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려고 해도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고, 도전도 잘 못했고요. 그런데 교육비 지원을 받고 나서는 한번쯤 실패해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편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도전하게 되었어요.”
인터뷰 내내 차분하기만 하던 유정훈 씨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생활 자체가 바뀌었다.”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따른 삶의 변화를 묻자 주저 없이 돌아온 답변이었다.
정훈 씨는 지난해부터 2년 연속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 신청 당시 제출한 계획을 성실하게 실천해나갔다. 코로나 때문에 일부 계획은 이루지 못했는데, 이를 못내 아쉬워했다.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는 작은변화프로젝트, 엠티, 오티, 홈커밍데이 등 장학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참 많다. 모두가 장학생 당사자들을 위한 행사지만, 바쁜 생활 중에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석하기란 쉽지 않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오가면서 그는 이러한 일정들을 빠짐없이 소화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 만난 장학생들과 친구가 되었다.
‘모범 청년’이 남몰래 숨겨온 마음
정훈 씨의 이런 성실함은 타고난 천성만은 아닌 듯했다. 정훈 씨는 할머니와 함께 자랐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 대학까지 진학했다. “성실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부모님을 대신해서 그를 길러준 할머니의 가르침이다. 정훈 씨는 그 말씀을 어기지 않은 채 ‘모범 청년’으로 반듯하게 성장했다.
지금까지의 삶도 참 반듯하다. 그는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다가 고3 때 항공정비학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 만들고 고치는 걸 참 좋아했고, 기술을 배워두면 어떻게든 써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항공정비 쪽의 일은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취업도 잘 될 수 있을 직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후회해본 적이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정훈 씨가 선택한 길은 쉽지 않았다. 항공정비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는 문과에서 이과로 계열을 바꿨다. 그래서 1~2학년 때는 전공 공부만으로도 빠듯했다. 3학년 때부터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어학 실력도 쌓아야 했다. 국가장학금이 나와서 등록금 걱정은 덜었지만, 자격증 시험이나 어학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에게 큰 부담이었다.
특히 항공정비 관련 자격증은 한 번에 따기가 매우 어렵다. 친구들은 “2~3번 쳐봐야 경험이 쌓인다”고들 했다. 그러나 정훈 씨는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시험은 단계별로 많게는 13만 원의 응시료가 들어갔다. 그렇다고 시험을 안 칠 수는 없었다. 자격증은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스펙’이다. “항공산업기사, 항공정비사 면장(면허)은 아주 기본이에요. 요즘에는 비행기 기종별 정비 자격증을 별도로 따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름다운재단을 만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담담하게 시험을 치고 면접을 봤지만, 장학생에 선정됐다는 것을 확인한 날은 마냥 좋았다. 처음 장학금을 쓴 것은 항공산업기사 필기시험. 그 때서야 정훈 씨는 ‘내가 정말 장학금을 받고 있구나’ 실감이 들었다고 한다. 실패해도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과감하게 도전해서였을까? 그는 2개의 자격증을 모두 한 번에 땄다.
자신감, 용기, 새로운 친구들… 교육비 지원이 만든 삶의 변화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참여를 통해 바뀐 것은 금전적인 여유만은 아니다. 교육비 지원을 받기 전 정훈 씨는 자신이 “많이 숨기고 살았다”고 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 자신의 상황을 나눌 수 없는 외로움. 한 번의 일탈도 없이 정해진 길을 걸어왔을 것 같은 단정한 얼굴 뒤에는 많은 것들이 숨어있었다. 이렇게 숨겨놓은 마음이 오랜 시간 그를 위축시켰다.
빠듯한 삶에 장학금이 들어오자 마음도 함께 넉넉해졌다. 그전까지는 아주 가까운 친구들만 챙겼는데 더 많은 사람을 돌아보게 되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니 줄 것도 생겼고, 줄 수 있으니 먼저 다가설 수도 있었다. 혹시나 다시 공부해야 할까봐 남겨놓았던 전공 책이나 자료를 후배나 동기들에게 나눠주었다. 책을 받은 친구들은 새로운 자료를 공유해주었다.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변화에 크게 한몫을 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훈 씨는 다른 장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상처를 받을까봐 조심하면서 살았는데, 장학생 친구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예전에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던 정훈 씨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었다. 소심했던 그에게는 이 역시 과감한 도전이었다.
사실 지금 그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어렵겠지만 항공 분야로 진출하려는 청년들에게는 특히 지금이 고통의 시기다. 채용공지가 나오는 곳이 거의 없고, 가끔 나오면 경쟁률이 너무 높다. 남들처럼 쉬면서 스펙을 높일 수 없는 정훈 씨에게는 더욱 큰 압박이다. 빨리 취업해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 한구석을 누른다.
그래도 정훈 씨는 평온한 목소리로 “영어 공부도 하고 취업도 알아볼 생각”이라고 계획을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보였다. 새로운 길에 도전하면서 얻은 자신감,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안정감도 함께 느껴졌다. 지난 2년간 장학금이 준 선물일 것이다.
‘과감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정훈 씨는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 후배들에게도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을 권했다.
“저에게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해주는 기회예요. 저처럼 마음을 숨겨왔던 사람들, 누군가에게 말 못하고 혼자만 고민을 가져가는 사람들에게 이 장학금이 특히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해보면 좋겠습니다.”
글 박효원ㅣ사진 이현경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빈곤 등으로 인해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은 만 18세에 도달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호가 종료됩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여러 자립지원을 하고 있지만 충분한 준비나 유예기간 없이 자립 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사회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불평등한 출발선에 있는 이들의 자립을 응원하며 학업유지 및 자기계발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준비를 위한 역량강화 및 지지체계 형성을 돕고자 합니다. ‘2020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한국아동복지협회와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