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름다운재단 간사들과 함께 1박2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워크숍 준비 과정에서 아침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간사들
“아침 식사는 그냥 컵라면으로 때우면 됩니다!”


“뭐야? 컵라면? 아침에 컵라면 먹고 내는 몬 산다! 뭐 좀 잘 먹자!” 

간사들
“기부자들의 돈을 가지고 워크숍 가서 푸짐하게 사 먹으면 저희 욕먹어요. 컵라면 먹어도 저희 아무 문제없어요!!” 


“우리가 잘 챙겨 먹어야 더 열심히 일하지. 워크숍 가서 아침 좀 챙겨 먹는다고 기부자님들이 우릴 혼내시진 않을 거야.”

 

결국 기부금에는 한 푼도 손대지 않고 이사님들의 주머니에서 갹출해 워크숍 비용을 몽땅 충당하는 걸로 합의를 본 후에야, 좀 푸짐한 아침식사 계획을 짤 수 있었다. 덕분에 충북 금산의 명물‘어죽’과‘도리뱅뱅이’를 맛봤다.  

지난해 말에는 보너스를 주겠다니까 경영기획국에서 두 손 들고 말리는 게 아닌가? “지원해야 할 곳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보너스 안 받아도 됩니다!”사실 재단 간사들의 월급은 노동 강도와 질에 비해서 한참 낮은 편인데도 말이다.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인 끝에 애초 계획보다 적은 액수의 보너스를 주는 쪽으로 타협을 봤다. 

간사들과 일을 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기부자들의 돈을 헛되이 써서는 안 된다’ 는 원칙을 지키는데 철두철미하다보니, 전에 몸담았던 다른 회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주장이나 행동을 자연스레 한다. 사무총장이‘어죽’과 ‘도리뱅뱅이’ 묵자는데 ‘컵라면’을 굳이 우기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세 가지 이유쯤을 꼽아본다. 첫째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다. 둘째는 혼자 잘 먹고 살기보다 공동체를 위해 뭔가 기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셋째로는 자신이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세상에 표현하고 싶어서일 게다.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딱 합쳐지는 일을 찾아 하게 된다면 가장 좋을 게다. 하지만 그런 일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고, 한두 해가 아니라 평생을 걸고 해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돈벌이가 너무 안 된다면? 돈은 잘 벌지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먹고 살기가 너무 고달파진다면?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인생관, 인생 주기와 연관시킨 선택과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 생에의 기본적 자세의 실천,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 받을 때 나만 편안할 수 없다는 공동체적 자각, 의식,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한 작은 땀을 흘리고 사는 것이 내 삶에서의 기쁨이며, 거기 수반되는 고통은 내가 그 길을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리라 생각한다. 이 정신을 버릴 때 내가 어떤 학자적 명성이나 부나 평안함을 얻는다 해도 난 생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며칠 전 집안 대청소를 하다 찾아낸 편지뭉치 속에서 발견한 문구다. 꼭 30년 전인 1983년.‘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쓴 1백50매 분량의 그 편지에서 나는 대학 졸업 후 어떤 자세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를 가족들에게 천명하고 있었다. 손가락 발가락이 오글거리는 창피한 내용들도 많았지만, 끄덕여지는 대목들도 꽤 있었다. 30년 전 나는 공동체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그 결과 경제적인 보수가 다소 적더라도 의연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쯤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어죽’과 ‘도리뱅뱅이’가 아니어도 ‘컵라면’이면 족하다고 웃으며 말하는 재단 간사들과 함께 일하게 된 건 그 다짐에서 출발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재단 간사들 중엔 훨씬 더 좋은 보수와 대우를 받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친구들도 많다. 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상대적으로 낮은 월급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게다. 물론 누구나 이런 선택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 돈을 잘 벌어 더 많이 기부하고 함께 나누는 삶도 아름답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일을 위해 자발적으로 낮은 월급을 선택하는 삶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다.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소중한 불씨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낮은 월급이 우리 간사들의 삶을 버겁게 하지 않아야 하는 점이다. 젊은 시절 잠깐의 치기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이 일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적게 벌어, 적게 쓰면서도, 우아하게 사는 방법을 개발해야 할 숙제가 우리 모두에게 던져져 있다. 

김미경(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댓글 3

  1. 소중하게 여기던 지인들이 유난히도 떠나갔던 몇년이 지났습니다.
    제 나이 이제 스물 다섯. 대학학점보다는.. 영어점수보다는
    그저 소심하고 어릴적 상처를 입었던 제가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모든 행동에 서툴던 제가 능동적으로 될 수 있던 계기가
    대학생활이었습니다.
    항상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은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사회복지에서 청소년상담.. 많은 진로를 고민하다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활동을 알게되고 수많은 비영리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글쎄요… 제가 아직 어린 나이라서 그럴지 모르지만 저에겐 100만원보다 제가 하는
    일이 가치있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었으면 합니다..
    내일 도움과 나눔이라는 비영리단체에서 F2F 활동 아르바이트를 신청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일을 하면서 마주칠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시절 적었다던 글이 마음에 와닿네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좋은 글에 마음이 동합니다.

  2. 송인상

    아, 안녕하세요. 친구 페북에서 보고 타고 들어왔다가 글을 일게 되었습니다.
    제가 금산 출신인데요. 충북 금산으로 되어있는것을 보고, 글을 남기게 되네요.
    도리뱅뱅이와 어죽이라면 충남 금산일텐데, 남해 금산은 알지만, 충북 금산은 처음 들어보네요.
    확인해보시고, 수정부탁드립니다.

    • 앗,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 블로그 담당자 홍리입니다.
      충남 맞습니다. 바로 수정했습니다!
      ‘아이구 충남인대.. 틀렸네’ 생각하고 넘어갈 수 도 있는 것을 이렇게 말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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