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 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한 대학교 자퇴생의 선언 중 한 부분이다. 격려의 글과 비난의 글이 동시에 쇄도했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비난의 글에 담긴 내용이 딱 현재 우리 사회의 눈높이다.
도대체 상식이 되어야 할 이 학생의 선언이 왜 기이하고도 지탄 받아야할 행동이 되는 것일까?
경쟁 우위를 확보한 집단보다 확보하지 못한 집단에서 오히려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 기현상을 파고들면
현재 이 땅의 교육 문제에 대한 해법의 단초가 보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교육은 대학 입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학에 과도한 가치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대학의 선택이 곧 인생의 선택이며 입시에서 낙오되면 인생에서
낙오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학벌은 경쟁의 작동 기재가 되어 사회를 장악한다.
경쟁은 누구에게나 부여한 평등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실은 경쟁 우위를 확보한 집단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하지만 경쟁은 사회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한 가지 OS(운영 체제)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쟁 보다는 화합과 공존을
통해 돌아가는 시스템은 불가능한 것일까?
몇 년 사이 많이 회자되고 있었던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 프로그램은 새로운 대안적 교육으로서 특히 눈여겨 볼만한 가치가 있다. 엘 시스테마는 ‘시스템’이란 뜻인데 베네수엘라 문화부 장관을 지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1975년에 사회 운동으로 시작한 무료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다.
소외되고 빈곤한 계층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클래식 음악 교육을 시작하고 오케스트라를 조직함으로써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화합과 공존의 가치를 몸으로 깨닫게 한 것이다. 자신의 연주를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남의 악기 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이러한 화성 교육은 베네수엘라 아이들에게 존재감을 심어주었고, 결국 이들이 성장해서 사회의 소중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엘 시스테마 출신의 천재 지휘자라고 언론에 소개되는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엘 시스테마를 새로운 엘리트 음악 교육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사회적 시선은 그래서 좀 불편하다. 이들의 출현은 기적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굳이 경쟁을 통하지 않고 화합과 공존을 통해서도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시스템의 가능성은 이렇게 증명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경쟁과 입시 위주의 공교육 안에서는 할 수 없는, 아니 어쩌면 공교육에서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되고 있는 몇가지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 진행하는 자발적인 사회문화 활동 지원, 아이들이 모여 스스로 계획하여 생각을 모아 만들어 내는 여행 지원,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실험해 보고, 이를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닌 지역 사회와 함께 나누고 있는 특기적성 지원 등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언뜻 절망적으로만 보여지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과 일등 지상주의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만이 아닌,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생각없이 외워대는 내용만이 아닌, 직접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여 스스로 그 가치를 알아내고 상호 공존과 조화 속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것을 이루어 내고자 하는 아이들을 우리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통해 지지하고 격려하는 이러한 아이들이 느리지만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진정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물질만능주의, 일등지상주의의 길을 걸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 어른들은 말로만이 아닌 실천을 통해 우리들의 희망인 미래세대에게 심어주어야 할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이제 곧 수능일이다..
길거리를 다닐 때건, 매체를 통해서건입시와 경쟁에 짓눌린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이 시대를 만들고, 살고 있는 어른으로서 항상 마음이 무겁다.
자그마한 체구에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한껏 고개를 숙이며 땅만 바라보고 걷는,
외로운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그 무거움을 이제는 내려주고 싶다.
길고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아름다운재단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좋은 어른들의 손길로,
작으나마 희망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