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도 드러나듯 공익단체의 프로젝트에 ‘스폰서’가 되어 주는 지원사업입니다. 사업 기간이 3개월로 다소 짧지만 그만큼 알차고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2019서울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의 못다 한 이야기
2011년 5월. 서울 강남 3구 일대(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와 과천에 소재하는 무허가 판자촌 마을 23곳을 조사했었다. 8년이 지난 2019년 7월, 당시 조사했던 마을을 다시 방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을 주거 환경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같은 서울시내지만 강북에서 흔히들 하는 마을 만들기와 달리, 집과 마을을 가꾸고 개선하는 일이 금지된 것도 여전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철거위협은 없지만 그래도 개발 사업이라도 한다 하면 당장 다시 또 쫓겨 나가야할 상황은 여전하다. 그 틈에도 텃밭을 일구고 마을을 가꾸려는 흔적은 여전하다.
강남, 그리고 판자촌
강남. 한때 논바닥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비싼 동네가 됐을까. 한동안 아파트 건설 붐이 일더니, 밀레니엄 시기가 도래하고 나서는 타워팔리스(‘궁전탑’이라니 얼마나 촌티 나는 이름인가!)를 필두로 해서 한창 고층 주상복합 건설 붐이 쓸고 갔다. 부동산 불패 신화, 그리고 강남 학군. 서초구에서부터 강남구 이제는 송파구까지 뻗혀진 부와 성공의 상징 강남 일대에 모두들 오고 싶어 하지만 이곳에 발을 들여 놓기란 보통 시민들에게는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었다. 이런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판자촌이 숨어있다.
판자때기나 비닐천막, 또는 샌드위치패널 같은 재료로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이 작게는 10채씩 많게는 백채씩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한때 천 채가 넘게 있던 구룡마을은 이제는 재개발을 앞두고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서울이 한참 개발되던 80-90년대. 서울 중심가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비닐하우스 논 때기만 있던 이 강남일대에 터를 잡고 판자촌 마을을 꾸렸다. 곧 무허가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고, 강남 개발 붐으로 인해 마을은 조금씩 잠식되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나마 조각조각 남아있는 마을은 건물들 사이에 가려져버렸다. 지금은 아는 사람을 통해서만 찾아갈 수 있는 숨은 마을, 소설 속 공간 같은 곳이 되었다.
‘타운’ 이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장 이상한 도시국가. 밖에 있는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 있는 누구도 나가려 하지 않는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국가에서 사하맨션은 유일한 통로 혹은 비상구 같은 곳이다.
– 소설 『사하맨션』 중
떠나지 않거나 못 하거나
마을을 떠나지 않거나 못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일터와의 거리, 생활권에 대한 고민, 목돈이 들어가는 임대아파트 보증금 대출과 이자에 대한 부담. 임대료로 나가는 월세 부담.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도 언제 또 나앉아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마을 이웃사촌과 마을 문화에 대한 매력. 마을 밖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라는 막연한 두려움. 이 마을에 있어도 나가 살아도 졸졸 쫓아올 수천만 원의 토지 변상금 고지서. 또는, 버티고 싸우면 아파트 분양권을 받게 될 거라 부추기는 사람들로 인해 갖게 되는 막연한 기대. 한편 무허가 집이라 해서 공짜로 들어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름한 판잣집이라고 해도 천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지불하고 구매해서 들어온 집인 만큼, 이사 나갈 때 그냥 빈손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게 이곳 판자촌이란
콘크리트와 벽돌로 말끔하게 지어진 집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허름하고 불편한 판자촌이지만 주민들마다 이 공간은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다. 과천 꿀벌마을 마씨는 처음 마을에 이사 들어올 때 심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집안이 기울어지고 과천 어디 2층짜리 주택의 반지하방에 세 들어 살았어. 그때 깨달았지. 사람이 드나드는 문에도 계급이 있다는 걸 알았어. 들어가는 입구부터 달랐어. 집주인은 중간 대문, 2층에 사는 사람은 옆문, 내가 사는 지하방은 보이지도 않는 쪽문을 이용해야 했어. 사람이 드나드는 문에도 이렇게 계급이 있더라구. 창피하더라구. 그러다 여길 이사 왔는데, 나는 이 둥근 천장의 비닐하우스집들과 마을이 너무 좋은 거야. 들어가는 입구도, 집집마다 모양도 특별한 구분도 없고. 동네가 차별화되지 않아서 좋았어.”
