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던 아이들이 아니었어요. 눈을 반짝이면서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이게 정말 내가 바라왔던 수업이라고 생각했죠.”
경청하는 선생님,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
박미경 씨(영남중학교 진로전담교사)는 34년 차 교사다. 어떤 분야든 경력 30년이 넘으면 누구나 알아주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녀에게 교실은 늘 미지의 세계다. 5년 전에는 깊은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수업을 하면서 교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이 깊어질 때, 새로운 기회를 만났다. 바로 진로전담교사였다. 밑바닥부터 아이들과 삶의 고민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수업부터 바뀌어야 했다.
그녀가 보기에 진로수업은 교과수업보다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여백이 많았다. 자는 아이 한 명 없이 모두가 생동감 있는 수업, 그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변화를 위해 성실히 수업 연구도 하고 공개 수업도 했지만 진정한 배움터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재작년, 아름다운재단과 나눔교육을 함께 진행하면서야 그녀는 “내가 찾던 교실의 모습을 만났다”며 환히 웃는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선 선생님이 늘었다. 기존 교실에서는 “한 명의 선생님이 삼십 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했다”라면 나눔 교실에서는 “네 명의 선생님이 스무 명의 아이들과 모둠 수업”을 했다. 단순히 선생님 숫자가 늘어난 게 아니다. 그만큼 선생님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생겼다. 교실 안에서 교사와 반딧불이(나눔교육 퍼실리테이터)의 ‘경청’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다.
“예전에는 뭘 물어봐도 대꾸 없이 떠들기만 하던 아이들이 너무너무 적극적인 거예요. 처음에는 가장 무관심했던 아이가 마지막 캠페인 할 때는 주인공인 양 주도해서 참여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게 다 반딧불이 선생님들이 마음 터놓을 수 있도록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어서 가능했어요. 덕분에 아이들 스스로 관심 있는 걸 이야기하고, 그걸 가지고 활동하니까 교실에 활력이 넘치더라고요.”
바라서 하는 ‘나눔’의 힘
이전까지 그녀는 늘 하나라도 더 알려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2년 동안 나눔교육을 통해 그녀는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스스로 찾아가게 돕는 일”이라는 배움을 얻었다. 그녀의 이런 배움은 나눔교육의 지향과도 연결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바라서 하는 일, 그것이 나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고 나누는 이도, 받는 이도 즐겁다. 영남중학교 학생들도 자신들에게 가장 가깝고, 와 닿는 일부터 나눔을 시작했다. 바로 ‘다문화’였다.
“<청년 경찰> 같은 영화에서 보면 대림동을 우범지대로 그리고, 이주민들은 마치 다 폭력적인 것처럼 그리잖아요. 우리 학교가 대림동에 있는데,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문화가 주제로 나왔죠. 아이들이 직접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바꾸자는 내용의 팻말을 만들어서 대림역 앞에 들고 나갔어요.”
대림역 앞에서 그녀가 마주한 아이들은 더 이상 교실에서 보던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다들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 푯말을 들고 캠페인을 펼치는 모습에 그녀는 한 번 더 놀랐다. 이렇게 나눔교육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학생 인권’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팀은 선생님들을 단체로 놀라게 했다. 책상 위에 깜짝 이벤트로 초콜릿과 함께 “선생님! 우리는 OOO이란 말을 듣고 싶어요.”라는 카드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과는 다른 아이들 모습에 선생님들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미경 선생님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재치 있게 전하는 아이들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눔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서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이 학칙에 대한 의견(복장과 두발 자율화 등)을 전해 왔을 때다. 그녀는 물론 그 의견을 담당 선생님께 전달했지만, 어디까지 반영될 수 있을지, 또 그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고민이 깊었다. 이 의견을 만들기까지 설문조사를 하고, 친구들을 인터뷰한 아이들의 정성을 알기에 더 그랬다. 그래서 그녀는 궁극적으로 이 나눔교육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지속되길 원한다. 그래야 의견 전달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체로 설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는 이렇게 자기가 문제를 찾고, 해결 과정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수업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 나눔교육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규 수업이 되면 좋겠어요. 모두가 다 경험하도록요.”
그녀는 이 경험이 아이들에게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지속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또, 마흔 명만 경험할 수 있었던 이 기쁨의 교실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앞으로 남은 정년 4년. 그녀에게 마무리할 일보다 새롭게 도전할 일이 더 많은 이유다.
글 우민정 ㅣ 사진 김권일
반디
너무 따뜻한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