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 드러나듯이 공익단체의 활동에 ‘스폰서’가 되기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시민사회의 시의성있는 단기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2020년 3월 ‘스폰서 지원사업’의 선정단체인 이주민과 함께에서 활동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
📢 아래 활동은 코로나19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지키며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름과 명분으로 치러진다 하더라도 전쟁은 언제나 평범한 이들의 삶을 파괴해 왔습니다. 베트남전은 이미 과거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끊임없이 현재로 다시 소환되는 것은 제대로 기억, 기록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밟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냉전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20세기 동아시아 전역에는 수많은 학살과 폭력이 자행되었고 한반도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종군위안부, 강제 징용, 노근리 학살 등 인권유린의 피해자였지만 식민지배 이후 내면화된 폭력은 안으로는 여순, 제주 4.3, 광주 5.18의 모습으로, 밖으로는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의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민주화 이후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진실규명과 사죄, 배상이 진행되었지만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은 시민사회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쟁의 기간 동안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미군과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 자료와 피해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고 시민사회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죄를 목표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금까지의 담론은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의 양민학살’ 혹은 ‘조국의 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애국적 희생’이라는 팽팽한 대결구도에 서 있습니다. 기존의 베트남 전쟁 관련 담론이 당사자의 성찰과 개입 여지를 열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가해자이지만 명문 없는 전쟁에 용병으로 내몰린 국가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한 참전군인은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군인은 32만명이 넘습니다. “어, 우리 아버지도 다녀왔는데…” 실제로 조금만 둘러보면 가족, 친척 중에 베트남 참전자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국가에 의해 전쟁터에 내몰린 참전 피해자는 사망자 5099명, 부상자 1만 1000여 명, 정확한 집계조차 힘든 고엽제 피해자들이 있습니다.(<헐값의 총알받이 용병>, 미디어 오늘, 2016)
꽝남성 4,500명, 꽝응아이성 1,799명, 빈딘성 1,600명, 푸옌성 1,700명. 베트남 중부 지역 한국군 작전지역에서 살해된 민간인의 숫자입니다.(이규봉, 미안해요 베트남, 2011.12)
참전군인, 그들은 학살의 가해자일까요, 국가폭력의 피해자일까요? 역사 속 실재의 세계에서 가해자였던 이들이 상상 속 기억의 세계에서 희생자로 둔갑하는 일은 흔합니다(<기억전쟁>, 임지현, 휴머니스트, 2019.1) 뒤집어, 역사 속 희생자가 기억의 세계에서 학살자 혹은 전쟁영웅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참전군인들의 역사가 개인적 기억에 머물러 참전군인 당사자의 ‘기억’과 그 후손들의 ‘기억’은 각자 나름의 진실만을 쫓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옛 참전군인들은 70~80대의 고령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여태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처참했던 과거를 말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전 이후의 삶을 말하다> 두 번째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사)이주민과 함께 부설 아시아평화인권연대가 전쟁의 참혹한 과거를 딛고 한국과 베트남의 화해와 우정을 위한 작은 실천으로 ‘베트남 청소년들에게 꿈날개를’ 장학사업을 시작한 지 13년이 되었습니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삶을 살았던 참전 군인들이 한국과 베트남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진정한 고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담아 지난해 가을, 부산교육대학교 한새뮤지엄에서 열었던 <베트남전 이후의 삶을 말하다> 사진전에 이어 두 번째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지금도 혼자만의 월남전을 치르고 있다’, ‘우린들 괜찮았겠나’로 압축되는 여덟 명의 삶을 통해, 참전 군인들의 삶이 한국사회에서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함께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사진전이 열리는 동안, 6월 2일 오후 부산광역시의회 이음홀에서 참전군인분들과 함께 ‘기억을 위한 대화 : 월남전에서 국가란 무엇이었나?’를 진행했습니다. ‘대화’는 전진성 교수님의 사회로, 박웅님의 딸 박진빈님의 ‘아버지와 월남전’ 이야기를 시작으로 참전군인 정영민님, 노주원님, 김낙영님, 안병학님, 김명옥님과 유가족인 박숙경님과 양지민님, 이재춘님께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이야기들은 ▶ 월남전과 애국심 ▶ 대한민국의 참전은 옳았을까 ▶ 월남전과 미군, 당시 미국은 정의로웠나? ▶ 참전군인에 대한 인정과 보상 ▶ 단소리, 쓴소리 현 정부에 한 말씀! ▶ 베트남과 한국 ▶ 우리가 고통을 안겨준 것은 아닐까? ▶ 후손들이 월남전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등 모두 8개의 주제로 2시간 반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베트남전에 다녀오신 분들은 30만 명이 훌쩍 넘지만, 그 누구도 동일한 시간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에도 전쟁같은 삶을 살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침묵하고 있는 참전군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기를, 한걸음 더 나아가 베트남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베트남전 참전 이후의 삶을 말하다 II’ 이재갑 작가 사진전 관련 미니 다큐 영상 보기
글/사진 이주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