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요청에 응하고서야 유영선 씨(가명)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자신의 생존 전략이라는 걸 알았다. 돌아보니 다수의 편견, 사회가 규정한 ‘정상’ 범주를 벗어나는 삶은 늘 고단했다. 말로만 가치중립적인 ‘한부모 여성가장’과 ‘가난’이라는 수식어도 편치 않았다.

“인터뷰 한다니까 이것저것 떠올랐어요. 열심히 사느라고 뒤로 뒀던 15년이 되감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이름과 그간 살아온 이야기는 괜찮은데 사진은 안 찍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가만 둘러봤더니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혼자 사는 거 아는 사람들이 ‘쟤가 저랬구나 그랬구나’ 수근거릴까봐 주저하는 나를 봤어요. 좋든 나쁘든 편견을 줄까봐, 혹여 아이가 위축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고요.”

다섯 살 난 아들과 밤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온 지 15년째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능력한 남편과 이혼한 그날로 서울을 떠났다. 스물다섯에 결혼하고 3년 8개월 만에 돌아온 고향은 추석을 1주일 앞둔 채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무색하게 그녀는 궁색했다. 손에 쥔 2천만 원으로 집을 얻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1995년 겨울을 났다. 냉기 가득한 방에서 2~3년 된 묵은쌀로 밥을 지어 먹으려니 눈앞이 캄캄했다. 생활력 없는 가장이 되려고 선택한 이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2014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에 선정된 유영선 씨(가명)

“결혼 전에 육군 군무원으로 일했는데 그 경력을 활용할 수가 없었어요. 궁리 끝에 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른 어린이집 보모로 취직했죠. 웃긴 일이죠. 그렇게 3년을 지내다 친정으로 들어갔어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니 혼자선 어쩔 수 없더라고요. 별 수 없이 국민기초생활수급자도 달았죠. 낮에는 어린이집, 저녁과 주말엔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지냈는데도 허덕거렸어요. 돈도 모이지 않고 고달팠죠.”

‘그저’ 일어난 일 때문에 누군가는 견고한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낙담한다는 걸 이혼 후에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난관을 헤쳐 나가는 건 당사자의 몫이었다. 유영선 씨 스스로의 힘으로 장애물을 넘어서는 게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지냈다. ‘평범한 그들’ 세계로 편입하겠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늘 고마운 내 편에 선 사람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며 번 50만 원과 대형마트에서 시간당 최저 시급 3천3백 원을 받고 12시간을 일해 번 돈을 합해도 70만 원밖에 안 됐다. 저축은 꿈도 못 꿨다. 노후도 뒷전이었다.

오로지 아이의 공부에 투자했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지적 자원을 채워주는 일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들쑥날쑥한 수입으로 아이 교육비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다. 수년 동안 그리 불안하게 지내다보니 몸도 마음도 쉴 수 없었다. 그때 동사무소에서 지역자활센터를 소개받았다.

“아이는 쑥쑥 자라는데 버는 건 여전하고 답 없는 상황에서 고정적인 수입이 가능한 일자리를 소개받을 수 있다더라고요. 백방으로 뛰어도 어려웠는데 그게 가능하다니 정말 좋았죠. 처음엔 엄마들이 늦게까지 일하는 저소득층 가정을 방문해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지금은 일반학교 특수학급 정교사를 돕는 특수교육실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자활센터에서 일하면서 생활도 안정을 찾았다.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며 고정적인 수입을 가질 수 있으니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활센터라는 ‘편’(便)이 생겨서 좋았다. 자신을 보호해주고 애로사항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 사별과 이혼 등의 이유로 한부모 가정을 이루고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 놓이는 게 자존을 뒤흔들 명분이 되지 못한다는 걸 자활센터 사람들과 교류하며 절감했다.

힘들 때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것 역시. 자신을 보호하려고 세운 경계를 거두며 유영선 씨는 어쩌면 이제까지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견뎌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활센터와 (사)대전여민회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의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을 받게 되면서 더욱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다.

다른 생의 한가운데를 걷다

“건강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았어요. 당장 일어나지 않을 일에 쓸 돈도 없었고요. 한데 자활  선생님이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에 신청해보자 그래서 알았다고 했죠. 한번쯤 건강 검진을 제대로 받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되면 좋겠다 싶었고 운이 좋았는지 대상자로 선정돼서 기뻤어요. 검진 받으면서 긴장하지도 않았어요. 혹시 아프면 위염 정도 나오겠지 그랬죠.”

건강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은 유영선 씨에게 꼭 필요했다. 아직도 아이에게 해줄 것이 남아있기에 ‘건강하다’는 소견을 받아 쥐고 싶었다. 혹시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안을 제거하면 더 열심히 지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한순간 무너졌다.

 “지난 6월에 CT, MRI를 찍은 결과 소뇌 쪽에 뭐가 보인다더라고요. 검진밖엔 안 되니까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대서 충남대학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했죠. 1주일을 기다리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암이겠지, 그렇다면 말기인가? 나는 죽는가보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마음 다잡고 의사 앞에 섰는데 ‘소뇌의 이상은 별 게 아니다. 이것 옆에 발견된 게 있다’는 순간 암이라는 걸 알았어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막 울었어요.” 

다행히 양성 종양 초기라고 했다. 뇌를 열지 않고 감마나이프 수술이 가능하니 치료만 잘 받으면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혹시 증상은 없었느냐고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한쪽 청력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세상을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버티고 선 현실의 벽을 어떻게든 넘어가보려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았던 시간이 되감겨왔다.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수치스런 순간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했던 삶이 고스란히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거울 보며 내가 뭘 잘못하고 살았나, 왜 이런 게 걸렸나, 억울해서 울었어요. 너무 열심히 산 게 후회됐죠.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앞만 보고 달려서 이렇게 된 건가 싶다가도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왜 나한테 이런 게 생겼는지 화가 나고. 얼마 동안 왔다갔다 반복하다 그래도 열심히 산 덕분에 건강검진 기회를 받은 거라고 생각하니 안정되더라고요.”

7월, 충남대학병원에서 두개골을 4군데 뚫어 감마나이프를 받았다. 다른 기능을 해칠 수 있어서 제거하지 않은 채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관리하는 상황이다. 건강검진이 아니었다면 기능 하나가 마비돼서 말기 판정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운이 좋아 시기를 잘 맞췄어도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을 생각하면 모든 게 아찔하다.

그래서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다. 검진비는 물론이고 치료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 그간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이제부터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고 응원하는 것 같다.

“힘들 때 차라리 죽고 싶다 그러는데 죽음 앞에 서니 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네, 이번 일 겪으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진단 받고 치료 받으니 한 번 살아볼만 한 세상이다,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많다,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이혼, 한부모 여성가장, 가난 속에서 꿋꿋하게 지낸 건 아이를 위해서였다. 결핍 없는 미래를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다. 상실로 인한 결핍을 부끄러워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타인의 편견에도 쉽게 수긍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결핍을 채우려고 더 열심히 일했다. 환경 탓하지 않으려고 감정을 닫아버리느라 아프다는 신호도 지나쳤다. 듣지 않으려는 마음을 알아채라는 듯 귀가 들리지 않았는데도 무시했다. 그렇게 소외당하고 소외시키며 살아갈 미래를 바꾼 건 관심이었다.

일자리를 제공하고 건강을 지원하려고 기부하는 사람들이 퍽퍽한 세상을 바꾼다는 걸 유영선 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온몸으로 체화했다. 편견의 벽에 스민 균열, 그곳으로 숨이 드나든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인다. 아직 홀로 불안한 한부모 여성가장에게 그녀가 알리고픈 진실이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