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의 길잡이가 되어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 첫 번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의 뜻을 담아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삶의 폭넓은 선택권을 확장하고자 교육비를 지원하고, 장학생 간 지지체계를 만들어가는 여러 활동들을 진행합니다. 그 일환으로 2019년부터 시작된 <작은변화 프로젝트>. 2020년 한해 동안에는 기자단팀, 나눔팀, 영상제작팀, 프로그램기획팀, 홍보디자인팀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차 활동을 이어갔고, 드림프로젝트팀, 찾아가는작은변화서포터즈팀이 신설되어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7개 팀은 올해도 함께 만든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배움과 관계 안에서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는 ‘콜라보’를 키워드로 하여 팀 간 활동의 협업도 자유롭게 진행이 되었는데요. 그 변화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만 18세에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아동복지시설 퇴소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금전적 지원만이 아니다. 구체적인 정보와 따뜻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지지체계의 형성은 실질적 자립의 바탕이 될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이 2019년 ‘작은변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힘들 때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관계망 형성’을 위해서다. 누구에게도 자립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후배 장학생으로 구성된 팀프로젝트 운영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고, 스스로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기르기를 바랐다. 그 결과 많은 길잡이와 장학생들이 변화를 경험했고, 준비되지 않은 자립의 우여곡절을 함께 풀어나갈 수 있었다.
2020년 2년 차로 진행된 ‘작은변화 프로젝트’는 길잡이와 장학생의 만남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도움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도움을 나누어주는 나눔의 선순환을 시도한 것이다. ‘찾아가는 작은변화 프로젝트’팀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11명의 팀원들은 한 곳의 아동복지시설을 지정, 자립을 앞둔 후배들에게 친근하고 쉬운 방식으로 자립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 상담 등을 진행했다. 선한 영향력을 공유하고 전파하며 어떤 것들을 느꼈을까. ‘찾아가는 작은변화 프로젝트’의 팀원 몇 명을 만나 활동에 어떠한 변화들이 있었는지를 들어보았다.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고 싶었어요.”
“먼저 자립을 해본 입장에서 리얼한 정보들을 아낌없이 주고 싶었어요. 시설에 있을 때 도움을 받긴 하지만 자립에 대해서는 실질적 정보를 알기 어렵거든요. 길잡이들도, 팀원들도 같은 마음이다 보니 프로젝트 진행하는 내내 사이가 무척 돈독했던 것 같아요. (신민규 길잡이)
“저도 자립하고 1년간 아무것도 몰랐다가 장학생이 되고서야 세상 물정을 알게 되었어요. 자립 후에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급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등등 오빠, 언니들이 친근하게 알려주어서 얻은 게 많았죠. 도움받은 만큼,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 기뻤어요.” (박진솔 장학생)
“가정위탁으로 할머니 손에 자라서 자립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어요. 장학생이 되고서야 수급도 다시 받을 수 있었죠. 진작 이런 정보를 알았더라면 덜 고생했을 거예요. 자립 전의 친구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나처럼 너무 멀리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이희준 (가명) 장학생)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이미 절친이 되었으니까요. 취지에 다들 공감한 것도 있고, 먼저 길을 걸어본 길잡이들이 친근하게 다가와 주어서 끈끈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비 장학생)
찾아가는 작은변화 서포터즈팀의 프로젝트는 한곳의 아동복지시설을 지정해 자립을 앞둔 후배들에게 친근하고 쉬운 방식으로 자립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 상담 등을 진행하고자 기획되었다. 기존에 시설에서의 자립교육은 진행되고 있지만 일방적인 강의 형식의 진행이 아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세세하게 논의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시간이 되는 인원끼리 소규모로 모임을 갖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하며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함께하고 경청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소한 갈등은 있었지만, 관계는 오히려 더 끈끈해졌다.
“온라인 등 비대면 회의를 하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정성들여 글을 남겼는데 아무도 답변을 안 하면 서운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서로를 배려하려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답변이 좀 늦더라도 바쁜 일이 있겠지, 조금 더 기다려 보자 하면서요.”(박진솔 장학생)
“길잡이로서 한 사람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했어요. 의견을 모을 때 투표를 한다던가, 개인적으로 전화를 하면서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 노력했죠. 서로 속 얘기를 가감 없이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웠어요.”(신민규 길잡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죠.”
상황은 여의치 않지만 ‘찾아가는 멘토와 멘티’라는 기획은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대표로 한 명의 길잡이가 시설을 찾았다. 고민상담을 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풋살장을 찾기도 했다. 함께하지 못한 팀원들은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아이들과 만났다.
많이 만나지 못한 아쉬움은 선물로 채워주기로 했다. 이들의 시선은 낡은 풋살유니폼에 가 닿았다. 평범한 유니폼보다는 뭔가 특별한 것을 선물하자, 한 사람이 낸 의견에 머리를 맞댔다. 그렇게 북두칠성(Septentrions, 북두칠성을 뜻하는 중세영어)이라는 팀 이름이 탄생했다. 로고를 디자인해 아이들의 풋살유니폼과 티셔츠에 새겨 넣었다.
