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0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언제면 차별 없는 날이 오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고, 학생들의 호소하는 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동시에 많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고 한국에서도 우리를 걱정해 주시고, 마음을 함께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사하고 힘이 났습니다. 더 이상 학생들 아이들은 물론 재일동포들이 차별을 반대하는 시위 투쟁을 벌이지 않아도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의 봄(이하 봄)’이 아름다운재단과의 사업을 통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차별’을 본 관람객의 반응이다. ‘봄’은 지난 9월 13일, ‘차별’을 후원한 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한정 시사회를 진행했다. 당초에 ‘봄’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조선학교 학생초청 역사탐방캠프‘를 기획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발발로 패닉에 빠지면서 캠프를 다큐멘터리 제작 사업으로 변경, ‘차별’을 완성했다.
뿌리 깊은 차별을 이겨내는 힘 ‘민족 동질감’
오랜 기간 이어져 오던 일본의 조선학교 차별은 2012년 일본 정부가 자국민 및 외국인학교에 시행되던 고교 무상화에서 조선고교만 제외하며 절정을 이루었다. 2013년 오사카, 아이치,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의 조선학교에서, 2014년에는 도쿄의 조선학교에서 고교 무상화 배제 취소 소송과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부분 패소했다. 오는 10월 16일, 10월 30일에는 히로시마와 후쿠오카에서 고교 무상화 소송 항소심 판결이 열릴 예정이지만 썩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다큐멘터리 ‘차별’은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학교와 우리나라가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연결고리로서 그 의미가 크다. 영화에는 조선학교에 대한 짧은 역사, 고교 무상화배제 정책 이후 조선학교의 학생들과 졸업생, 학부모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모습, 유엔인권위가 열리는 스위스까지 가서 조선학교 차별의 부당함을 고발했지만 재판에서 패소하는 모습,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항고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일본 정부의 차별에 대항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영상은 ‘봄’이 3년 동안 일본을 오가면서 직접 촬영한 것이다. 완성된 영상은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에 출품했지만 아쉽게도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에 ‘봄’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후원한 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한정 시사회를 진행하며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영상을 본 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일본의 차별에 분개하는 이들도 있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
“영상에 대해 한국 분들도 좋았다고 말씀하셨지만, 특히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학부모들, 학생들, 동포들의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첫 장면부터 울었다는 분도 있었어요. 한국에 있는 동포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다큐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일본에서 하루 빨리 상영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였답니다.”
‘봄’이 ‘차별’을 제작한 이유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재일동포와 조선학교 학생들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민족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선학교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 힘이란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남북한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일본 정부와 협상을 하고 압박을 해야겠지요.”
물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한반도의 분단시대가 마감되어야 한다. 더 커지고 하나 된 우리의 힘은 일본 정부의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열쇠가 될 것이다.
조선학교를 왜 돕냐고요? ‘우리 동포니까요’
‘봄’의 활동이 조선학교를 돕는 것이다 보니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학교가 북한과 더욱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해방 직후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면 쉽게 풀 수 있다.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남한은 일본에 있는 동포들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일본과 국교가 수립되어 있지 않아 조선학교 지원이 어려웠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 조선인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이어갔고, 때문에 조선학교가 ‘북한학교’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조선학교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님이 ‘조선적(분단 이전의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해방 이후 분단된 조국 중 어느 한 곳을 택했다기보다는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일본 내에서 무국적인 조선적을 택하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역사를 배우고 지키기 위해 조선학교를 세우고, 이후 70년의 세월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이다.
앞으로 ‘봄’은 조선학교와 재일동포 사회와의 지속적 네트워킹을 위한 재원마련, 조선학교 방문 및 강제징용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특히,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더욱 활발한 활동을 통해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코로나가 완전히 물러난 후,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습니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도 다 될까 싶지만 열심히 해야지요. 그러려고 ‘봄’을 만들었으니까요.”
글 |박아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