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시작된 아름다운재단 ‘한부모여성가장건강권지원사업’은 한부모여성가장의 근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건강검진과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노동력이 생계를 위한 유일한 자산인 여성가장들에게 건강은 필수조건이라는 점에서 한부모 여성가장의 건강권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2019 한부모여성가장건강권지원사업’은 한국사회복지관협회(www.kaswc.or.kr)와 협력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삶의 전환점, 로또 맞은 기분. 더 늦기 전에 찾아온 기회.”
김은주(가명, 50)씨가 아름다운재단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에 대해 내놓은 평가다.
은주 씨는 올해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국가에서 하는 생애주기 검진은 예전에도 몇 번 받았지만, 이번에 받은 건강검진은 많이 달랐다. 아주 특별했다. 은주 씨는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하더라구요. 드라마에서 ‘상류 사람’들이 검진 받을 때처럼 가운도 입고요. 상승감이 생긴다고 할까요?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은 그런 느낌.”
지금은 참 밝고 당당해 보이지만, 원래 은주 씨는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늘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을 놓고 살아온 엄마…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될까”
세상에 쉬운 부모 노릇은 없다지만, 혼자서 아픈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여성가장의 삶은 더욱 팍팍하다. 은주 씨는 미술을 가르치는 시간제 강사다. 오래 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디스크가 있었고 오랫동안 서있는 강의 업무가 관절에 나쁘다지만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관절이 악화되면서 은주 씨는 계단을 내려가다가도 무릎이 꺾여 넘어지기도 했다.
직장에 돌아와도 ‘엄마 역할’은 퇴근할 수 없다. 은주 씨는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불안장애와 언어지연장애가 있는 12살짜리 아이는 종종 과한 행동을 보인다. 아이를 말리고 달래다 보면 허리와 목은 더 쑤셨다. 통증은 점점 등을 타고 허리까지 내려갔다. 몸이 절로 뒤틀렸다. 아침에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옆으로 굴려서 몸을 일으켜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건강할 리 없다. 은주 씨는 13년 전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과 스트레스가 오랜 세월 계속되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머리 오른쪽이 뭉치기 시작했고 통증 부위는 점점 커졌다. 역류성 식도염도 생겨서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배가 고픈데 밥을 먹지 못했고 건강은 더 나빠졌다.
그러나 은주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한번에 7천 원 하는 우울증 진료비가 아까워서 참고 참다가 너무 힘들 때만 병원을 찾았다. 몸이 심하게 쑤셔도 1만5천원이 드는 물리치료 대신 3천 원짜리 바르는 진통소염제로 버텼다. 그러다가 무릎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올해부터 시간제 강사 일을 많이 줄였다.
그나마 국가에서 해주는 생애주기 검진은 꼬박꼬박 받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검진을 할 때마다 “유방 쪽에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이 나왔고, 실제로 가슴에 찌릿찌릿 하는 느낌이 들어서 불길했지만 추가 검진은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걱정이 컸다.
다행히 올해는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 아이가 장애등급을 받으면서 치료비 걱정이 줄어들었다. 아이는 학교에도 서서히 적응을 했다. 그리고 은주 씨는 올해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정밀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 동안 찜찜했던 몸의 문제들을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였다.
녹내장 진단에 “360도를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온 느낌”
귀하게 대접 받는 느낌으로 기분 좋게 검진을 받아보니 다행히 걱정했던 유방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걱정거리 하나가 줄었다 싶었는데, 생각도 못했던 녹내장 의심 소견이 나왔다. 은주 씨 자신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 동안 왜 몰랐을까 싶더라고요. 녹내장은 수술해서 낫는 게 아닌데, 혹여나 제 눈이 안 보이면… 제가 아이를 돌봐야지, 아이가 날 돌볼 수는 없잖아요.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뭐랄까, 360도를 돌면서 주변을 쭉 둘러보고 제 자리로 돌아온 거 같은 마음이었어요.”
2차 검진은 절차나 방식이 낯설었고,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겹쳐서 더 겁이 났다. 그렇게 검진을 받고 나서 은주 씨는 ‘녹내장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녹내장은 중기가 넘어가면 급격히 시력이 나빠지지만 초기에는 관리만 꾸준히 하면 상태가 악화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안심은 금물이다. 의사는 “6개월 뒤에 다시 상태를 보자”고 했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던 은주 씨는 검진 결과에 대해서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검진을 받지 않았더라면, 녹내장이 악화됐더라면, 그리고 다른 질병도 자라나도록 자신을 그대로 방치했더라면… 그가 이번 검진을 통해 피해간 미래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은주 씨는 이 기적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눈에 좋다는 영양제, 관절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서 열심히 챙겨먹는다. 운동에도 신경을 쓴다. 집 안에서도 좀 더 부산스럽게 논다. 아이랑 스트레칭도 하고 같이 아파트 단지를 돌기도 한다. 앞으로 아이가 더 성장해도 함께 즐겁게 놀기 위해서다.
밥과 찌개만으로 먹던 식단에 반찬을 늘렸다. 야채를 많이 먹으려고 신경을 쓴다. 가끔씩은 스파게티 같은 특식도 만든다. 집안 풍경마저 달라졌다. 한참 우울했던 지난해에는 집안도 엉망이었다고 한다. 차마 청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쌓여있던 집안이 한층 깔끔해졌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니 기분도 좋아졌다.
기적을 붙잡은 엄마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건강검진이 바꾼 것은 몸의 건강만이 아니다. 은주 씨는 삶의 태도까지도 바뀐 것 같았다. 시간제 일을 하다가 시간이 남으면 그냥 어딘가에서 ‘대기’를 하던 은주 씨가 이제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예전의 그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스러워서 이렇게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의 험한 시선에 지레 쪼그라들어 살아왔던 은주 씨.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끝나지 않는 풍파에 지쳤던 은주 씨.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아이에게 늘 미안했던 은주 씨. 그래서 자신은 그저 포기하고 살아온 은주 씨는 이제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었다.
은주 씨는 “그 동안은 늘 아이가 먼저였지만 이제는 나도 챙겨야겠다”면서 밝게 웃었다. 삶이 벅차서 아프고 아파서 삶이 더 고달파지는 한부모 여성가장의 삶. 그 악순환의 흐름은 이렇게 아름다운재단의 건강권 사업을 통해 조금씩 바뀌었다. 은주 씨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만든 이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글 박효원 |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