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재단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 지원사업’ 일환으로 실태 연구조사…17일 국회 토론회
– 열명 중 여섯명은 ‘생계형 체납자’…월 3만원 체납액 내지 못해 통장 압류, 병원이용 제한
민간단체가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내지 않은 장기체납자를 조사한 결과 규모가 매년 200만 세대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건강보험공단이 장기체납 가구를 150만 세대 안팎으로 발표한 것과는 격차가 크다.
이번 조사에서 장기체납자 열명 중 여섯명(56.7%)는 월 5만원 이하 보험료를 내는 ‘생계형 체납자’였다. 또한 만 24세 이하의 장기체납자도 5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보료가 6개월 이상 체납될 경우 보험급여 제한으로 병원 이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통장 압류로 금융 이용이 제한되기도 한다.
이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지난해 4월부터 진행한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 결과이다. 이번 연구는 아름다운재단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17일 오후 2시 국회에서는 이 같은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시민단체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관계자 등이 제도 개선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도 열린다. 토론회 1부에서는 체납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리고, 2부에서는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안 발표 및 토론이 이어진다. 토론에는 건보공단과 복지부 관계자도 참여한다.
“미성년자, 청년,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건보료 납부 면제해야”
이번 조사에서 기존 발표보다 장기체납 규모가 크게 나타난 것은 분석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체납 통계에서 지역가입자 자격이 상실된 경우를 제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 의료급여 수급 등으로 가입 자격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체납액을 갚아야 하는 장기체납자 약 50만 세대가 제외되는 것이다.
전체 장기체납자를 포함한 이번 연구에서 2015년 현재 체납횟수의 중위수(통계집단 중앙에 위치하는 값)는 24회였다. 횟수는 길지만 총 체납액의 중위수는 약 89만원, 월 평균 체납액의 중위수는 약 3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연구진이 면담 조사에서 만난 장기체납자들은 이 같은 소액 체납도 청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다수가 저소득층이며 사회적 관계망이 약한데다가 실직·파산 등의 급격한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한 장기체납자는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건강보험에 들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전기료 등 다른 공과금과 세금도 밀린 상황에서 건보료까지 챙기지 못하거나 아예 체납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병원 이용도 위축됐다. 장기체납자들은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한 체납자는 며칠씩 기절하는 상황에서도 진통제와 술로 버텼다. ‘고운맘카드’를 받지 못한 임산부 장기체납자는 출산을 앞두고 하혈을 하기 전까지 병원에 다니지 못했다.
또한 이번 연구에서 눈길을 끈 것은 젊은 체납자이다. 장기체납자의 절반 이상(57.3%)는 35~54세이지만, 만 24세 이하 장기체납자도 4만7517명(2.3%)에 달했다. 심지어 10세 미만 장기체납자도 475명 발생했다.
이는 미성년자가 부모의 체납을 연대납부해야 하는 법제도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미성년자 납부 의무를 면제하도록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됐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했다. 소득이 있거나 미성년자 단독세대인 경우에는 면제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 이전에 납부 의무가 있었던 미성년자에 대해서도 계속 건보료 체납액을 독촉할 수 있다.
한 20대 장기체납자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다가 성년이 되어 독립했는데, 자신을 호주로 신고하면서 건보료 체납 독촉고지서를 받게 됐다. 아버지의 건보료 체납을 물려받은 것이다. 또 다른 체납자는 아동복지시설에서 1년간 생활했는데, 성년이 되자 이 기간에 해상하는 건보료 체납액 납부를 독촉받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조사 및 분석을 토대로 △미성년자, 청년·임산부, 의료급여 수급권자 등에 대한 건보료 납부의무 면제 △장기체납으로 인한 급여제한 규정 폐지 △통장 압류 요건 준수 △의료급여 수급권자 기준 확대 △보험료 감면 적용기준 완화 등 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