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키기 위한 특별한 파트너
‘집’은 저물고 싶은 사람이 돌아와 가족을 이루고 ‘식구(食口)’라는 테두리 안에서 밥을 나누는 공간이다. 물질로 직조된 ‘하우스’(House)가 아닌 정서가 스민 ‘홈’(Home)에 가깝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홈을 잊고 산다. 더 나아가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는 곳에서 사는 것으로 변질된 것은 집이 돈으로 환산되면서부터다. 몸을 뉠 만큼, 쉼이 거닐 만큼 돈이 필요한 시절. 사려고 해도 살려고 해도 고치려고 해도 떠나려고 해도 모두 돈이다. 운 좋으면 싸게 얻어 비싸게 팔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이거나 ‘내 돈이 이 만큼이다’ 나타내는 계급의 표식이다.
평수에 의해 계급이 정해지는 사이 삶이 소리 없이 해체되기도 한다.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생존 욕구와 그 다음으로 버티고 선 안전 욕구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소속이나 자긍심 더 나아가 자아실현은 꿈꿀 수도 없는 상황에 봉착하는 셈. 성인도 이기기 힘든 이 팍팍한 현실은 소년소녀가장에겐 두말 할 필요 없는 위협이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2004년 부터 아름다운재단이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을 시작, 2008년 부터 한국사회복지관협회와 파트너쉽을 맺어 더욱 견고히 사업을 쌓아갔다. 취약한 계층의 주거 안정을 향한 의미 있는 첫 발짝이었다.
“저희 한국사회복지관협회는 2008년부터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전국의 영구임대아파트, 국민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실질적 소년소녀가장에게 월세와 관리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학사업, 건강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재단의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세와 관리비라는 항목, 소년소녀가장이라는 대상의 특성상 티 안 나는 일시적 시혜로 끝나기 쉬운 이 사업을 7년 동안 꾸준히 지원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험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국사회복지관협회는 최소한의 의식주 권리 보장이 사회적 돌봄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학비 지원만큼이나 안정적인 일상 지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무상급식이 절실한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급식이 단순히 먹는 문제가 아니듯 집이 그저 자고 쉬는 곳은 아니다. 턱까지 차오른 고단한 삶의 숨구멍이자 인간 존엄을 지켜주는 아지트다. 그래서 소년소녀가장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주거지원사업’은 한국사회복지관협회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사업이다.
사회복지사가 이야기하는 주거지원사업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417개의 사회복지관에 사업 공문을 보내고 매년 총 100가구를 선정하고 지원했다. 내년엔 최종 대상자를 50가구 더 늘릴 예정이다. 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진심 어린 피드백이 증원을 견인했다.
“사업평가 간담회를 통해 전국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을 만나면 ‘아름다운재단 주거지원사업’의 진가를 알 수 있어요. 1년 지원금이 일시적으로 집행돼도 바로 대상자에게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사들이 매달 관리사무소나 은행에 납부해야 하거든요. 한 번에 끝날 일이 열두 번에 걸쳐 진행되니 번거롭다, 그냥 간단하게 분기별로 처리하면 어떨까 운을 떼면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사래 쳐요. 이것으로 대상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하시면서요. 신뢰를 쌓는 통로인데 번거로운 것쯤은 감수하실 수 있으시다고!”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사회복지관협회 박윤민 사회복지사는 ‘작은집에 햇볕한줌’을 지키려는 현장 담당자들의 의지에 매번 감동한다. 무시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닐까 회의를 가질 법한데, 과중한 업무에 치이다 보면 처리 방식을 더 간소하게 만들려고 분기별 정산을 바라기 쉬운데, 어쩌면 이리도 한결같이 지금 이대로 사업을 지속시켜 달라고 희망하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남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자라는 게 보인다고들 하세요. 주거비를 지원 받고 처음으로 태권도 학원을 등록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처음으로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아이가 있고, 누가 쓰던 책가방이 아닌 새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니기도 한대요. 적게는 4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지원받아 절약하면서 그들은 일상의 작은 변화를 경험하는 거예요. 이것이 꿈이 움트는 첫 순간인데 어떻게 멈출 수 있느냐 이야기하시는 사회복지사들께 사업을 진행하는 담당자로서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어떤 이는 주거비를 지원받아 매월 5만원, 10만원씩 적금을 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찬이 달라졌다고 기뻐한다. 고등학교 교복과 체육복을 살 돈이 생겨서 신나고 사회복지사에게 과일 대접할 돈이 생겨서 신난다. 별 것 아닌 일상의 소소한 변화는 오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선물했다. ‘급하고 중요한 일’을 처리하느라 삶의 대부분을 쏟아 붓는 이들에게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선택하도록 지원했다. 주거비 지원은 쳇바퀴 도는 고단한 하루하루를 다르게 채색하도록 도운 것이다.
주거 안정으로 꿈과 동거하다
‘주거지원사업’ 덕분에 돈 나올 구멍 없는 소년소녀가장에게 월세와 관리비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주거가 안정됐을 뿐인데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고 다른 차원의 욕구를 인식하게 됐다. 물론 대상자 모두가 이런 결말을 품을 리 없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을 뒷심 삼아 움직여 볼 일이다. 그 작은 시작이 변화를 불러올 단초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효과성을 측정하기 어려운 사업입니다. 물론 주거비 지원으로 절약하는 습관이 생긴 분도 있고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대학을 꿈꾸게 된 아이도 있고 체납료 해결로 안정감을 되찾은 분도 있죠.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서 한때 딜레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어쩌면 전제나 질문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주거를 안정시키려는 이유가 본질이죠. 주거를 어떻게 안정시키는가는 방법일 뿐이죠.”
주거비 지원이 그려내는 나비효과는 가슴 뭉클하다. 이를테면, 집이 안정되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동네 친구가 생길 수 있으며, 뜨거운 물을 쓸 수 있으니 자주 씻어서 자신감이 향상될 수도 있다. 조금 더 나은 집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아이의 심리적 변화가 주거에 좌우되기에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이 꼭 필요한 이유다. 그렇게 소년소녀가장들이 가까스로 일군 평화로운 일상으로 평범한 가계(家系)를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홈(Home)에 안착해서 꿈과 동거하는 어느 날을 기대해 본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임다윤
[사회적 돌봄] 배분사업이 바라보는 복지는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입니다. 주거권, 건강권, 교육문화권, 생계권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솔기금]은 달동네, 지하셋방을 겨우 벗어나 임대 아파트를 얻었다는 행복함도 잠시, 관리비를 내지 못해 아침이면 물을 찾아 헤매고 저녁이 되어도 불빛도 없는 캄캄한 방에 덩그맣게 앉아 있어야 하는 소년소녀가정을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소년소녀가정에게 조금이라도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임대아파트 입주의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