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나리오 여러 단위 사업들 중 거의 유일하게 활동가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으로 2002년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5년에도 어김없이, [2015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휴식] 부문에 총 11팀 22명의 활동가들이 선정되었고, 동료들과 혹은 가족들과, 또는 혼자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함께 나눕니다. 

김승순님은 동료인 송송이님과 스위스 알프스 탐험을 다녀왔습니다. 몇 달 사이에 흰머리가 수북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황에서 2주간의 여행으로 거대한 자연 속에서, 말 없는 나무들에게서, 순진무구한 동물들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알프스에서 느꼈던 에너지가 지금도 응원해 주고 있답니다.

 

재충전 김승순

서울에서 제네바로 가는 길

우리는 왜 알프스라는 곳을 선택했을까?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 모두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알프스를 가고 싶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정신없는 출발을 했다. 가을이 와야 하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씨에 비까지 내리는 불금, 사람으로 넘쳐나는 서울을 떠나 인천 공항으로 갔다. 제네바로 가는 경유지, 이스탄불 공항은 동아시아, 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오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대한 츄파츕스를 비롯, 면세점은 새벽시간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10시간이 넘어, 드디어 우리가 탄 비행기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몽블랑 위를 날아 제네바로 향하고 있었다.

중립국 스위스의 수도 제네바

재충전 김승순

엄청나게 넓은 제네바 호수는 호수 한가운데가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이 있다고 한다. 제네바 호수의 명물은 제트분수이지만, 숨은 매력은 호수변 백사장을 따라 해변 같은 공간에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즐기고, 호수에서 헤엄치고 있는 새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면서, 여유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호수에 발도 담그고, 썬베드에서 누워 긴 비행의 피로를 풀었다. 언제 떠나온 건지 서울이 벌써 까마득했다.

썬베드에 누워 올려다 본 중립국 제네바의 새파란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비행기가 남겨놓은 길들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호수 도시 안시

재충전 김승순

안시 호수를 병풍처럼 들러싼 알프스 산맥, 빙하의 흔적이 느껴지는 산의 모양새, 꼭대기가 회색으로 반짝이던 바위산. 겹겹이 쌓은 산에 드리워지던 산 그림자. 알프스의 서쪽 어딘가쯤의 자락인 여기. 여기 안시에서 이제 본격적인 알프스 여행이 시작될 것 같다.

안시는 북적이는 사람들이 생기와 어수선함을 만들어 내는 곳이지만, 그래도 ‘여유’ 라는 것이 느껴진다. 여유.
비행기에서 아이의 웃음을 참아넘기는 여유, 달려오다 가도 횡단보도의 사람을 보고 멈 춰서는 여유. 나무그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여유. 잔디밭에서 공차는 아이와 놀아주는 여유. 온갖 여유로움이 알프스가 둘러싼 이곳의 일상이다. 안시에서 맞은 여행의 첫 번째 주말. 마침 구시가에서 장이 열리는 날이다.

오래된 건물들, 중세시대의 좁은 골목길에 육류, 과일, 채소, 지즈, 햄 등 각종 식재료와 가방, 장식품 등의 물품을 파는 상인이 가득하다. 중세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구도심의 1층이 상가로 변하고, 상가 앞 길을 따라 천막이 쳐지고 장이 선다. 광장이나 공원과는 달리 좁을 골목길을 따라 장이 열린 모습은 우리의 시장 모습과도 유사한 것 같았다. 장에서 파는 물건이 늘 그렇듯 주인 아저씨가 직접 만들어 파는 이곳의 살라미는 무척 싸고 맛있었지만, 시식만 하고 결국 사지 못 했다.

