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도 드러나듯 공익단체의 프로젝트에 ‘스폰서’가 되어 주는 지원사업입니다. 사업 기간이 3개월로 다소 짧지만 그만큼 알차고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9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19년 4월 23일, 콜텍의 긴 투쟁이 막을 내렸다. 4464일의 여정이었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13년의 기나긴 투쟁을 끝내기 위해 올 초부터 본사 앞 끝장 투쟁을 했다. 이때 단식 투쟁을 했던 사람이 바로 <정리해고가 한 일입니다> 낭독극의 주인공 임재춘 씨이다.

낭독극을 떠올렸던 건 농성 현장에서 쉽게 올릴 수 있는 극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농성 현장에는 지지와 연대도 필요하지만, 놀이와 예술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현장성을 지닌 예술로 관객과 소통하기 좋은 장르이지만, 막상 야외에서 올리기에는 드는 품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농성 현장에서 누구나 쉽게 낭독할 수 있는 대본을 창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장기 농성자들의 이야기로 선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농성자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때 만난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씨의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라는 책은 우리가 찾던 이야기였다. 그 안에는 농성하며 그가 들은 말들(“대한민국은 노조 때문에 다 망한다”), 했던 생각들(“투쟁이 언제 끝나 다시 기타 만들 수 있을까”), 했던 일들(그는 농성장의 쉐프였다)이 고스란히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공장 문을 폐쇄한 사장의 조치가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기대했던 재판 결과에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잘 담겨있다.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복직 투쟁 노동자를 향해 “저럴 시간에 다른 데 취업하겠다”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으리라.

임재춘 씨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건 지난 5월 병원에서였다. 단식을 끝낸 그는 회복을 위해 입원 중이었다. 그는 흔쾌히 낭독극을 올려도 좋다고 말했다. 지난 투쟁을 통해 이 사회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경험한 그는 이제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같이 힘든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이 극을 통해 무엇을 전할 것인지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낭독극 준비가 시작됐다. 그의 책은 2013년 농성장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져 있어 전후 이야기의 보충이 필요했다. 한 번은 우리가 있는 서울에서, 한 번은 그가 사는 대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13년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5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는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다 배가 고파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인터뷰를 계속했다. 누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거만으로도 노동 운동과 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의 이야기에서 절정은 항상 고법 판결이다. “장래의 경영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본 인원 감축은 정당하다”는 요지의 판결은 경악할 만큼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사실상 사측이 위기라고 주장하면 언제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그때 비로써 이 싸움이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리해고가 한 일입니다>라는 제목 역시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수많은 노동자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지었다.

[낭동극 <정리해고가 한 일입니다> / 사진 출처 : 인권 연극제]

낭독극을 준비하며 고민한 건, ‘자칫 단조롭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에 어떻게 연극적 활기를 불어넣을 것인가’였다. 그를 위해 연출과 배우들은 단순하면서도 입체감을 살려줄 동작들을 연구했고, 극 안에 투쟁의 상징이 되는 소품들을 배치하고, 영상과 사진을 활용했다. 영상이나 사진은 야외에서 상연한다면 활용이 어렵겠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이 극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9월 28일, 쇼케이스 공연이 올랐다. 20~30명 남짓한 관객이 객석을 채웠다. 아쉽게도 생업에 뛰어든 임재춘 씨는 함께 하지 못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감사하게도 함께 투쟁했던 김경봉 씨가 함께해주어 못다 한 이야기를 채워주었다. 본 공연 전 미리 선보이는 극인 만큼 관객들의 피드백에 귀 기울이는 시간도 가졌다. 이날의 이야기들을 추슬러 본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이번 낭독극 상연은 하나의 시도였다. 우리의 바람은 더 많은 농성자의 이야기들이 극으로 올라가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농성자들이 쓰는 일기나 SNS의 기록도 좋다. 또 필요한 현장이 있다면 언제든 낭독극 <정리해고가 합니다>를 나누고도 싶다. 그래서 농성자들의 이야기가 추상화된 남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나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그리고 충분히 지금도 그것이 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낭독극 <정리해고가 한 일입니다> 포스터]

 

글, 사진 | 인권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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