등록에도 ‘강환영’이란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셉이의 기억 속에도 보육원에 맡겨진 날은 없다. 학창시절 동안 학교가 끝나면 보육원에 사는 걸 숨기기 위해 집 반대의 길로 가서 친구들을 배웅하고 다시 그 길을 돌아오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 간호사의 꿈을 꾸다
다행히도 요셉이에게는 생활하던 보육원에서 해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주어졌다. 처음 다녀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 손으로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국제 간호사로 일하는 한국인을 만나면서 남을 돕는 일을 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간호사의 모습을 동경하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요셉이는 그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설 내 사회복지사 선생님한테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자기소개서 서류 등을 철저하게 준비했고 마침내 간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입시 과정은 두렵고 외로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친구들은 부모님이 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입시요강을 따져보고, 도움을 제공해주지만 요셉이는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셉이는 수능 시험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은 부모님이 와서 고생했다고 토닥여 주고,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어요. 하지만 저는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고, 쉴 시간도 없이 바로 아르바이트를 가야해서 서럽더라고요.
오히려 요셉이는 대학 진학을 놓고 어머니와 갈등이 생겼다. 어머니는 간호학과 입학을 앞둔 그에게 ‘대학 갈 시간에 취업을 해서 자신을 부양하라’고 했다. 그러나 요셉이는 오랜시간 품은 꿈을 놓을 수 없었고, 대학진학을 선택했다.
치열하게 달려야만 했던 대학생활
고등학생 시절 그에게 대학생활은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대학에 진학할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금을 받지만 식비, 주거비, 통신비와 같은 생활비로 쓰고나면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결국 요셉이는 대학에 와서도 쉴 새없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입시를 준비했던 시절과 못지않은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그 와중에 ‘현타’가 온 계기도 있었다. 근로장학생으로 병원에서 일하면서 외국인 환자들을 만났는데, 막상 한마디의 의사소통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외국인과 유창하게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졌다. 학과 공부와 함께 근로 장학생으로 빠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어학공부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요셉이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휴식
보육원에서 유일하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요셉이는 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놔버리면 자신을 지지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걸 알기에 입시 준비부터 아르바이트, 인간관계까지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취업을 앞둔 상황에 한 번쯤은 어학공부에 집중해보고 싶었다. 시야를 넓힐 수 있게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싶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며 소통도 하며 잠시 쉬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요셉이는 대학교 4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계획했다. 휴학 동안은 생활비를 줄여서 수급비로만 생활하더라도 아르바이트 부담을 줄이고 어학공부와 세상을 나갈 준비를 하고 싶었다. 서울에 있는 학원과 그동안 지낼 집까지 철저하게 알아본 뒤 요셉이는 휴학을 감행했다.
그런데 휴학을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게 됐다. 기초생활수급비는 보호종료아동이 대학에 진학했을 경우 15학점 이상을 이수하는 한에서만 지급된다는걸 알게 된 거다. 만약 휴학을 할 경우에는 3개월까지만 기초생활수급비를 지급한다. 수급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1년간의 계획을 이미 세워놨던 요셉이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요셉이는 “결국 휴학 뒤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하면서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수급비를 받으면서 학교를 다니는 것만 못한 것 같다. 국가지원을 받는 대학생은 잠깐 쉬어갈 자격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요셉에게는,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보호종료 청년에게는 짧은 휴식조차 허락되지 않는건지 생각이 깊어졌다.
보육원을 퇴소한 뒤 보호종료아동이 대학에 진학할 경우, 국가의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에 해당되어 매월 50~6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우리에겐 기초생활수급비는 유일한 동아줄이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주민센터를 찾아가는 순간 마음을 졸인다. ‘혹시 그 동아줄이 끊어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은 20대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수급비를 받음으로써 국가에서 소득으로 인정하는 금액 이상으로 벌수도 없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탈락되거나 수급비가 삭감되기 때문이다. 주거비, 의복비, 식비, 등록금 등 수많은 비용을 혼자 감당해야하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삭감되는 금액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는 이들도 있다. 주변의 대학생들처럼 학과 공부 외에 동아리 활동이나 해외여행, 대외활동까지 하는 건 우리에게 어쩌면 큰 도박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글, 사진ㅣ신선 (열여덟 어른 캠페인 캠페이너)
양미정
사회를 모르는 아이와 같은 친구들이 어른으로 살아가기에 팍팍한 곳인데요. “딱 기초생활만을 유지할 수만 있는 지원은 결국 보호종료아동들을 우물 안에 가둬 놓은 채 주위를 돌아볼 여유마저 빼앗아 가는 것 아닐까?” 이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을까요. ‘열여덟어른’이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원책의 변화가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