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의 화두이자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기부와 자선, 그리고 나눔’에 대한 생각을 구상하고 있는 중에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소식을 들었다. 첫째는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전의 공정사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을 국정의 주요 방향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두 번째 소식은 한나라당 대표이자 현대중공업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준 의원이 중심이 되어 범현대가 사람들이 사재와 회사돈을 비슷하게 출연하여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공생발전의 국정철학이 지향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고, 또 기업활동으로 부를 축적한 현대가 사람들의 사회복지재단 설립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평가하는 것도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두 사건을 기부와 자선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윤과 탐욕의 동기로만 움직이는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거나 맞지 않으며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발전의 전략은 상생성장이나 공생발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가 사람들이 2,000억이 넘는 사재를 나눔을 주목적 사업으로 하는 공익법인에 출연하려는 것은 공생발전을 실천하는 하나의 대표적인 모델로도 볼 수 있다.

공생발전과 현대가의 재단설립 스토리를 배경으로 시작 하려다가 길어졌는데 내가 최근에 생각하는 주제는 이런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에 빈곤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그래서 가진자들이 기부와 나눔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압력이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부자들에게 기부와 자선을 촉구하는 측 – 주로 정부, 언론, 시민사회- 의 입장이나 논리와 기부압력 대상자인 부자들의 생각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부자들에게 개인기부를 촉구하는 측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적으로 살만해 졌으니 미국의 빌 게이츠(Bill Gates)나 워렌 버핏(Warren Buffett)처럼 자신의 개인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적 기부자(philanthropist)가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부들이 부자가 된 것이 일차적으로는 부자들의 근면과 노력, 삶의 철학과 돈버는 기술, 그리고 좋은 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회가 제공한 여러 가지 여건과 기반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흔히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 –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 정신에 따라 부의 측면에서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다면 그에 따른 사회공헌 의무는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압력에 대해 부자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부자들을 일일이 인터뷰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나라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혜택을 본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이 영향을 미친 부분은 미미하고 대부분 자신들의 노력과 치부전략 때문으로 보는 듯하다. 이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부의 사회환원이나 기부나 자선에 대한 태도를 소극적, 수동적, 반응적이 되게 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부에 대한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이 힘들게 축적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보다는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차라리 고생하면서 번 돈의 대부분을 공익사업에 기부하는 미국의 거대 기부자들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영국이나 미국처럼 청교도 윤리에 기초를 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많은 거부들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지역사회에 직접 환원하거나 독립재단(independent foundation)을 설립해서 간접적으로 환원한다.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미국의 기념비적 기부자의 전통을 케이츠나 버핏이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Facebook으로 거부가 된 젊은 주커버거(Mark Zuckerberg)도 이미 자신의 재산의 반을 기부 하겠다고 서약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놀랍기까지 한 기부문화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가? 한마디로 영미의 청교도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기부와 자선이 이미 마음의 습관(habits of heart)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압력에 의한 반강제적 기부는 있었어도 부자들이 진정으로 따를 수 있는 개인기부의 롤모델(role model)이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기부와 자선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기부의 전통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기부자가 많지 않은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재벌모임의 대표를 불러서 청문회 분위기로 사회공헌에 인색하다고 몰아쳐도 부자들이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이런 바탕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감동을 주는 개인기부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지성이 축구를 위한 재단을 만든 것이나 최경주가 재단을 설립한 것은 아마도 영미국가에서 운동선수로 활동하면서 돈을 버는 방법뿐만 아니라 번 돈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배운 것임이 틀림없다. 거부들이 그들이 부자된 것이 그들의 개인적 노력과 함께 사회의 음덕을 본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가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기부와 자선이 마음의 습관으로 내재화되는 것인데 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종교적 차원의 역사와 전통이 축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짧은 기간에 개인기부가 활성화되는 한 방법은 최경주나 박지성처럼 해외체험을 통해 돈 버는 방법과 번 돈을 의미있게 사용하는 방식을 함께 배운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황창순/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Beautiful Voice_OUT에 실리는 내용은 아름다운재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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