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제프 스콜, 권혁일…
새로운 자선의 세대가 등장한다
그들이 기부문화를 바꿀 것이다
며칠 전 안철수 교수가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높은 시청률은 화제였다. 청소년의 최고 멘토, 대학생 롤모델 부동의 1위인 그의 ‘어록’은 블로그를 통해 회자된다. 강의 요청만 한해 2000건이 훨씬 넘는 인기 절정의 강사이다. ‘안철수 현상’이다.
그가 성취한 탁월한 경력과 성공은 남다른 것이니, 성공 비결에 대한 관심과 선망은 누구에게나 당연하다. 그것뿐일까. 어쩜, 사람들은 그의 성공보다 성공에 대한 해석에 더 주목한 건 아닐까. “성공을 100% 개인화하는 것은 문제이다. 성공의 절반은 개인의 노력이고, 절반은 사회가 준 기회와 여건이다. 사회 자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가 성공한 것이다”라고. 성공에 관한 다른 상식, 성공한 이에게 ‘함께 사는 길’로 걸어가라고 독려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절반은 사회의 덕이라는 ‘성공의 재해석’은 개인 능력과 노력에만 주목했던 낡고 오래된 성공신화의 정설을 바꾸라 재촉한다. 따지고 보면 혼자 힘으로 재산을 모은다는 ‘자수성가’라는 말도 그리 딱 맞는 말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억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절반 기부를 권유하며 ‘기부약속운동’(기빙 플레지)을 시작했다. 일년간 70여명이 약속한 기부액은 우리 정부 예산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그러나 놀랄 것은 따로 있다. 공개된 개인 서약서에서 밝힌 그들의 성공관이다. 읽힐 것을 예상한 글이라 쳐도 신선했다. 부는 축복이자 선물이며, 사회에 돌려주는 건 기쁜 의무요 특권이라 한다. 빌 게이츠는 복을 받았으니 이를 잘 써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베이 벤처사업을 떠나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재단을 세운 제프 스콜은 좋은 교육과 선택이 가능한 나라에서 성장한 것을 성공의 큰 이유로 꼽는다. 페이스북을 공동창업한 마크 저커버그와 더스틴 모스코비츠도 절반 기부를 약속했다. 27살 ‘어린 부자’ 모스코비츠의 “나는 상상도 못할 큰돈을 벌었다. 이런 보상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대목은 가장 극적인 선언이었다.
30대에 동료들과 아이티 기업을 창립해 성공한 권혁일씨. “내가 가진 자산을 의미있게 쓰고 싶다”며 청소년의 경제자립 사업에 큰 기부를 했다. 스펙 쌓기는 고사하고 학교와 집 주변을 맴돌아야 했던 여섯명의 아이들은 몇달 전 마포의 작은 도시락가게의 공동사장이 되었다. 그들 스스로 ‘소풍가는 고양이’라는 가게 이름도 지었고, 앞치마 두르고 만든 ‘청년활력도시락’을 배달한다. 그는 이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하며 경험과 열의로 아이들과 함께한다. 곧 또다른 청소년 창업 그룹이 생긴다. 정답도 선례도 없지만, 시행착오 속에서도 이 실험은 조용히 진화해 간다.
새로운 자선의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전문지식과 혁신적 기업운영으로 일찍 부자가 된 그들은 부의 대물림을 미덕으로 삼던 부모세대와 다르다. 성공의 사회적 책임에 당연 공감하며, 노년기 유산 기부보다 생전 기부에 더 관심을 둔다. 청년시절 사회의 격변을 지켜본 그들에게 ‘함께 사는’ 것의 가치는 낯설지 않다. 여전히 더 큰 성취를 향해 왕성하게 일하지만, 한편 세상에 의미있는 일도 구상한다. 관심은 시혜복지를 넘어 사회적 기업, 이주자, 청년고용과 풀뿌리 단체로 넓혀진다. 아직은 극소수이고, 시작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촉진할 공익투자자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벤처기부’ 1세대가 될 그들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커질 때 기부문화의 생태계도 바뀔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성공이 재해석될 때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는 참 많다.
글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