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늦은 여름휴가를 해외로 다녀오니 그간 한국에 많은 일이 생겼다.
일단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태풍 두개가 지나가 있었고,
그 폭염은 어디로 갔는지 선들선들 바람이 시원해진게, 가을이 오는구나 싶은 날씨가 되었다.
그리고 무서운 사건이 있었다.
나주 7세 여아 납치 성폭행
7세, 여자아이, 납치, 성폭행.. 어느 것 하나 무섭지 않은 단어가 없다.
작년 이맘때, 비슷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범죄 피해자 및 가족을 지원사업에 대한 포스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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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의 범죄피해자 및 가족지원사업
범죄로 인한 트라우마와 생활적 고통에 시달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피해자와 가족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12년에는 12명의 피해자 및 가족에게 200만원씩, 총 24,000,000원의 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이 지원사업의 기금인 <미연이의 수호천사 기금>은 불의의 사고로 어린 딸아이를 먼저 보낸 부부가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기금입니다.
내가 맨 처음 ‘범죄피해자 및 가족지원사업’을 담당하게 된 것은 2011년이었다.
2011년도 지원자를 선정하기 위해서 협력단체인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로부터
10명의 피해자 및 가족을 추천 받았다.
추천서에는 범죄피해의 대략적인 내용과 현재 생활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 말다툼을 하던 중 자신의 집 부엌에서 칼을 가져와 피해자를 찔러서 살해함
– 가해자는 보도블럭에 걸려서 넘어져 화가나서 보도블럭을 들고 밖으로 던졌는데 때마침 귀가하던 피해자가 얼굴, 눈부위에 정통으로 맞아 치료일수 미상의 각막 및 공막열상과, 치아 3개 파손을 당하였음
– 화물차를 운전하던 중 길을 걷던 보행자와 시비가 붙어, 피해자를 주먹으로 수회 때려 외상성 뇌저부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하게 함
– 가해자는 결혼반대에 앙심을 품고 칼을 들고 들어와 상대방과 그의 동생을 수차레 찔러 살인미수에 이름
– 가해자는 학원을 가려고 주택가 골목을 걷던 피해자를 끌고 가려고 했으나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흉기로 가슴을 찌르고 도주함
– 전세를 구한다며 공인중개사와 같이 왔다가 간 다음 다시 혼자 방문하여 조카를 안고 있던 피해자를 강간하려하였으나 심하게 반항하자 칼로 10여 곳을 찔러 중상해 후 도주
– 피해자는 엘리베이터 입구 복도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주먹과 발로 수십차례 맞아 치료일수 미상의 상해를 입음
몇 줄 읽어 내려가니 너무 무서웠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이런 강력 범죄는 정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특별한 잘못을 한 어떤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그냥 거리를 걸어다니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결혼반대에 부딪히고 전세집을 내놓을 수도 있는데..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던것 같다.
그리고 피해자 및 가족의 현재의 생활은 한번에 끝나지 않는 치료와 치료비,
치료에 따른 근로중단과 그로인해 생기는 생계 곤란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신체적인 상처 뿐 아니라 그 후에 남겨진 정신적 고통도 컸다.
연일 이 무서운 일에 대한 기사와 새로운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엄마가 PC방에 간 사이 사건이 일어났다. 엄마가 게임 중독자인가보다. 문을 안 잠그고 나갔다.
아빠는 방에서 자고 있었다.
사실은 13세 된 언니를 범행대상으로 삼았지만 거실 안쪽에서 자고 있어서 동생을 납치했다.
7세 아이를 원래는 목졸라 죽이려고 했었다. 등등
이런 기사를 듣고 간담이 서늘해지는건,
범죄 후에 남겨지는 고통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는 한순간이지만 피해자와 가족은 평생을 살아야 한다.
성폭행 당하고 목졸려 죽을 뻔 했었던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사실은 원래 성폭행 대상자였던 13세의 언니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문도 안 잠그고 PC방에 갔다고 비난 받는 엄마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무서운 범죄 속에서
왜 이런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가능했던 일인지 납득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알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이 사건을 잊지 말아야하면서도, 얼른 잊어야한다.
범죄는 가해자가 저질렀지만 범죄 피해자라는 긴 꼬리표는 우리가 달아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선의에 의한 지나친 관심이 때로는 더 아플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제 무엇에 대해서잊어야 할지 생각해야 할 때인듯 하다.
2011 지원대상자의 편지 중에서.
… 갑작스런 불행이 저에게 생겼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집에는 70이 넘는 부모님과 사랑스런 아내, 3살 된 어린딸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3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있고 그 후에는 4개월동안 입원생활을 하면서 노부모님과 아내가 24시간 교체로 병원에서 간호하였습니다.
.. 사고 나기 전에 저 혼자 일하면서 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저축 조금 있는것으로 병원비도 감당하지 못하고 주변 친척과 긴급의료지원 등의 도움을 받아 퇴원했습니다.
.. 집에 있다보니 몸 상태가 점점 악화되면서 근육수축으로 인하여 가슴이 막 조여서 숨시기조차 힘들게 되었습니다. 빨리 죽고 싶었습니다. 살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때 지원해주신 돈으로 재활병원 입원하고 열심히 재활치료 받으면서 조금씩 좋아지면서 희망이 기적같이 생겼습니다.
… 저에게 지원해주신 그 분께도 감사의 마음 전해주세요. 비록 만나뵈지는 못하지만 그 분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그 분 덕분에 병원생활 걱정없이 지내고 있어요. 꼭 좀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범죄피해자 및 가족지원사업]을 통해서 범죄로 인한 트라우마와 생활적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해, 생계비를 지원해 범죄피해로 인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있습니다. 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동참해주세요~
글 | 김지애 팀장
애인만셋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기화로 한반도가 범죄피해와 관련해 뜨겁습니다. 죄값을 어떻게 물려야 하는 지도 중요하지만, 쌍끌이 어선 같이 범죄피해자에 대한 무차별 노출과 주변 인터뷰는 정말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흐ㅠㅠ
지애킴
그러니까요. 가끔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알권리라고 하는 인터뷰가 참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밖할매
요즘 뉴스에 나오는거 보면 피해자 동네주민이나 아는사람 인터뷰하던데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오히려 빨리 치료하고 안정을 찾을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게 더 좋을것..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애킴
때로는 멀리서 지켜봐주는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될때도 있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