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19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2019년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기후비상”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확산된 한 해였다. 언론에서 하루에도 몇 개씩 기후변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이 해외의 소식인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녹색연합은 2019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나무들과 새, 우리가 먹는 과일과 작물들, 농민들의 삶은 어떠한지, 그리고 물고기와 해조류, 어민과 해녀들의 삶은 어떠한지를 살펴보았다. 기존의 연구자료, 보고서, 논문들을 조사하고, 전문가들과 주민들을 만나고, 현장을 찾았다.
나무들의 떼죽음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첫 생물종은 무엇일까? 녹색연합은 2000년 초반부터 지리산과 한라산 등지에서 침엽수들이 고사하는 현장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프로젝트 과정에서 제주도의 한라산을 직접 찾았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이어지는 한라산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진달래밭 휴게소를 지나면 해발고도 1700미터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쯤에서부터 탐방로 주변에는 낯선 풍경이 이어졌다. 허옇게 죽어서 쓰러진 고사목들이 즐비하다.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이면 마치 유골이 나뒹구는 거대한 공동묘지처럼 느껴졌다. 바로 죽은 구상나무들이었다.
구상나무를 비롯해 집단으로 고사해가는 고산침엽수들은 지구온도상승이 가져온 한반도 산림생태계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구상나무는 해발 1,5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서식하며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레드리스트에서는 ‘멸종위기(EN)’ 등급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환경부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2006-2015년 사이 한라산의 구상나무 변화를 살펴보면, 2006년 구상나무림의 전체 면적은 738.3ha였으나 2015년에는 626.0ha로 15.2%가 감소했다. 해발고도로는 1,510-1,600m 구간에서 전체 감소면적의 32.6%로 가장 많은 변화를 나타냈다. 또한 진달래밭에서 백록담에 이르는 지역이 전체 감소면적의 71.8%을 차지했다
기후변화는 겨울과 봄철 기온의 상승, 여름철 폭염, 가뭄 등을 가져온다. 이는 침엽수의 호흡량 증가와 광합성 감소를 불러오고 이로 인한 생리적 스트레스가 집단고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높은 산지에서 늦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토양에서 수분을 얻기 어려운 점도 침엽수의 생존에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막으로 변해버린 바다
기후변화가 육지의 숲만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의 숲도 사라지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제주도에서 47년간 해녀로 살아온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은 “꽉꽉했던 바다가 사막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한다. (꽉꽉하다는 것은 제주도 말로 해초가 바다에 많다는 의미다.)
“예전에는 온통 톳밭이었는데, 지금은 톳이 안자라고 온통 쿠석쿠석한 바위들뿐이야. 바다가 풍성하고 고기도 다양했는데, 몇 년전부터는 풀도 없고 고기도 별로 없어. 가을이 되면 물이 차가와야 하는 데 예전에 비하면 아직 안 차가워.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해초가 녹아버리거든. 그래서 미역도 잘 안자라.”
제주도 해녀들은 과거에는 10여 미터가 넘게 자라는 해조류를 헤치며 물질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가 갈수록 바다의 해초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바로 백화현상, 또는 갯녹음이라고 부르는 현상 때문이다. 탄산칼슘 성분의 홍조류인 무절산호조류가 암반을 뒤덮고 대신 해조류들이 사라지는 현상이다. 무절산호조류가 살아있을 때는 분홍색을 띄지만 이들이 죽으면 하얀 색으로 변한다.
바다 속 숲이 사라지고 사막과 같이 변하는 이런 갯녹음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해안개발, 해양오염 등과 함께 기후변화를 꼽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바닷물이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바닷물의 수온상승과 갯녹음 증가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담수유입 증가, 바닷물의 영양염류 변화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기후위기와 생태계위기
한반도의 생태계에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침엽수 고사와 갯녹음만이 아니다. 수목한계선이 변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도 변화된 기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생태계의 변화는 농업과 수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과수와 작물들의 서식지가 변하고, 특히 우리의 주식인 벼의 경우 기후변화가 진전됨에 따라 생산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온상승은 한반도의 바다에서 아열대 어종을 증가시키고 고수온으로 인한 어민들의 피해를 증가시키고 있다. 해양산성화, 해양산소감소는 향후 물고기와 어패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해수면상승은 연안습지를 사라지게 하고 나아가 거주지의 침수피해와 재난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변화가 불러오는 생태계의 변화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 연구에 따르면,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800만 종 가운데 100만 종이 수십년 내에 사라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후변화가 그 원인 중의 하나다. IPCC는 2018년 지구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면 생태계와 인류문명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는 오랜 지구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생태계의 균형을 급격히 깨뜨리면서, 그 영향은 결국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생태계는 기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태계를 보전하고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데 기여한다. 또한 생태계는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재난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시대, 한반도에서의 생태계 보전은 기후변화와 분리해서 볼 수 없다. 기후위기와 생태계위기는, 곧 인간 자신의 위기다. 기후변화로 바닷물이 차오르면 작은 섬나라들이 잠기듯, 점점 뜨거워지는 온도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우주 위에 떠 있는 섬, 지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유일한 곳이다.
*기후위기와 생태계위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번 프로젝트로 제작한 영상을 보세요
– 다큐 <그 섬 The Island> youtu.be/W-b_o2PCmjI
글, 사진 |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