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2012년 4월부터 영국의 명품브랜드 ‘버버리(Burberry)’의 글로벌공익재단 ‘버버리파운데이션’과 청소년들의 대안교육공간 ‘공간민들레’와 함께 10대 청소년들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갈 수 있도록 ‘길위에서 길을 찾다’ 청소년 자기길찾기 프로젝트를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2012년 사업 진행 내용 [더 보기] “어떻게 살까 고민이라면, 일단 자신부터 돌아보세요“
청소년자기길찾기 프로젝트는 기존의 직업중심의 진학이나 취업교육방식의 진로교육을 탈피하여 청소년들이 삶 전체를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원리를 고민하고 파악하는 방식의 교육프로그램입니다.
아래 칼럼은 2년에 걸쳐 아름다운재단, 버버리파운데이션과 함께 청소년자기길찾기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한 공간민들레의 김경옥 대표님께서 청소년진로교육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청소년들과 함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느낀 이야기를 풀어낸 글입니다.
네 꿈이 뭐냐고 묻지 마세요
아마도 저와 같은 기억을 가진 분이 더러 있으실 거예요. 어떤 기억이냐구요? 어릴 적 어른들이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을 하고는 이렇게 묻는 장면이에요. “네 꿈이 뭐니? 장차 뭐가 되고 싶니?” 하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모범생이었던 터라 가능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꿈이나 장차 하고 싶은 일을 들려드리고 싶지만 솔직히 꿈도 장차 뭐가 되고 싶은지도 선명하지 않았거든요. 그 어른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에다 곁에 친구가 털어놓는 당당한 꿈에 비해 자신은 너무 부족한 인간이라는 자책까지 겹쳐, 한참을 시무룩하게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어요.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제게도 꿈이 없지는 않았어요. 아주 어릴 적엔 아픈 사람을 돕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여자 아이들의 거의 절반은 간호사가 꿈이었어요. 왜 의사가 되고 싶다곤 안했는지는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죠. 의사는 남자가 하는 거고, 여자는 간호사가 되는 거라고 세상이 말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좀 더 자라서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아마도 자의식이 좀 자라면서 아이들을 차별하는 담임을 보며, 나는 가난한 아이들을 더 잘 보살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며 교사를 꿈꿨던 듯해요.
또 좀 더 자라 전혜린의 책을 읽으며 독문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좀 간절하게 했던 것도 기억나네요. 슈바빙 거리의 수은등 가로등이 밝혀지고 꺼지는 풍경을 꼭 보러가야지 하며 구체적인 로드맵을 그렸던 것도 그 즈음이에요. 하지만 독문학을 해봐야 먹고 살기 힘들고, 게다가 독일에 가는 건 그야말로 우리 형편에 그저 꿈이라는 생각에 그냥 쉽게 접었어요. 그러고도 크게 미련이 없었던 걸 보면 흔히 말하는 ‘간절한’ 꿈은 아니었던 게 분명해요.
제가 어른이 되고 청소년들과 만나는 일을 하면서, 종종 저도 모르게 “네 꿈이 뭐니?” 하고 물으려다, 옛날 생각이 나 멈칫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슬그머니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제가 곤혹스러웠던 것과 똑 같이 지금의 10대들도 가장 싫어하는 질문 중 하나로 “네 꿈이 뭐니?”를 들더라구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지금 한창 자신을 만들어가는 청소년들에게 진짜 중요한 질문이 뭘까, ‘뭐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먼저 묻고 더 먼저 사유해야 할 중요한 것이 뭘까 하구요.
진로 탐색,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지 따로 또 같이 고민하기
청소년들에게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묻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을 고민하는 요즘, 대한민국은 진로교육이 한창입니다. 아마 세상이 불확실하고, 취업은 어려운 상황에서 일찍 일자리를 고민하고 그것을 준비하라는 시대적 명령에 따르는 거겠지요.
불확실한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알아가는 건 더 없이 중요한 일이지만, 오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진로교육은 그것과는 또 사뭇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주로 직업중심의 진학이나 취업교육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진로교육은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 전체를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교육,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원리를 고민하고 파악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야말로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할 모습을 공부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세워가는 길인 거죠.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간민들레에서 ‘불확실한 세상의 얼개를 파악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을 세워가는 과정’을 청소년들과 함께 만들어 가보기로 했습니다. 뭐가 될 것인지, 되고 싶은지를 묻는 진로교육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고 싶은지를 묻는 진로교육을 해보기로 한 거죠.
이렇게 맘먹고 준비하다 보니 든든한 인연을 만나게 됐어요. 아름다운재단이 징검다리를 놓아 버버리재단이 이 활동을 지원하게 된 겁니다. 덕분에 지난해 봄부터 시작해 공교육 현장의 청소년, 위탁형 대안학교와 공간민들레 같은 비인가 대안학교 청소년 해서 모두 100 명 가까운 청소년들과 같이 고민하고 의논하고 질문하며 과정을 만들어왔어요.
무엇보다 이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의 목표를 세웠으면 했습니다. 스스로 자기 삶의 중심으로 잡고 싶은 화두, 삶의 목표를 세우는 거죠. 일과 업을 망라하여 어떤 직업, 어떨 일을 하던지 삶 전체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또 그것을 스스로 표현해 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삶의 목표는 외부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타인을 살피는 과정을 통해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느라 적젆이 힘들어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자료를 찾고 친구들과 의논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했습니다.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 어렴풋이 느끼겠다는 말들을 하더군요.
저는 ‘모든 교육은 곧 진로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체험프로그램이나 단기 활동으로 진로가 맞춤되어지지는 않는 거죠. 일상에서 주어지는 모든 자극들이 실제로 ‘진로’를 결정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모든 교육이 진로교육일 뿐 아니라 모든 일상이 진로교육일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일상을 진로, ‘자기 길 찾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디자인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진로교육이라는 사실이 엄중하게 다가옵니다.
김경옥 / 공간민들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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