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토요일 오후였지만 “어제 새벽까지 일을 했다”는 신동진 씨의 얼굴에는 아직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하필 전 날 ‘불금’ 저녁에 몰린 단체 회식으로 한바탕 전투를 치른 흔적이 온 몸에 가득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대학 새내기인 동진 씨는 지난해까지 아름다운재단에서 교육비를 지원받았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지역자활센터에서 아름다운재단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을 소개받았고,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은 것이다. 이미 지원 기간이 끝났는데도 힘들게 인터뷰 시간을 내준 게 고마워서 감사 인사를 했더니 “아니에요. 아름다운재단에 많은 도움을 받아서 언제라도 요청이 있으면 인터뷰를 하려고 했어요”라는 차분한 답변이 돌아왔다.
방황의 끝에 만난 따뜻한 손길, 그리고 기회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상조차 안 되지만, 중학교 시절 동진 씨는 전혀 달랐다. 그는 “불량학생이었죠. 성격이 불 같았어요. 학교도 많이 빼먹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방황의 시간은 길었지만 학교 선생님은 그런 그를 ‘문제아’라고만 생각할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변화의 시작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은 동진 씨가 왜 자꾸 엇나가는 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 했다. 선생님으로부터 제대로 관심을 받으면서부터 동진 씨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역자활센터를 알아보고 연계해준 사람도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덕분에 긴 방황을 끝내고 마음을 잡았지만, 이어진 길은 평탄대로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동진 씨는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가 무상교육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문제집이나 참고서도 사고 학용품도 사야 하는데 교육비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그가 살던 동네는 성적 경쟁이 유달리 심한 곳이었다. 큰 학원가도 있었다. 동진 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중학교부터 확실히 차이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에서 받은 교육비도 대부분 문제집을 사는 데 썼다. 1년에 약 20권 정도를 샀다. 그가 푼 문제집이 책장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동진 씨가 새로 가지게 된 것은 문제집이나 교복만이 아니었다. “희망 같은 것도 없었고 ‘뭘 해도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던” 그에게 장학금은 “‘뭘 해도 되겠다”는 희망이 생긴 터닝 포인트“였다. 희망이 없어 시도를 하지 않고 그러다가 기회를 놓쳐 희망도 사라지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희망이 생기면서 의욕도 함께 커졌다. 고등학교 교육비 사업에 기부하는 한국토요타자동차는 매년 장학생들을 불러 장학증서 수여식을 하는데, 그는 그때마다 ‘내가 이렇게 장학금을 받는구나. 더 노력해야겠다’고 실감하면서 의지를 다졌다. 특히 두 번째 해에는 장학증서전달식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리던 그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과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긴 셈이다. 그가 얻은 희망, 의욕, 자신감은 공부만이 아니라 모든 생활을 바꾸어놓았다. 그는 역사탐방 동아리에 들어갔고 2학년 때는 회장도 할 정도로 열정을 쏟아 부었다.
생각보다 높은 현실의 벽… 그래도 뚜벅뚜벅
그러나 인생은 역시 만만치 않다. 한 번의 극적인 사건 뒤에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을 맺는 동화와는 다르다. 동진 씨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성적이 기대만큼 오르지는 않은 것이다. 동진 씨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뒤늦게 고 2때부터 입시학원을 다녔다. 그는 “어느 이상은 안 올랐다. 다른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다니니까 성적 오르는 것도 쉬운데 난 그게 안 됐다”고 말했다. 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동진 씨는 결국 전공을 바꿨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한국사를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였다. 70점만 맞아도 합격인데 꼭 만점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바람대로 만점으로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범대에 진학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고 재수를 할 여력은 되지 않았다. 그는 고3 때 급하게 사회복지로 전공을 바꿨다. 그 동안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도 좋겠다 싶었다.
지금도 동진 씨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 사회복지가 자신의 전공에 맞는지 지금도 확신이 없다. 사회복지 분야로 나아간다 해도 그 안에서도 어떤 직업으로 나아갈지 선택해야 한다. 지금은 정신보건 쪽에 관심이 있지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당장 학업과 생활을 병행해야 한다. 그는 대학에 들어온 뒤 쉬지 않고 일했다. 지금의 고깃집 전에는 술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고 막노동도 해보았다. 일이 많다보니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건강도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학교를 쉬자니 이후에 진도를 따라잡는 게 더 어려울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동진 씨는 머리가 복잡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하는 게 나을지, 일단 학교를 쉬고 돈을 벌어놓는 게 나을지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직업을 준비해야 할 지, 무엇이 자신의 길인지도 찾아야 한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동진 씨는 “이번 겨울에는 여행을 다녀온다든지 해서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어요. 저만의 시간이 없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신뢰’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동진 씨에게 아름다운재단에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어봤다. 의외의 쓴 소리가 돌아왔다. “사업의 취지는 참 좋은데 절차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영수증 증빙 등의 행정 처리 과정을 지적한 것이다. 동진 씨는 “교육비를 받고서도 ‘어떻게 써야 할까, 써도 될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본인만이 아니라 이를 처리하는 사회복지사의 업무까지 고려한 걱정이었다. 자신이 많이 쓸수록 사회복지사의 업무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이런 사업에서 지원을 받는 사람은 남들에게 신뢰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이런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 자율적으로 돈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복지는 클라이언트(복지 대상)가 바뀌도록 이끄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어떻게 바뀔지 결정하게 해주는 거잖아요.”
사회복지의 현장과 이론을 모두 경험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지적이다. 동진 씨는 그러면서 이런 장학금을 신청하게 될 동생들에게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기회는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다웠다.
“받을 수 있는 거는 다 받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름다운재단의 장학금도 받고 다른 것도 받고요. 자격증도 많이 따고 뭐든지 다 해놓는 게 좋아요. 돈도 많이 모으고.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미루면 절대 안 돼요. 시작이 반이잖아요.”
동진 씨의 이러한 충고는 참으로 옳다. 그러나 더 많은 청소년들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일단 이런 기회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쉬워져야 한다. 손을 뻗기조차 힘든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가야 한다.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믿고 격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출발선이 바뀌고 기울어진 운동장도 평평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과 실천. 이것이 동진 씨와 여러 장학생들이 아름다운재단,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과제일 것이다.
글 박효원 l 사진 김권일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면 또다시 가난해집니다. 세대를 잇는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안정적인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배움과 미래에 대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지탱해줄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의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성적순으로 주는 ‘상금’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에 힘을 실어줄 ‘희망’이 되고자 합니다.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와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