사당역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채석장과 고물상 터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그 뒤로는 작은 녹지 공간이 있다. 이런 뒷산에 아랫마을, 윗마을로 구성된 성뒤 마을이 있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터에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진 판잣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곳에 사는 천씨에게 이 마을은 너무 각별했다.
“암수술 2번 받고 죽을 거 같더라구요. 어디로 가고 싶은데 애들은 어리고 어디를 못 가잖아요. 여기를 와보니까 너무 좋아요. 여기 전부 다 산이고… 여기가 불이 난 적이 있어서 동네가 불나고 나서 쓰레기장이었어요. 그거를 내가 매일매일 봉투사다가 치우고, 여기 암 환자들이 많으니까 링겔병들이 많아요. 그거를 다 치웠어요. 제가… 살면서 조금씩 치우고 가꾸면서 내 마음도 같이 치료가 된 거죠.”
“꽃 사다 심고, 뭐든지 갖다 심어야 될 것 같더라고요. 산에게 괜히 미안하더라고요. 아는 분에게 부탁해서 소나무도 잔뜩 심고, 뭐든지 갖다 심고… 산에 너무 미안한 거에요. 녹색을 바라보면 마음이 치유가 되고, 그래서 여기까지 내 목숨이 온 것 같아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진짜요. 풀 한포기라도 전 잘 안 뽑아요. 눈 뜨면 일어나서 정원들과 대화하고, 정말로 그러고 살아요. 사람들이 나보고 감동을 많이 먹죠. 처음엔 왜 이러고 사는가. 내가 사는 이유가 여기 있으니까. 여기 놀러오면 꽃 몇 개씩 따다가고, 가지 몇 개씩 따다가고 그렇게 나누고 하려고 심는 거지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요. 여기 집을 짓고 사는 게 산에게 미안해서 이 산을 다시 되돌려 주고 싶고, 그래서 많이 갖다 심고 그래요. 저는 매일 아침 눈뜨면 한 바퀴 돌면서 얘네들과 대화해요. 대화하고 새소리 듣고. 계절마다 새소리가 다 달라요. 이렇게 새소리를 들으면 계절을 다 느껴요. 이게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여기에서 사는 기쁨이에요. 이 작은 공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여긴 ‘천00″씨 천국이라고 그래요. 동네에서도 그래요.”
자신이 사는 주거환경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개인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고통의 공간이고, 어떤 이에게는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공간, 기쁨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떤 집을 지어서 살 것인가? 가 아니라, 이 집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로 생각해 본다면 ‘집’이라는 공간과 더불어 ‘마을’이라는 공간이 내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위안의 공간, 환희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는 무허가라고 하여, 그리고 나중에 혹여 누가 개발이라도 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질까 봐, 또는 이런 마을이 더 늘어나면 골치 아파지니, 수십 년 동안 굳이 기반 시설 공급도 안했고, 주민들이 집과 마을 터를 개선하지도 못하게 해왔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언제 당장 나가라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집이나 마을을 가꾸고 개선하는데 돈을 들이기 주저해왔다. 차라리 10년이든 20년이든 일정 기간은 살게 해줄게요 라고 해주기라도 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말이다. 그러는 수십 년 동안 마을이 자리 잡은 토지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몇 마을은 최근 몇 년 사이 재개발 계획이 들어서긴 했지만, 그게 언제 실현될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주민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불투명하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강남 일대 판자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들은 보통 양철판 벽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그 존재가 있는지 조차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스러운 공간. 강남 일대 판자촌 주민들은 사람이 사는 ‘마을’로 시민들에게 인지 되지 못하고 있다. 강남 판자촌에 대한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시각은 제각각이다. 존재 자체를 몰랐거나, 투기세력으로 본다거나, 도움의 손길을 줘야할 빈곤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보거나. 마을 공동체를 살려가야 한다거나. 돈이 없는데 굳이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강남 일대에 사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거나. 하지만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게 우선 필요하지 않을까.
글 |사진 사회적도시건축가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