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나리오 여러 단위 사업들 중 거의 유일하게 활동가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으로 2002년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5년에도 어김없이, [2015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휴식] 부문에 총 11팀 22명의 활동가들이 선정되었고, 동료들과 혹은 가족들과, 또는 혼자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함께 나눕니다.
손효정님은 동료인 김형수, 지민희님과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였습니다. 애초에 네팔 안나푸르나를 여행하고자 했지만 네팔의 큰 지진으로 여행지를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또 여행지 및 일정 변경으로 인해 뜻밖에 변수가 된 두 돌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을 해야 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선택하여 다녀왔습니다. 두 돌 아이와 함께 한 재충전 이야기 시작합니다.
최근 몇 년간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에 지원을 했습니다. 사업공고가 나는 봄이면 늘 ‘올해는 어디로 가볼까?’ 설레며 신청서를 쓰곤 했습니다. “다음 주가 발표 나는 날이네, 이번 주네!, 오! 내일이네!!!!” 날짜를 세어가면서 결과를 기다렸지요.
그렇게 매일매일을 설레지만 정작 선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은 선정되지 않을 것을 예상하면서도(다 년간 떨어졌기에^^) 꽃 피는 봄, 활동가들끼리 즐거운 상상을 펼치는 일종의 선물 같았지요.
그러다 올해, 사업 선정이 되었습니다. 애초에 계획은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이었습니다. ‘산에 올라가면 다시 내려올 것을. 왜 그렇게 올라가는지 모르겠다’며 죽어도 산은 싫어했었는데 청소년들과 산을 오르고, 단체 선배들과 산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산은 참 익숙하고 위로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사업 선정이 되는 시점에 네팔에는 큰 지진이 났습니다. 네팔을 가지 못하게 되었고, 새로운 장소로 사업변경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맡길 대책이 없어진 두 돌 아이도 있었지요. 아이를 데리고 가야만 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개인적으로 참 많이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다듬고 빛나게 만들어 준 ‘우리세상’이라는 조직에 감사하며, 육아를 하면서도 늘 변함없이 씩씩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처럼 아이를 데러가지도 놓고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온몸으로 보살펴야 하는 아이의 존재에 대한 무게감이 현실이 되어 마구마구 밀려왔습니다. 출발 직전까지 짐을 꾸리면서 괜찮다, 신난다고 말했지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아이의 짐이 걱정의 결과물이었는데, 아이의 짐을 앞에 두고 생각했습니다. ‘쉬러 가는 건지 극기를 하러 가는 건지..’
아이와 함께 갈 수 있고 도보로 여행이 가능한 도시를 생각하며 어렵사리 결정한 곳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였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을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까지 업무가 많아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한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떠났습니다. 가이드북 하나와 산더미 같은 아이의 짐을 챙기고서.
집 떠난 지 24시간만에 독일을 경유해서 바르셀로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스페인이 아니라 화원(대구인근)휴양림에 놀러온 것 같다고 실감 나지 않은 ‘유모차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도보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여행 첫날, 구엘공원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놀이터에 들렀다가 까르푸에서 장을 봐서 저녁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다녀왔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장을 보고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매일을
① 가우디 건축물을 둘러보고
② 바르셀로나 거리를 거닐다가
③ 놀이터가 보이면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④ 해가 질 때 쯤- 장을 봐서 저녁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서른아홉 선배와 서른둘의 저, 서른의 후배. 모두가 고등학생 때부터 ‘우리 세상’에서 활동을 해오다 이제는 이곳이 직장이 된 사람들입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고민을 나누며 20대를 보냈고,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그래서 여행 내내 아주 오래된 가족처럼 친숙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캠프에서 수없이 많은 밤을 함께 보냈지만, 오롯이 우리를 위한 온전한 휴식은 처음이라 그 자체로 값지고 의미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내일 할 일이 없다니’라고 놀라워하며 아무런 일정이 없는 내일을 만끽하고 돌아왔습니다.
재충전에서 돌아온 지금은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서 ‘우리세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예전처럼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무력해하지 않고, 지금의 처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한 우리는 대구지역 청소년단체로서 아이들과 뒹굴며 살아온 2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할 힘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사색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회의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가을을 보내고 내년에는 새로운 ‘우리세상’의 모습으로 거듭나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니…’
생각해보면 아직도 믿어지지 않지만,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글ㅣ사진 손효정 (사단법인 청소년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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