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 적응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탈북 아이들의 고통과 두려움은
‘사회적 경청’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무산일기>의 주인공인 탈북청년 전승철. 어둡고 불안한 그의 표정과 “절대 북한서 왔다 하지 마라”고 충고하던 선배 탈북자의 대사는 내내 머리와 가슴을 오갔다. 영화는 불편한 진실 자체였다. 참 몰랐고, 몰라서 무심했고, 없는 듯 잊고 있었다.
탈북자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보다 더 낯선 사람들이었다. 멀고도 낯선 이 거리감. 불편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우리가 느끼는 그 거리만큼 그들에게도 우리 사회는 먼 이국일 것이다. 몇달 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설립되었고, 지난달 강원도에 제2의 하나원이 착공되었다. 또 한편에선 유럽과 북미로 ‘탈남’하는 망명탈북자가 늘고 있다. 통일되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못할 고향을 떠나 이 땅을 선택한 그들에게, 아니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오늘의 탈북자가 어제의 ‘귀순용사’가 아닌 건 분명하다. 공항 입국과 동시에 환영 꽃다발을 받고 사진 세례 속에 기자회견을 하던 텔레비전 화면 속의 탈북자는 더 이상 없다. 2000년 이후 급증한 탈북자 수는 지난 6월로 2만3000명을 넘었다. 그중 70% 이상이 여성이고, 20대 미만 청소년이 15%를 넘는다. 정치적 탈북이 생존형 탈북으로 이동하며 탈북자는 지난 10여년간 구성도, 탈북 이유와 경로도 변화하고 있으며, 어느새 우리 일상으로 훨씬 가까이 들어와 있다. 학교와 일터에서 만나게 되지만 어떻게 그들과 어울려야 할지 잘 모른다. 여전히 우리는 그들을 조국과 가족을 버린 ‘배신자’로, 남한의 우월성을 입증해주는 정치적 타자로, 혹은 부담스러운 ‘더부살이 친척’쯤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북한이탈주민의 행복, 통일의 지름길’이란 슬로건은 적막하다.
얼마 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스물 전후의 나이로 보기에는 키도 몸집도 많이 왜소했다. 1990년대 중후반 극심한 식량난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났거나 유아였던 그들은 배움과 보살핌 속에 공부하며 꿈과 힘을 키워갈 나이에 두만강을 넘었다. 지독한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속에 ‘꽃제비’가 되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가족과 이별하고, 때론 공개처형 장면을 봐야 했던 아이들은 고통의 기억을 봉인한 채 만주 농장에서 ‘팔려 다니며’ 반노예노동을 했다. “신체는 고통을 기억하고 두려움은 이 기억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 엘런 영의 말처럼 오랜 기간 불법자로 떠돌다 온 아이들이 겪은 모진 고통은 두려움이 되어 공격성, 무기력증과 우울증의 이유가 되었다. 무학 혹은 수년간 학습 공백에다 전혀 딴판인 학교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북한에도 이런 것이 있느냐’는 친구들 질문에 자기를 부정하고 숨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는 ‘죄송하다 창피하다’며 죄인처럼 움츠러들었다. 당연하게도 자퇴와 잦은 휴학으로 배우고 적응할 의지와 기회를 놓아버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은 무죄이다. 눈치 볼 것도 죄송할 이유도 전혀 없다. 탈북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아픔은 분단된 남북한의 사회적·역사적 고통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경험이 좌우 이념의 틀에 끼워져 해석된다면, 또한 다르다는 것이 배척과 우월감의 근거로 계속된다면 ‘전승철’의 불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몇달간의 속성 적응교육으로 남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 건 부당한 일이다. 아이들의 고통과 두려움은 ‘사회적 경청’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남북한이 무엇이 다르고 같은지 알아가도록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의 경험을 듣고 이해하는 과정은 통일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나침반이다. 아이들이야말로 다가올 통일시대의 ‘통역자’가 아닌가.
글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