안시는 생각했던 것보다 예쁘고,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저 아기자기 예쁘기만 할까 봐 실은 조금 걱정이었는데, 구시가가 잘 보존되어 있고 호수에는 공원이 잘 가꿔져 있어 산책하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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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가운데 위치한 건축물, 팔레 드 릴은 11~17세기까지 지어진 건물로, 중세시대부터 사용된 감옥은 2차대전 당시(1944년)에도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안시의 건축문화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감옥으로 사용된 장소 정도만 관람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한이 남아있는 곳일까 라는 생각을 하니 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흰색의 산, 몽블랑으로 가는 샤모니 마을

몽블랑 주변의 가장 높은 전망대 에귀디미디에 올랐다. 샤모니마을에서 2,000m가 더 높은 전망대까지는 불과 20분. 손가락이 붓는 고산증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저기 멀리 몽블랑이 보였고, 주변의 설산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거대한 자연 속에 사람은 정말 작은 존재였다. 몽블랑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봉우리와 멀리 설산, 구름, 햇살, 산꼭대기에 드리운 구름의 그림자까지.. 너무너무 추웠지만, 그 모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음에, 맑은 날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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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귀 디 미디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은 걷기로 했다. 몽탕베르까지는 약 3시간 정도가 걸렸다. 바위와 초원처럼 펼쳐진 풀들, 드문 드문 보이면 작은 꽃들, 멀리 뾰족이 속은 봉우리에는 흰 눈의 쌓여 상상만 하던 알프스 트레킹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산악관광마을 체르마트

여러 가지 감정이 드는 샤모니 마을를 끝으로 프랑스의 알프스와는 작별이다. 머물고 싶기도, 오래 머물 곳이 아닌 것도, 번잡하면서도 한가하고, 한가하면서도 복잡한 느낌의 샤모니마을. 크레인과 만년설이 공존하는 도시. 몽블랑익스프레스를 타고 프랑스를 떠나 체르마트로 가는 동안, 발로신에서 마흐띠니를 넘어오자마자 집과 풍경이 달라지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프랑스 쪽이 훨씬 아기자기하고 꽃도 많고 예쁜 느낌이다. 언어도 달라져서 지금 기차 안은 온통 독일말이다.

체르마트의 어마어마한 리조트 시설과, 볼품없이 빈 창고처럼 남아있는 구시가는 흐린 날씨와 더불어 우리를 숙소 밖으로 끌어내지 못 했다. 저녁까지 밍기적 거리다 보러간 체르마트 페스티벌 체르마트 다행히도, 그간의 실망을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연주자들 실력도, 공연 공간도 상당히 좋았다. 

다음날 아침에 조금 서둘러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올랐다. 다행히 전망대에 내렸을 때 해가 들어 몬테 로사는 볼 수 있었지만 금세 구름이 몰려오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마테호른을 보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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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라는 것에, 자연에 감사할 순간이 자꾸만 생기는 여행이다. 자연이란 원래가 그런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원한다고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그런 것. 빙하로 깎인 많은 봉우리들이 아름답지만, 마테호른은 정말 특히 더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그런 모습으로 잠시 우리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스위스국립공원

세계문화유산 코스를 지나는 빙하특급을 타고 체르마트에서 스위스국립공원이 있는 마을 제르네츠로 갔다. 빙하특급은 알프스의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도록 넓은 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고, 특급이란 말에 걸맞지 않게 제법 천천히 달려서 충분히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빙하특급에는 매우 귀여운, 산양모양의 커터가 돌아다니면서 음료나 간단한 다과를 서빙하고 있었으며, 도착한 제르네츠 마을의 벽면 곳곳에도 산양이 그려져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데,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는 국립공원 인포메이션. 겉모습의 인상과 달리, 내부는 전시, 기념품숍 등 볼거리가 많았다. 인포메이션을 나와 버스를 타고 스위스국립공원 진입로에 다다르자 보이는 안내판! 국립공원에서 단지 가능한 건 조용히 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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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화창해서 걷기 좋은 날씨였다. 우리는 스위스국립공원 인포센터에서 워킹 코스를 추천받아 포스트버스를 타고 약 2시간 코스로 칠드런 코스라는 표시가 딱 맞게 매우 쉽고 편안한 길을 걸었다. 초원 너머 설산이 보이고 옆에 작은 개울이 있는 평화로운 풍경. 정말 좋은 날이었다.

