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위한 주요한 동력으로, 사회의 다양한 문제해결, 정부의 공공재 공급의 보충적 역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의 옹호, 공론장과 사회적 자본 창출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대부분 비영리기반의 공익활동가들은 사회의 발달에 따른 시장과 정부의 대응에 비해 심각한 정보 격차의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가 해외연수 지원사업은 이들의 활동역량을 강화하고 한국시민사회에 해외시민사회운동관련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여 지속가능한 공익활동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이 글은 2019 공익활동가해외연수지원사업에 선정된 [영국 Summerhill Experience 참가 프로젝트팀]에서 활동한 산학교 주현주님의 후기입니다 |
영국 서머힐 학교 탐방기
영국 서머힐 학교. APDEC에서 서머힐 학교 교감, 헨리 레드헤드의 자유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들었을 때부터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었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회의가 이루어지고, 스텝과 학생들의 평등하게 관계 맺는 곳,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곳, 400개가 넘는 규칙과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만이 권위를 가지는 곳. 산학교 교사들이 매일 고민하는 아이들의 자발성, 자치, 자유, 민주주의가 그의 발표에서는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해 보였다.
호기심과 동시에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그게 가능해?’ 혹은 ‘실제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하는. 산학교와 비슷한 규모의, 비슷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100주년을 맞이하여 ‘Summerhill Experience’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교사들과 참가단을 꾸렸다. 그리고 영국에도 해가 쨍쨍한 날들이 이어지던 여름날, 우리는 서머힐 학교로 갔다.
수업에 안 들어가도 괜찮아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서머힐 학교는 사진과 영상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아니 더 좋았다. 뛰어놀기 충분한 공간에 100년의 역사만큼 오래된 나무와 건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서머힐 학교에 처음 방문한 아이들이 오자마자 ‘이 학교에 다니고 싶어.’라고 한다던데,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낡은 건물 공간들도 불편하기보다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왕거미가 살던 2층 침대에 처음엔 기겁했지만. 서머힐 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강당은 중요한 논의들이 오가는 회의 공간이 되기도, 멋진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가 되기도, 음악에 몸을 맡기는 클럽이 되기도 했다.
매력적인 작업 공간들도 있었다. 각종 미술, 공예 재료들이 가득한 아트룸,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달려가서 뚝딱 만들어내고 싶을 것 같은 목공/철공실, 녹음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음악실, 누구나 신청하면 요리를 해서 먹거나 판매할 수 있는 카페. 이런 공간들에서 아름답고 재미난 것들을 종일 창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탐이 났던 건 넓은 바깥 공간이다. 햇볕이 드는 날이면 마당 아무데나 앉아 일광욕을 했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 곳곳에 누군가 만들었을 나무집에 올라가 맑은 여름날의 하늘을 감상하며 여유를 즐겼다. 서머힐 회의의 잦은 이슈가 된다는 트램폴린은 안전상의 이유로 구경만 했다. 대신 3m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어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놀았다.
서머힐에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자유가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수업에 참여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고, 고학년이 되면 자기가 원하는 시간표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수업을 필수로 가르치는 학교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자유’가 부각되었지만,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 하고 싶지 않을 것을 하지 않을 자유다. 이러한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스스로 배워나가는 학교를 우리도 꿈꾸고 일부 시도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고 싶지 않은지 모르거나 정말 안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시키는 것을 잘 하는 사람으로 길러진 우리는 오히려 이러한 자유가 낯설고 버거웠다. 서머힐에는 이러한 자유를 누릴만한 공간과 시간이 충분했다. 눈치보지 않고 마냥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이것이 서머힐과 우리의 차이점이었다.
서머힐의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일주일에 세 번, 서머힐의 모든 사람이 모여 공동체 생활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회의를 한다. 이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서머힐의 규칙이 무려 400개가 넘고, 항목별로 정리된 규칙 책이 법전 만큼의 두께를 자랑하며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식당에 비치되어 있다. 우리도 서머힐 사람들처럼 서머힐에 있는 동안 강당에 모두 모여 매일 회의를 했다. 알림 사항이 공지되고 트램폴린 사용, 취침 시간 조정, 식사 시간 규칙 등 함께 생활하는 데 필요한 소소한 안건들이 간단하고 분명하게 결정되곤 했다.
한 번은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는데, 마지막 날 참가자들이 수영장 규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노는 바람에 서머힐 학생이 당황스럽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각자의 생각과 마음을 충분히 나누고, 규칙을 어긴 사람들이 수영장을 깨끗이 치우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감정적으로 격양되기도 했지만 회의가 끝났을 때에는 모두 후련한 표정이었다. 서머힐 공동체에 규칙과 회의가 갖는 의미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백년 동안 서머힐이 자유 교육이라는 철학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권위있는 회의가 꾸준히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잘 노는 서머힐 사람들
서머힐 학교 사람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잘 논다. 그도 그럴 것이 서머힐에 입학하면 다들 일년간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매일같이 밖으로 놀러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놀이를 기획하는 놀이 위원회가 있고, 크고 작은 파티와 공연, 축제가 수시로 열린다. 그 중에 하나가 Gram이라고 불리는 댄스 파티다. 둘째날과 넷째날 밤, 서머힐의 그램에 우리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회의를 하는 장소였나 싶게 강당이 클럽 조명으로 바뀌고, DJ 부스에서 선곡한 노래들이 바닥을 쿵쿵 울렸다. 참가자들의 세대를 고려한건지 원래 플레이리스트가 고전인건지, 절로 몸이 움직여지는 노래들에 흥이 났다. 그램 경력자들답게 서머힐 학생들과 교사들은 능숙하게 춤과 음악을, 그리고 격이 없이 어우러짐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함께 노는 시간 만큼은 학생과 교사가 아니라 서머힐 가족으로 보였다. 우리도 남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흔들어댔다. 서머힐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서머힐 교사들은 스텝으로 불린다. 한국의 초등학교 연령의 아이들을 담당하는 담임교사가 있고, 영어, 음악, 역사, 과학, 미술, 목공, 영어를 담당하는 전담교사가 있다. 이 외에 교장과 교감, 기숙사 생활을 담당하는 하우스키퍼도 있다. 서머힐의 스텝들은 24시간 일한다. 늦은 밤이나 아침에도 아이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텝들도 학교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수공예, 보드, 음악, 요리 등 각자의 관심사로 학생들과 재미난 일을 벌이며 지낸다. 수업에 참여하고 싶은 소수의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교사로서 행운이라고 말한다. 소중한 휴가를 반납하고 이번 행사를 위해 하루 종일 애쓰는 것만 봐도 학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서머힐 학교를 탐방하면서 ‘정말 그런 학교가 가능해?’라는 처음 가진 의구심이 ‘우리도 이렇게 해보면 되겠구나.’하는 즐거운 상상으로 바뀌었다. 연수 내내 많은 것들이 부러웠는데, 가장 부러웠던 건 오랜 역사를 통해 단단해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이었다. 꾸며내거나 포장하지 않고 사람들을 초대해 서머힐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일이다.
당위적인 가치들이 넘쳐나는 한국의 대안학교에 가장 필요한 건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는 기초적이고 단순한 원칙일지도 모른다. 빨리 서머힐의 이야기를 산학교에 들려주고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처음 대안학교를 만났을 때처럼 다시금 가슴이 뛴다. 서머힐 학교에 감사하다.
글/사진 ㅣ산학교 (san.gongdong.or.kr) 주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