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에 일한 덕분에 평소 듣지 못하는 <아름답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그 다음으로 ” 좋은 일 하시네요?”
요즘, 난 무심코 주고 받는 <좋은일>이
그냥 좋은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차츰 알아가는 중이다. 

가장 필요한 곳=가장 가난한 곳?

기부자들의 가장 큰 바람은 본인의 기부금이 가장 필요한 곳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더 어려운 사람,더 필요한 사람에게 시의적절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름다운재단의 역할일 것임에 분명하다.
가난함과 절박함이 기준이 아니라 ‘다양함’이 <기부금의 찬란한 마무리>가 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교복을 사지 못하고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은 너무 극명하다.
<교복을 산다, 못 산다> <수학여행을 간다, 못 간다>이다. 중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복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데도
최소 기준을 넘어서는 그 이외의 조건은 개별 판단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대한 고려가 크다.
브랜드 교복 구입비용을 줘야 하나?
해외 수학여행 경비를 줘야 하나?
라는 문제에 대부분 사람들은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만 가면되지.
최소비용으로 많은 아이들을 돕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찬찬히 문제를 들어다보니, 단순히 교복을 입고 여행을 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교복 하나로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특히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에게 
대놓고 자기수준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했다.
따라서 브랜드 교복을 입고싶어하는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가격을 끌어 올린 브랜드 교복 회사가 더 큰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여행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선택권을 준다며 수학여행 옵션을 주지만
이건 옵션이 아니라  종종 차별이 되기도 한다.
도움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반드시 ‘극빈의 상태에서 구제하는 것’외에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는 것은 일을 하면서 알아가는 깨달음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접근이
기부자들에게
강요나 훈계가 아닌
스며들게 알리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일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왜 결연사업을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재단은 결연사업을 하지 않는다.
모금의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사업을 대놓고 하지 않는다.
결연의 처음과 마지막이 모두 기부자에게 있다.
수혜자의 상황과 상관없이 기부자의 기부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상황에 대한 고려도 기부자가 계속 기부할 수 있는 상황으로 유지되거나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지원이 필요할 경우, 설령 상황이 좋아졌더라도
어려운 상황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가까이에서 수혜자를 관리하는 복지서비스 담당자가 있더라도 구조적 빈틈은 늘 있게 마련이다.
기부자입장에서는 <기사회생>과 <개천의 용>을 바란다.
물론 한번의 도움으로 인생을 바꾼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일상의 필요를 적절히 그리고 안전하게 메꿔주는 그런 손길이다. 
기부자, 수혜자관계에서 일방의 우월적 지위가 아닌
상호존중을 기반한 <돌봄>이 바로 그것이다.



좋은일=좋은일? 

‘좋은게 좋다’라고 한다.
이 말은 뭐가 좋은지 누가 좋으면 좋은건지가 없다.
좋은일 하는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 속에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기부자가 모든 것을 고려해서 다 알 수 는 없지만
좋은 일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치열한지에 대해서도  많이 알리고 싶다.
과정에서 느껴지는 뜨거움과 역동이 결과 이상의 감동이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난,
I’m Beautiful 
인지 아닌지 또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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