스위스국립공원은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산불피해가 발생한 지역도 자연복원을 위해 그대로 두고 과학자들이 연구 중이라고 했다. 결국 자신은 보지도 못할 복원된 숲의 모습을 위해 대를 이어가며 하는 연구라니. 멀쩡한 산에 케이블카니 스키활광장이니 등을 설치해 파괴하려고 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있는 반면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인간도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뭉클해졌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삶과 죽음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전 너무 유명한 휴양지, 생모리츠를 들렸다. 호수 주변을 시간을 측정하면서 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10바퀴 도는 동안 우리는 한바퀴를 겨우 돌고 이탈리아로 떠나기 위해 제르네츠로 돌아왔다. 화창한 날씨에 호수에 비치는 반영 아름다워서 가장 멋진 사진은 생모리츠였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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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국립공원을 넘어 이탈리아로 가는 길. 같은 알프스 지역으로 비슷할 거라는 예상은 금세 무너졌다. 초원은 모두 농지로, 오래되고 보수되지 않은 건물들로, 소란스럽고 활기 넘치는 사람들로 바뀌어, 특별한 통관절차는 없었지만 이탈리아에 왔다 것을 실감했다.

신들의 지붕,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돌로미티의 관문, 코르티나담페초의 안내소에서 유연히 듣고 간 곳은 티치아노가 태어난 마을이었다. 사실 티치아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추억하고 기리는 감정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티치아노가 살던 마을 Pieve di Cadore에는 티치아노가 그린 성당의 그림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200년이 넘어 우리는 그 성당을 찾았다. 우리가 간 9월은 성수기가 아니어서 대중교통이 자주 있지 않았고, 우리는 미니버스를 렌트해서 돌로미티를 다녀와야 했다. 나중에 보니, 자주 없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모바일 카드를 이용해서 가는 방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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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는 신들의 지붕, 자연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곳어었다. 원근감과 거리감, 스케일 이런 기존에 알고 있던 단어들의 새로움을 Tre chime 주위를 돌아가는 트레킹 길에서 계속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거리와 깊이의 웅장한 자연과 너무도 작은 사람들이 색색깔의 등산복과 스틱을 들고 돌고 있는 모습이 마치 멀고 먼 순례의 길을 떠나는 모습이었다. 깊고 크고, 웅장한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계곡과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초원이 이어져 있고, 때마침 내린 눈은 우리에게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를 멋진 경관을 선물해 주었다.

여행의 끝자락, 류블라냐

드라바강과 사바강변을 따라 알프스 여행의 종착지 슬로베니아로 향했다. 날씨가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류블라냐는 축제 기간이었다. 과거 로마지역이기도 했던 이곳에서는 로마시대를 재현하는 연극, 당시의 먹거리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음악축제도 진행 중이어서 또 한 번의 공연도 관람할 수 있었지만, 체르마트에서와 달리 난해하기 그지 없는 현대곡으로 듣는 내내 괴로웠다. 공연이 끝나고 나온 길은 사람들도 가득차 북쩍거렸다. 류블라냐는 알프스로 여행하면 머무른 도시 중 가장 큰 도시이고, 또 밤 문화가 있는 도시로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적응에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재충전 김승순

류블라냐는 환경도시를 표방하고 있었고, 길거리에 분리수거함도 매우 잘 정리되어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도중에는 전기자동차가 충전 중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안녕 알프스 – 봉주르! 도보르 단!

재충전 김승순

여행 중 기차역 엘리베이터에 열리는 버튼은 있는데, 닫히는 버튼이 없는 보면서 ‘쉼’이라는 것이 떠올랐었다. 점심 브레이크 타임으로 3~4시간을 보내는 여기 알프스에서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 다시 서울로 간다. 인구 천만이 산다는 서울로.. 작고 작은 마을과 도시를 지나서 알프스를 지나왔다. 지나서만 온 마을이 수없이 많다. 오랜 세월을 알프스에 기대어 살아온 마을들. 지키는 곳도 이용하는 곳도 어지럽혀진 곳도 모두 여러 가지 모습이지만, 분명한 것은 알프스는 삶을 지탱하는 터전이라는 것이다.

알프스를 얼마나 알고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름답고 다채로운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 놀라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던 순간들을 기억해야겠다. ‘봉주르’로 시작해 ‘도보르 단’으로 이제는 알프스와 멀고 먼 아시아 대륙 저 끝 동방의 하얀 나라로 돌아간다.

안녕 알프스!

 글ㅣ사진  김승순 (생명의숲국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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