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선에 서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당사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제와 다른 시선으로 일상의 문제를 읽는다. 달라진 관점은 새로운 출발선을 제시한다. 빈번하진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장애인의 일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것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름다운재단과 광주광역시 보조기구센터의 마음이다. 한 여름의 끝, 그 마음자리에서 ‘장애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 지원 대상자 열세 살 정현(가명), 여섯 살배기 은수(가명)를 만났다.
마음까지 배려한 목욕 의자
한가로운 정오 무렵, 너른 거실에서 분주히 보조기구가 조립된다. 광주광역시 보조기구센터 담당자가 친절히 사용 방법을 설명한다. 그 이야기를 경청하는 4개의 눈. 정현이와 그의 어머니 강민영(가명)씨이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6개월 만에 뇌병변 1급 진단을 받고 지낸지 13년. 그간의 꾸준한 재활치료는 숱한 어려운 순간을 희망으로 재구성했다. 목도 가누기 힘들던 시절을 지나 자유자재로 돌아눕기도 하고 스스로 자세를 변경하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는 테이블을 짚거나 보호자의 보조를 받으면 서는 것도 가능해졌다. 홀로 서는 것만 빼고 독립적인 수행이 가능한 상황. 언제나 함께한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그리고 수치료와 학업까지. 빠듯한 스케줄에 맞춰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게 만만치 않다. 아직 목욕, 계단 오르내리기, 옷 입고 벗기, 대소변조절이 어려워 꼼꼼하고 섬세한 어머니의 보조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힘든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일이 아니라서 위축되거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몸이 조금 고달플 뿐. 고생쯤은 별 문제가 아니다. 한데 얼마 전부터 상상 외의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정현이의 성장이었다.
“현재 정현이가 150m에 52kg이에요. 작았던 아이가 쑥쑥 자라고 있죠. 제가 안아들기가 어려워요. 그래도 다른 건 조금만 보조해주면 혼자 할 수 있어서 괜찮은데 가장 어려운 게 목욕이더라고요. 마땅한 목욕의자도 없고 하니 매번 매트를 깔고 힘들고 춥게 목욕하고 있는데 혹시 감기가 들까봐 제대로 씻기는 것도 어려워요. 대강 샤워만 하는 수준이죠. 욕실을 공사할 만한 여건은 안 되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보조기구 지원을 생각했어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정현이를 바라보며 절로 웃음 짓는 강민영 씨. 문제는 허리 디스크로 잔뜩 움츠러든 자신이었다. 목욕을 좋아하는 정현이가 안정된 자세로 여유 있고 즐겁게 목욕할 수 있기를 바랐다. 허리 측만증이 있는 정현이가 웅크리지 않고 여유롭게 목욕하면서도 감기에 걸리지 않기. 그래서 목욕의자를 떠올렸다. 그녀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보조기구센터 담당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같은 생각이셨어요. 청결상태가 정현이의 심리상태와도 연동돼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셔서 좋았습니다. 그런 섬세한 탐색에서 좌식이 아닌 입식 목욕의자를 추천해 주셨죠. 그리고 앉아 있을 때 생기는 약간의 후만을 보호하는 피더시트도 추천해 주셨는데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는 영록의 척추만곡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믿어요. 이 두 보조기구를 통해 정현이가 자신의 변화, 성장을 즐겁게 받아들이기를 바라요.”
스스로 서기 위한 첫 발짝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장애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이 매개가 되어 광주광역시 보조기구센터와 인연을 맺게 된 은수네였다. 34주 만에 이른둥이로 태어나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손상 때문에 팔다리 근긴장도가 높은 은수는 이제 여섯 살이다. 또래와 다른 일상생활을 꾸리지만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어쩔 수 없는 꾸러기다.
“현장평가 때 바로 기립기가 필요한 상태라고 하시더라고요. 무릎서기가 가능하지만 고관절이 49% 이상 탈구된 상태라 하루라도 빨리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요. 특히 좌우불균형이 심해서 바른 자세로 기립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줘야지 차이가 더 심해지지 않는다면서 지원 전에 리사이클 기립기를 사용하는 게 어떠냐고 권하셨어요.”
어머니 나은희(가명) 씨가 늘 바라던 보조기구였다. 매순간을 재활의 결정적 시기라고 여길 때마다 기립기가 간절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쉬지 않고 재활치료를 받는 상태라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건강보험 납부자라서 혜택 받는 것도 어려웠다. 그 와중에 아름다운재단의 사업을 알게 됐고 희망을 품었다. 리사이클 기립기를 사용한지 5개월여, 드디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고 전동 기립기를 지원받게 된 것. 광주광역시 보조기구센터 담당자가 하나하나 공들여 전동 기립기 작동법을 설명하자 나은희 씨 얼굴에 미소가 스민다.
“은수는 계속 왼쪽으로 쓰러져요. 서 있을 때도 그렇거든요. 전동 기립기 가슴지지대가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발도 안쪽으로 돌아가지 않게끔 설치돼서 바른 자세로 성장하기에 더 좋다니 설레네요. 이 보조기구를 잘 사용해서 양 발로 바닥을 지지하고 설 수 있기를 바라요.”
하체가 어떻게 상체를 지지하는지, 상체의 움직임에 따라서 하체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선행적으로 연습하기 위한 시간. 무엇보다 더 이상 고관절 탈구가 심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근육 약화도 막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은수 스스로 설 수 있는 그날을 위한 첫 걸음마였다.
“정해진 규모, 상황에 맞춘 지원이 아니라 우리 은수를 위한 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얼마 전 이사 온 아파트 이웃 때문에 정말 많이 속상했거든요. 다른 사람들 시선에 너무 힘들었어요. 한데 이렇게 보조기구를 지원받고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누군가와 걷기 위해 결핍인지도 모를 뭔가를 극복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라, 함께하려고 우리 은수에게 키를 맞추고 눈 맞춤하는 느낌이에요. 이 경험이 은수뿐 아니라 저마저도 기립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네요. 잘 사용하겠습니다.”
글 우승연ㅣ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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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아이 이름이 그대로 드러나있네요..
본명이 나와있어요.
아름다운재단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입니다. 말씀하신 이름은 모두 변경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