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도 드러나듯 공익단체의 프로젝트에 ‘스폰서’가 되어 주는 지원사업입니다. 사업 기간이 3개월로 다소 짧지만 그만큼 알차고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9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한반도의 서해연안에서 남북한 접경해역에 위치한 백령도는 점박이물범 최대 집단 서식지이다. 백령도에서도 하늬바다 물범바위, 연봉바위, 두무진 물범바위 등 크게 3곳의 점박이물범 휴식지가 있다. 고래연구센터의 2018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백령도를 찾아 온 점박이물범 316마리 중 85%가 하늬바다 물범 바위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물범 서식지로서 하늬바다의 물범 바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간조 때 물 위로 드러나는 물범 바위의 면적(약 400㎡)에 비해 물범의 서식밀도가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조시는 대부분 물에 잠긴다. 그렇다보니 간조시에 자리를 차지하느라 자리다툼을 하다가 상처를 입기도 하고 밀려 난 물범들은 계속 물속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물범은 체온조절, 호흡, 체력 회복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물 밖에 나와 바위 등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랫동안 이를 지켜 본 일부 어민들과 주민들은 물범바위 주변에 인공쉼터 설치를 제안(2016.8.3. 백령도 해양생태계 보호.수산발전을 위한 관계기관 간담회, 인천녹색연합 주최)했다. 해양수산부가 정책에 반영하여, 2018년 11월 하늬바다에 섬 형태의 인공쉼터(350㎡, 길이 20m×폭 17.5m)가 들어섰다. 어민들은 점박이물범의 먹이활동에 따른 어획량 감소 우려로 반대하였으나 인공쉼터의 수면아래 쪽을 어초의 기능도 할 수 있도록 하여 쥐노래미, 조피볼락 등 물고기들의 서식처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어민들과의 상생방안을 마련했다. 물범 관련하여 백령도 지역주민(어촌계, 주민모임)과 환경단체, 전문가, 행정이 함께 마음을 모은 것은 처음이었다. 때문에 2019년은 겨울동안 번식지(중국 발해만)에 갔던 물범들이 백령도로 돌아와 인공쉼터와 처음 마주하게 된 해여서 물범들이 인공쉼터를 언제 어떻게 이용할지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봄이 지나가고 한 여름에 들어섰는데도 인공쉼터에서 물범은 발견되지 않았고 인공쉼터의 무용론 등이 조금씩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2019년 8월 9일 인공쉼터와 그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점박이물범 27개체를 인천녹색연합과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모임(이하 점사모)의 회원이 처음 발견하고 촬영을 했다. 2019년 5월부터 백령도 주민모임과 환경단체가 자율적으로 점박이물범을 꾸준히 관찰해 온 성과였다. 지역사회의 제안으로 조성된 인공쉼터에 물범이 이용하는 것이 확인되자, 백령도에서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을 해 오던 점사모와 ‘백령중고등학교 점박이물범탐구동아리(이하 물범동아리)’의 활동에 관심과 참여가 더 높아졌다.
이러한 때에 주민조직의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참여에 의한 ‘점박이물범 모니터링과 서식지 보호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당장 그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민조직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은 점박이물벙 보호를 둘러싼 갈등구조를 완화시키고 지역중심의 보호정책을 마련해 가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사업을 지원받게 되어 ① 하늬바다(물범바위 및 인공쉼터) 점박이물범 서식현황에 대한 주민주도의 정기적인 모니터링 ② 하늬바다 일대의 서식환경 개선을 위한 주민주도의 해양쓰레기 수거 및 분석 ③ 주민조직에 의한 물범 모니터링과 서식지 환경개선 활동에 대한 보고서 제작 및 배포 등 상반기부터 진행해 온 활동들을 중단하지 않고 마무리 할 수 있었다.
5월부터 진행된 점사모 모니터링 팀의 ‘하늬바다 점박이물범 일일 모니터링’은 회원들의 많은 호응과 격려를 받으며 물범이 번식지로 거의 떠난 12월 초까지 꾸준히 진행됐다. 하늬해변과 인공쉼터를 중심으로 3차례의 해양쓰레기 수거 캠페인에는 점사모 회원들 대부분이 참여했다. 해변의 바위틈 구석구석에 끼어 부식돼 있던 쓰레기는 물론 오랫동안 갯벌에 묻혀있던 폐어구와 용치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폐그물 등을 제거했다. 근처에서 굴을 채취하던 어민 일부도 참여해 폐그물 제거에 함께 했다. 바닷물이 빠진 2시간 동안에만 굴을 채취해야 하는 어민의 하루 소득을 포기하고 함께 한 것이다. 점사모의 해양쓰레기 캠페인 팀은 물범들이 번식지로 이동하여 개체수가 줄어든 11월 중순의 파도가 덜 거친 날을 골라 소형어선만 닿을 수 있는 해변의 쓰레기와 인공쉼터에 걸려있는 밧줄들을 제거했다. 일일 모니터링이나 해양쓰레기 수거 일정과 방법 등은 하늬바다의 환경을 잘 아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진행했다.
이처럼 주민들에 의한 물범 서식지 보호 관리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백령도 내 점박이물범 관련 주민조직인 점사모와 물범동아리가 각각의 특성에 맞게 역할을 하고 소통과 협력을 시도하면서 물범 서식지에 대한 다양한 보호관리 방안을 찾아가고 있다. 물범동아리 학생들은 백령도만의 생태적 특성인 점박이물범 서식에 대해 탐구한 결과를 4년째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있다. 물범 모니터링 내용을 분석하고 해양쓰레기 실태를 조사하여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할 뿐 아니라 어민들의 소득과 연관된 해양수산자원의 이용현황을 파악하고 물범 브랜딩을 통한 지역의 소득방안 등 생각할 거리를 지역사회에 내놓고 있다. 점사모는 올해 처음 시작한 물범 일일모니터링을 통해 하늬바다를 이용하고 있는 물범과 어민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풀어가야 할지 뒷받침 해줄 자료를 기록하고 있고 해양쓰레기 수거 같은 서식지의 위험요인 제거 등 주민들에 의한 실질적인 보호관리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동(하늬바다 물범과 서식지 모니터링)을 통해 얻은 성과를 보고서로 정리하여 정부의 물범 서식지 보호관리 정책으로 제안하였으며, 연구시설이 없는 백령도에 상주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의 한계를 지역주민의 상시적인 활동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였다.
점박이물범 서식지 보호방안을 둘러싼 어촌계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백령도 지역사회 내에 물범에 대하여 설명하고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물범동아리, 점사모 등 이들과 함께 물범 보호와 백령도의 어촌경제, 지역경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며 새로운 경제영역의 발굴 등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의 전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올 서해접경해역의 변화와 황해 점박이물범 서식환경의 영향에도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북한 및 한중의 황해권 점박이물범 보호 협력에 있어 백령도 서식지의 보호관리는 핵심의제이다. 따라서 백령도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주민들과 함께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물범에겐 NLL이 없듯이 오랫동안 남북 갈등과 분쟁의 현장이었던 백령도가 점박이물범을 통해 서해접경해역의 평화와 생태적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글, 사진 |박정운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