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가족 대부분이 주거비 부담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2019 주거영역 통합공모 사업> 선정단체인 한국한부모연합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한부모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의 결과 발표회를 진행했다. 사업 결과를 토대로 <한부모 주거 실태와 주거 개선 방안>에 대한 토론과 제언도 이뤄졌다. 사업을 담당했던 조은영 활동가(한국한부모연합)는 이렇게 말했다.
“한부모가족의 평균소득은 전체 평균에 56%로 현저히 낮습니다. 그런데도 주거비로 14%를 감당하는 게 현실입니다. 부채가 있는 경우에는 주거비가 37%까지 치솟습니다, 저희가 만난 한부모가족 대부분이 주거비 부담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주거 지원 정책의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번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참여한 한부모가정은 총 69가구이고, 심사를 통해 이중 48가구가 선정되었다. 이들은 각각의 상황에 맞게 보증금과 임대료, 내부수리비, 집기 교체비를 지원받았다. 그 과정을 담당했던 조 활동가가 현장에서 느낀 문제는 무엇보다도 열악한 주거 환경이었다. 사업에 참여했던 세 명의 사례 발표자가 이날 공통으로 짚은 문제도 그와 같았다.
한부모가정 주거복지제도의 현실
김희정(가명) 씨는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서울시 관악구에 거주하고 있다. 한부모 가장인 그녀는 어렵게 전세임대 대상자로 선정되었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찾아간 부동산마다 “전세임대는 절차가 복잡해 집주인들이 꺼린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집을 구하지 못할까 봐 “요즘 세상 좋아졌네. 이혼하면 집도 주고.”라고 말하는 부동산 주인에게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몇 달을 발품 팔아 겨우 집을 구했지만 지원받은 보증금 9천만 원으로 갈 수 있는 집은 반지하 뿐이었다.
또 다른 한부모 가장인 이명희(가명)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전세임대라는 말을 꺼내자 집주인은 3천만 원이었던 보증금을 8천만 원으로 올려 받았다. 월세 20만 원을 추가로 요구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를 사람들은 마치 부당하게 취한 이득인 양 취급했다.
그나마도 어렵사리 입주한 집에는 곰팡이가 가득했다. 집주인은 절대 수리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환기를 자주 시키라 했지만 백일 된 아기가 있는 집에서 한겨울에 창문을 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마저도 계약이 끝나는 2년 후면 다시 집을 구해야 한다. 날마다 치솟는 집값을 보면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녀는 청중들을 향해 물었다. “제가 받은 것이 정말 주거복지인가요?”
모자원에서 지냈던 조은비(가명) 씨는 늘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CCTV가 24시간 작동했고, 매달 통장 명세서를 제출해야 했다. 혼자 서서 씻기 힘들 정도로 비좁은 화장실과 짐을 놓을 곳조차 없는 작은 방에서 나오려면 돈이 필요했다. 임대주택에 예비 5번으로 선정됐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당장의 이사 비용과 보증금 500만 원, 그리고 월세 50만 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모자원을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시설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립도 큰 문제였다. 조 씨는 “시설에서는 육아 고민을 함께 나누거나 양육법을 배울 이웃을 만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부모가정에 집다운 집을
장희정 공동대표(한부모가족회 한가지)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저소득 한부모가족으로만 한정된 주거 지원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만 받아도 중위소득 50%를 넘는다는 이유로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주거 사각지대에 있는 한부모가정이 많다. 현실적이지 못한 전세임대 보증금도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낮은 보증금 지원이 오히려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선정자들을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거 복지 모델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성애 정상 가족 중심으로 기획된 현행 정책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임대주택에 2인이 입주할 경우 1개의 방이 주어진다. 당연히 부부일 것이라고 산정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한부모가족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장 대표는 다양한 가족의 등장에 따라 기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거 복지를 물리적 공간만 지원하면 끝나는 것으로 한정해 보는 시각도 문제다. 유미숙 팀장(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은 이 점을 지적했다. “한부모가장이 주거 위기에서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시설에 입소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설 입소는 지역과의 단절을 의미해요. 이런 단절은 한부모가족에 대한 편견만 강화할 뿐이에요. 처음부터 지역 사회에 정착해 자립할 수 있는 정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번 사업을 담당했던 오진방 사무국장(한국한부모연합)은 청중들을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집에 가면 편안하신가요? 마음 놓고 쉴 수 있나요? 저희가 안식처로 집을 상정했는데 사업을 하다 보다 그렇지 않은 집을 많이 만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유미숙 팀장(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지적대로 한부모가정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이번 사업은 견고한 시멘트 틈 사이에 피워낸 민들레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에 안주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154만 한부모가족 중 주거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가구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한부모가족에게는 집다운 집이 필요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는 가장 기본적인 헌법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지켜져야 함을 다시금 확인한 자리였다. 헌법 제35조 제1항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글 ︱우민정
<2019 주거영역 통합공모 사업>을 통해 한국한부모연합을 비롯한 6개 단체가 선정되어 주거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2019 주거영역 통합공모 사업은 주거영역기금, 이채원의같이나눔기금, 달팽이기금, 희채행복기금으로 지원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