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대한민국의 광장은 추운 칼바람을 무색하게 하는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차 있다. 덕분에 시민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마침, 반디수업을 통해 인천송림초 우리 반 아이들과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했고(물론 현재 시국이나 정치와 관련된 내용은 결코 아니다!)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캠페인을 하다
1년 동안 차근차근 반디 수업을 진행한 우리 반은 드디어 11월 15일, 교내에서 캠페인을 했다. 우리반 아이들이 함께 해결하고자 선정한 주제는 3가지였다.
- 쓰레기 재활용 문제
- 화장실 사용 및 관리 문제
- 스마트 중독 예방 문제
그동안 함께 고민하고 조사한 내용(비영리기관에서 직접 들었던 이야기들)을 연결하고 정리하며 4학년의 언어로 피켓을 만들고, 구호도 다듬었다. 연초에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학교 밖으로 나가 직접 제작한 천연 비누도 판매하고 간단한 공연도 겸비한 ‘버라이어티한 행사’를 꿈꿨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대폭 축소되었다. 내심 아쉬웠지만, 이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즐겁게 캠페인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즐기고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만든 피켓, 연습하는 구호와 설명은 다소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온전히 ‘아이들의 것’으로 담길 수 있었다.
그러나 교사를 더 뿌듯하게 만든 것은 반디를 통해, 캠페인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 스스로 ‘목소리’를 낸 캠페인 활동을 기점으로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Before Campaign – “제가 가지면 안 돼요?”
캠페인 전에 아이들은 학년 특색 활동으로 천연 립밤, 천연 비누를 만들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주요 활동 중 하나였고, 아이들과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약속했다. “이거 만들면 비영리기관에 기부해요!” 비록 판매는 어렵지만, 직접 비영리기관에 방문하여 기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고, 아이들은 몇 번이고 그러고 싶다며 약속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천연 립밤과 비누를 제작한 날! 아이들의 미묘한 태도가 감지되었다. “제가 만든 거 제가 가지면 안 돼요?” 견물생심(見物生心)! 당황스러웠지만,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보다 적은 기부 물품을 리빙 박스에 담으며, 약간의 실망감과 허탈함이 남은 공간을 채웠다.
After Campaign – “이것도 기부할게요!”
즐겁게 캠페인을 한 뒤 며칠 후, 학급에서 학예회가 열렸다. 학예회 마지막 순서로 ‘나눔응원전’을 펼쳤다. 그동안 자신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발표하고, 활동 영상도 감상했다. 그리고 반디 수업 수료증도 받았다. 1년 동안 알차게 진행되었던 반디 수업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이틀 뒤 사회 시간에 학급에서 나눔 장터를 열었다. (마침 사회 시간에 경제 활동을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나눔장터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캠페인 전과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눔장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혹시 기부할 물건이 있냐고 물어보자 제법 아끼던 물건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들었던 천연 립밤과 비누에 애착을 보이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쿨내’는 장터 활동에서도 진동했다. 친구와 흥정을 하면서도 에누리와 덤을 아끼지 않는 장면, 장면에서 우리반은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마침내, 나눔장터를 마무리하며, 혹시 더 기부하고 싶은 물건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애타게 흥정하며 교환하고 샀던 물건들을 쿨~하게 기부하였다. 리빙박스가 가득 차서 부족할 정도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기부하기를 꺼렸던 날과 기부 물품이 넘치던 날은 불과 2주 차이였다. 아이들의 태도가 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이들이 ‘목소리’를 낸 캠페인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어진다. 단지 공기의 파동만이 가 닿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존재가 타인과 이어지는 ‘선’으로 작용한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통해 관련된 사람들에게 동료의식과 애정을 느꼈다. 실제로 우리가 방문했던 비영리기관-스페이스빔, 스마트쉼터, 아름다운가게-에 더 친밀감을 느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가깝다보니 친구들끼리 방과후에 편하게 놀러 갔다 오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특히 스페이스빔에서 마련한 배다리 생태놀이숲은 놀이터로써 아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고, 방문 빈도도 높다. 얼마 전에는 국어 수업 발표를 위해 직접 인터뷰를 하겠다고 다녀온 친구들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소리’를 스스로 냄으로써 비영리기관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행동하는 능동적인 지역 참여자가 된 것이다.
한편 ‘목소리’는 ‘나’를 향한 내면의 울림이 된다. 힘주어 외쳤던 내용은 자신에게로 돌아와 스스로 되묻게 된다. ‘그래서 나는?’ 반성과 성찰은 자신을 주변인이 아닌 주인공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한다. 주변인으로서 그저 방관하고 주저하였다면, 주인공으로서 행동하고 실천하게 된다 – ‘목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행동과 실천을 통해 아이들은 한층 더 성숙해진다.
비록 작은 목소리였을지라도, 스스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변할 수 있었다. 주체가 될 수 있었고,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며,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따뜻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자 책임임을 새삼 느꼈다. 아름다운재단과 함께한 반디 수업은 이 역할을 함께 실천한 좋은 벗이었다.
글 l 송한별(송림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