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시작된 아름다운재단 ‘한부모여성가장건강권지원사업’은 한부모여성가장의 근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건강검진과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노동력이 생계를 위한 유일한 자산인 여성가장들에게 건강은 필수조건이라는 점에서 한부모 여성가장의 건강권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2019 한부모여성가장건강권지원사업’은 한국사회복지관협회(www.kaswc.or.kr)와 협력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최근 방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인공 동백은 늘 손목에 보호대를 하고 있다. 한부모 여성가장으로 혼자 아이를 돌보고 식당 일까지 하려니 손목의 통증이 만성화된 것이다. 첩첩히 쌓인 일을 잠시도 놓을 수 없고, 그렇다고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도 없는 동백에게 손목 보호대는 유일한 보호막이다.
동백의 모습은 많은 한부모 여성가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들은 독박육아와 독박부양을 오롯이 짊어지고 산다. 게다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여성의 경제력이 제한적이다. 몸을 많이 쓰는데 수입은 적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주로 이들에게 돌아온다.
이런 일을 하면서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다 보면 건강마저 해치기 쉽지만,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늘 빠듯하다. 흔히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한부모 여성가장에게 ‘건강할 때’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놓을 때다. 그래서 “이 정도는 괜찮다”면서 이를 악물고 버티지만, 몸은 “전혀 괜찮지 않다”면서 비명을 지른다.
이런 한부모 여성가장 옆에 선 사람들, 지역복지관의 사회복지사들은 한부모 여성가장의 상황을 악순환으로 묘사했다.
아름다운재단의 건강권 지원사업은 참 좋은 ‘핑계’
중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성다솜 사회복지사는 “불행은 겹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직장을 다니지 않다가 홀로 서게 된 한부모 여성가장들은 대부분 경력단절 상태였다. 육체노동이 많이 필요한 일을 했고 그러면서 아이도 함께 돌봤다.
파주시문산종합복지관의 조은정 사회복지사 역시 “전문직이 아닌 이상 아직도 한부모 여성가장들은 경제적으로 참 어렵다”면서 “토요일까지 출근하거나 매일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 아르바이트를 2~3개씩 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어떤 한부모 여성가장은 노동시간이 늘었다고 좋아했는데 몸을 해쳐서 결국 일을 줄였다고 한다.
이렇게 일을 하고 나서는 한부모 여성가장들은 집에서도 일을 해야 했다. 아이를 돌보고 밥을 짓고 청소를 했다. 그러다 보니 디스크 등의 근골격계 질환이 흔했다. 그러나 이들이 병원에 갈 때는 대부분 아이의 진료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보기에는 돈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자신이 아플 때는 참고 참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병원을 찾는다.
우울과 스트레스도 공통된 특징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혼자 기르는 자립의 과정에서 한부모 여성가장은 큰 상처를 입었다. 때로는 시댁은 물론 친정 식구들에게까지 “네가 참고 살아야지”라는 비난을 들었다. 이혼 과정에서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친정과의 관계마저 끊겨 더 외로워진 한부모 여성가장도 많았다.
본인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에게는 늘 미안하다. 조은정 사회복지사는 “한부모 여성가장은 죄책감 때문에 아이를 엄하게 훈육하지 못해서 이후 성장 과정에서 자녀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 갈등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렇게 부담감·죄책감·소외감 등이 꼬리를 물면서 우울증을 만든다. 마음의 악순환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름다운재단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은 어쩌면 좋은 ‘핑계거리’다. 돌봐줄 누군가가 없는 사람, 자존감이 밑바닥인 사람, 참고 사는 게 오히려 편한 사람에게는 병원에 갈 때조차 명분이 필요하다. 건강권 지원사업은 한부모 여성가장이 마음 편하게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기회이자 좋은 명분이다.
검진을 받은 한부모 여성가장들의 공통점…”얼굴이 달라졌어요”
한부모 여성가장들의 자기 돌봄은 검진 전부터 시작된다. 신청 과정에서 한부모 여성가장들은 평소에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던 건강 문제를 사회복지사에게 이야기하고 상담을 한다. 사업 참여자로 선정된 뒤에는 검진 항목을 정하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건강 상태를 돌아본다. 이는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발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조은정 복지사는 “그 동안은 건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없었는데 이번에 사업 신청서를 쓰면서 많이 알게 됐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2년을 만나오면서도 듣지 못했던 한부모 여성가장의 건강 상태를 새로 파악한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눠보면 한부모 여성가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건강권 지원사업에 적극 참여하곤 했다. 평소에는 “야근해서 그래요.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하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조은정 복지사는 “그 동안 건강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한부모 여성가장들도 스스로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저 모르는 척 했을 뿐이다. 내심은 참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어쩌면 “괜찮아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주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주어진 기회 앞에서도 뒷걸음질을 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불안 때문이다. 심각한 질병을 발견해도 이들은 싸울 무기가 없다. ‘질병을 고쳐서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은 치료를 받을 여력이 있을 때 하는 이야기다. 손을 못 댈 바에야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다. 성다솜 복지사는 “이럴 때는 오히려 힘든 삶에 새로운 짐만 추가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아름다운재단의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은 한 번의 검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2차 검진과 수술에 대한 비용도 함께 지원한다. 성다솜 복지사는 “사업에 연속성이 있어서 마치 한 편의 이야기 같다”고 했다. 검진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를 필요 없이 간단한 신청으로 연속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업에 참여한 한부모 여성가장들의 변화를 묻자 두 사회복지사는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얼굴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조은정 복지사는 “말로는 ‘검진 안 받고 싶다’고 했던 분조차 막상 검진을 할 때는 표정이 너무 밝았다”고 했다. 성다솜 복지사 역시 “검진을 받고 난 분들이 얼굴이 확 펴서 오셨다. 정말 좋았다는 걸 바로 알았다”고 전했다.
“어머님, 이기적으로 스스로를 챙기셔야 합니다.”
두 사회복지사가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가 또 있다. 한부모 여성가장들을 향한 조언이다.
일단 어려워하지 말고 복지관에 나오라는 것, 그래서 더 많은 기회를 잡으라는 것이다. 어떤 한부모 여성가장은 복지관에 다니면 남들이 자신을 불쌍하게 볼까봐, ‘혼자 사는 여자’라고 알려질까 봐 걱정이 돼서 움츠러든다고 했다. 현장의 복지사들은 “복지관은 모든 지역 주민들을 위한 기관인데도 낙인감 때문에 이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조언은 이기적으로 스스로를 챙기라는 것이다. 조은정 복지사는 ”내 건강이 가정의 건강이라는 생각으로 자기 관리를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다솜 복지사 역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건강을 돌아보셔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행기에 비치된 사고 행동요령을 보면 긴급 상황에서는 보호자가 먼저 산소마스크 착용한 뒤 아동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도록 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순서가 반대일 것 같지만, 보호자가 먼저 안전해야 아동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난기류 속을 비행하는 한부모 가정에서도 여성가장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껴야 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해피엔딩이다. 여러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가 있었고 무엇보다 동백이 스스로 각성한 결과다. 이 땅의 한부모 여성가장들도 동백처럼 참 강하고 장하고 훌륭하다. 이 엄마들이 계속 강할 수 있도록,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이제는 엄마들이 스스로를 챙기고 우리 사회가 엄마들을 함께 돌볼 차례다.
글 박효원 |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