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보호종료 당사자 열여덟 어른 ‘신선’입니다. 저는 이번에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캠페이너로 참여하면서 다른 열여덟 어른들을 직접 만나 보았는데요. 열여덟 어른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이 자립하면서 겪었던 사회 편견부터 정책의 문제까지 당사자의 시선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
‘명절’ 누군가에게는 돌아갈 따뜻한 공간이 있어 기대에 부푸는 시간이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바삐 살아가고 있던 가족들과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 해를 살아갈 용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보육원을 떠나온 뒤 나에게 명절은 그저 추가 알바를 더해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친구들 몇몇은 보육원에 찾아가거나 주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갈 곳이 없어 홀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지난 추석만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보호종료아동끼리 모이는 가족모임에 초대받아 다녀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처음 본 사이었지만 동생들은 편하게 말을 걸어줬고 난생 처음 명절에 전을 부치며 함께 1박 2일을 보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해준 윤재근(29)도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심하게 낯을 가리지만 친절했고, 맏형으로서 동생들을 이끌어 가던 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보육원 생활과 학교생활 속에서 소심할 수밖에 없던 재근
내가 만나고 온 재근은 꽤나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말이 남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틀린 말을 했을까 하는 걱정에 말을 아끼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린 시절 보육원의 단체 생활 속에서 형들과 선생님들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항상 눈치를 보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재근은 5살이 되던 해인 1995년에 보육원에 맡겨졌다. 당시 보육원은 선생님보다 형들의 권력이 더 막강했던 시절이었다. 유독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재근은 형들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고, 왜소한 체격탓에 덩치 큰 친구들이 목을 조른다거나 머리를 치고 가기도 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던 상황에 재근은 매순간 긴장했고,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는 버릇까지 생겼다. 밤이면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언제 형들이 깨워서 괴롭힐지 몰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혼날 거면 빨리 혼나고 편히 잠들고 싶었다.
학교에서도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반에서 물건이 사라지면 의심을 받았고,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친구들도 어울리려 하지 않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에 친구들은 그가 보육원에 산다는 것을 알아챘다.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재근에게만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챙겨준다거나, 소풍날 한 뭉치의 과자를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친구들 사이에서 재근은 놀림거리가 됐다. 이후 상급학교에 진학 했을 때는 주변 친구들한테 보육원에 산다는 사실을 꽁꽁 숨겼다. 자신의 치부를 들키면 놀림 받을 거라는 생각에 더 소심해졌고 결국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며 지내다가 조용히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 환경이 만든 재근의 소심한 성격은 성인이 된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육원 퇴소 후 5년 동안 한 곳에서 일하며 20-30살차이 나는 어른들과 일만 했고, 쉬는 날이면 집에서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며 홀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보육원 친구들 외의 또래들과는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사회에서 또래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고, 대화주제에 끼지 못해 혼자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선 충분한 사랑이 필요하다
“설날에 너는 갈 곳도 없으니까 일이나 해” 재근이 보육원 출신인 걸 알고 있던 직장 상사가 그에게 던진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그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기에 그 길로 직장을 그만뒀다. 공장의 부품처럼 입력된 일만 하던 그는 자신이 왜 사는지, 행복한 건 맞는지 고민을 하게 됐다. 돈도 중요하지만 한 번쯤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재근은 인터뷰 도중에 이렇게 말했다.
상처가 많은 우리가 회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랑을 받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회에 나가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 마냥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해주고, 자신감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보육원 친구들끼리 나와서 뭉치면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맞거나 힘들었던 이야기만을 나누는 게 아픔이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소통할 때 우리를 틀에 박힌 시선으로 쳐다보지 않는다면 용기도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질 것 같다. 단체생활 속에서 개인의 고유성이 억압 받다 보니까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조건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생긴다면 용기가 생길 것이다.
재근에게는 다행히도 용기를 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같이 일하던 직장동료들은 눈치 보는 재근을 나무라기보다는 감싸 안아줬고, 친형제처럼 대해주며 지금도 잘하고 있고, 언제든 힘든 일 있으면 말하라며 든든한 믿음을 줬다.
또한 보육원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형들 중 유일하게 잘못을 사과하는 형의 전화를 받았던 적을 그는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주변의 어느 형들도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형들은 없었다. 자신들도 똑같이 당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며 사과를 회피했다. 진심어린 사과를 건넨 보육원 선배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재근에게 도움의 손길까지 내밀었다. 그 당시 재근은 꿈을 찾고 싶은데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선배는 “꿈을 어떻게 찾을지 옆에서 같이 고민할 수 있게 돕고 싶다. 너는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다. 너를 비롯한 후배들이 세상에 나와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같이 돕고 싶다”며 자신이 대표로 있는 사회적기업에 함께 일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그는 올해 초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돕고 채용을 우대하는 회사 ‘브라더스키퍼’에 취업해 늦게나마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브라더스키퍼는 보호종료아동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정서적인 자립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정, 그곳에서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꿈
재근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은 이곳에서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응원을 받고 있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친구들끼리 마음을 모아서 일을 하는 재미에 요즘은 즐거움과 행복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조금 더 완전한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는 회사의 비전대로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자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최근에는 보육원에서 자란 대표님과 주변 친구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정, 그곳에서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재근의 새로운 목표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나도 응원한다.
나 또한 재근처럼 보육원에서 산 15년 동안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린 시절, 행동 하나하나가 예기치 못한 화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저 예쁨 받기 위해 남들이 인정해주는 일만 해오던 나는 보육원을 퇴소하고 나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사회에 나간다면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왜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 나의 고민을 뒤집어 말해줬다. “선이는 눈치를 많이 본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관찰력이 좋고 타인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것 같아. 누구보다 배려심이 깊고 센스가 있어.” 눈치를 보는 게 안 좋은 버릇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깨는 말이었다. 내 장점이 이렇게도 가까이 있었는데 너무 멀리서 찾고 있었던 거다.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에 자신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재근과 나에게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고, 이제는 남이 아니라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자고 말하고 싶다. |
글, 사진 ㅣ 신선 (열여덟 어른 캠페인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