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다닌다. 친구들과 아침 10시에 모여 서울의 이곳저곳을 찾아 나선다. 늦잠으로 때우기 일쑤였던 토요일 아침이 서울의 새로운 풍광을 보고 그리는 신나는 여정으로 바뀌었다.
3월 말이었다.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3번 출구 부근 아현동 재개발 구역. 주변에는 대형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텅 빈 집들 사이로 동네 사람들이 부산하게 몰려 다녔을 골목길은 그대로다. 재개발 지역을 스케치 장소로 헌팅 하러 다닌다는 것에 웬지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깨진 유리창. 먼지 자옥하게 쌓인 부엌. 이부자리까지 그대로 내버려둔 채 몸만 빠져나간 듯한 안방…. 빈집 표시인 듯 빨간 페인트로‘공가’라는 글자가 이집 저집 담벼락에 쓰여 있다.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깨진 기타 조각들이 너부러져 있다. 기타 조각들을 발로 툭툭 차며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다 쓰러져가는 어느 집 앞에 기타 한대가 세워져 있다. 갑자기 가슴이 쿵쿵쿵 하기 시작 했다. 집안을 들여다 봤다. 이부자리며, 책들이며, 우산이며, 비닐옷장 속 옷까지 그대로 내버려져 있었다. 대문짝은 떨어져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무슨 영문일까? 짐을 그대로 둔 채 몸만 빠져 나갔나부다. 대문 앞에 얌전하게 버려져 있는 기타.
순간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 기타를 뜯으며 목청껏 노래 부르고 놀았을 친구들. 철거 명령이 내려지고,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었던 그 친구들은 어디로 간 걸까? 갑자기 기타 연주가 시작됐다. 어두운 집 앞 골목길에 앉아 기타를 조용히 연주하는 친구. 흩어졌던 친구들이 기웃기웃하며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집 앞에 둘러앉은 동네 사람들도 기타 반주에 맞춰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른다. 여기저기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다. 어느 샌가 막걸리 한 됫박이 돌려진다. 꺼졌던 동네 집들 창마다 꺼졌던 불이 켜진다. 동네는 왁자지껄 사람냄새나는 동네로 훈훈하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전봇대 불빛이 다시 비추기 시작한다.
서너시간을 꼬박 그 자리에 앉아 그렸다. 기타와, 쓰러져 가는 담벼락과, 쓰러져 있는 대문짝과, 포그레인 한 삽이면 단번에 내동댕이쳐질 그 안방과, 골목길을 나뒹구는 쓰레기와, 돌멩이들까지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리고 그 예쁜 기타에 노랑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연노랑, 짙은 노랑, 노랑색을 살살 칠하고 또 칠했다.
아름다운재단에는 가수 이효리님이 기부해 만든 ‘효리기금’이 있다. 어렵게 사는 어르신들을 돕는 기금이다. 2011년 말에는 이효리님이 직접 이 아현동을 찾아 어르신들께 연탄을 배달했다. 2012년 말엔 이효리님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함께 다시 이 동네를 찾아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어 드렸다. 올해 말엔 그 곳에 이제 그 어르신들은 안 계실 것 같다. 아름다운재단이, 이효리님이 하고 있는 일이 이 노란 기타 같은 일이 아닐까?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재개발을, 철거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재개발로 버려지는 이들을 끝까지 돌보는 일. 작은 기타 같은 존재로, 마을을 다시 왁자지껄하게 살려 내겠다는 꿈을 갖게 하는 일. 기타에 노랑색을 칠하고 또 칠했다.‘기타야. 울려라, 다시 울려라~’하고 혼자 흥얼거리며 말이다.
김미경/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