“제가 팀원들에게 늘 하던 이야기가 있어요. 힘들면 돌아봐도 돼. 내려놓는 게 아니라 잠시 돌아보는 거야. 힘들면 좀 쉬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니까. 우리는 서로의 북두칠성이니까. 이런 마음을 담아 티셔츠를 만들었어요.” (신민규 길잡이)
“북두칠성은 길을 잃거나 방향을 잡을 때 바라보는 별이잖아요. 늘 그곳에 있고요. 우리가 아이들의 북두칠성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힘들 때마다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우리를 기억했으면 좋겠고, 연락해 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박진솔 장학생)
“변화와 성장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각자 맡은 역할과 협업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처음으로 리더를 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사람들과 관계를 풀어가는 법을 배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자유로움은, 치유 그 자체였다. 변화는 시설 친구들뿐 아니라 길잡이와 장학생들에게도 있었다.
“끼리끼리라는 말 아세요? 여럿이 무리를 지어서 따로따로라는 뜻인데 그동안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했던 끼리끼리라는 말을 달리 보게 되었어요.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니 좋은 에너지가 나오더라고요.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박진솔 장학생)
“다른 곳에서는 남한테 맞춰주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날 칭찬해주면 ‘저 그런 애 아니에요’ 하고 숨기 바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나다워도 됐어요. 시설을 퇴소했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고 애써 포장할 필요도 없고요. 요즘엔 칭찬을 받으면 ‘제가 좀 잘하죠?’하고 웃어 보여요.” (신민규 길잡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데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모임에서는 꺼려하는데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나의 솔직한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이라는 거, 쉽지 않잖아요. 멋진 경험이었어요.” (이희준 장학생)
“이 활동이 아니면 언제 전국 각지에 있는 친구들과 만나보겠어요. 어디를 가든 나올래? 같이 밥 먹을까? 하고 부를 수 있는 친구가 생겼어요. 좋은 오빠, 언니, 친구와 동생이 한 번에 생겨서 든든해요. 저도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고요. (이은비 장학생)
함께하는 담당 선생님들도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지원사업에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고민부터 팀원들 사이에 트러블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지혜를 구하며 가까워졌다. 안팎으로 소통이 자유로우니 더 똘똘 뭉치게 되었다.
“새롭게 이어질 변화의 여정들을 기대해 주세요.”
찾아가는 작은변화 서포터즈팀의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생, 취준생, 직장인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내년에도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고 싶다. 몇몇 팀원들은 작은변화를 위한 내년의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다.
“올해 못해본 게 너무 많은데 특히,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워요. 영화도 보고 볼링도 치고, 여행도 가면서 많이 친해지고 싶어요. 내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길잡이가 되어 못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이은비 장학생)
“사람은 살아가며 느낀 그대로를 베푼다고 하잖아요.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의 따뜻함, 함께하는 즐거움,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 등 활동을 하며 느낀 감정들을 내년에도 많은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박진솔 장학생)
서로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따뜻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경청했고, 기꺼이 화답했다. 첫 만남 때, 낯설고 불편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던 팀원은 ‘짧은 순간의 어색함을 이겨낸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웃어 보였다. 누군가에 기대어 어리광도 부리고 푸념하고 싶었지만 막상 곁에 아무도 없었던 때는 까맣게 잊었다. 홀로서기가 아닌 함께하는 기쁨이 큰 까닭이다.
시종일관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찾아가는 작은변화 서포터즈’ 팀의 프로젝트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질문을 던지자 팀원들은 약간의 망설임 후에 근사한 대답들을 내놓았다.
“숲속 오두막 같았어요. 따뜻한 난로가 놓인 오두막을 보면 포근하다 느껴지듯이. 언니가, 오빠가 이렇게 해보니까 이렇더라. 너도 이렇게 하면 편할 거야. 우리끼리 잘해보자 하는, 따스함이 가득한 그런 활동이었다고 생각해요.” (박진솔 장학생)
“제게는 전환점이 되었어요. 사실 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기적인 편이었어요. 친구를 사귀고 사람들하고 친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몰랐죠. 나 살기도 바쁜데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에는 어딜 가든 자연스레 리더를 맡게 되요. 이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알게 되어서예요.” (신민규 길잡이)
“샴푸, 린스, 바디워시, 칫솔, 치약 등 필요한 것들이 알차게 들어 있는 선물세트 같아요. 계속 써야하고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다 모여 있는 선물세트처럼 오빠, 언니, 친구, 동생, 선생님까지 꼭 필요한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은비 장학생)
“새로운 무대였어요. 주인공은 시설에서 만난 친구들이고, 길잡이, 장학생, 선생님들이 앙상블을 맡아주셨죠. 함께 고민하고, 기뻐하는 감동적인 공연을 경험한 것 같아요. 다음 무대는 어떨지, 기대 되요.” (이희준 장학생)
지원사업으로 인해 삶이 한 순간에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은 삶을 이어나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길잡이가 되어줄 이들의 여정이 기대된다.
글 김유진ㅣ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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