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어느 날
아름다운재단의 창립기념일을 맞아 간사들이 장기 기부자 감사 전화를 열심히 돌리며 오랫동안 함께 해주신 기부자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받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 기부자 컴플레인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다.
한 기부자가 전화를 걸어와 어떤 기금에 매칭기부 참여가 안 된다며 문의를 하셨는데 확인해 보니 연초에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시스템을 개편하면서 특정 기금에 신규 매칭기부가 허용이 안 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우리의 실수가 발견된 것이다. 수정한 후 기부자에게 안내를 드렸더니 시스템 개편 후 한참이 지났는데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냐며 실무자에게 매우 화를 내셨다고 한다. 다른 참여의사가 있는 기부자들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참여 못하게 만든 것 아니냐고 따지셨다는 것이다.
전화응대를 한 실무자는 정중하게 사과를 드렸으나 기부자가 쉽사리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재단의 실수에 대한 추궁에 더해 지금은 우리도 해결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온라인 홈페이지 불편사항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시니 책임자로서 응대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모금국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상황이 원망스럽다. 잘못을 백배 인정해도 지적받는 소리가 듣기 좋을 리 만무하다. 아직도 기부자가 화가 많이 나있으면 어쩌나 살짝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기부자의 항의 내용이 무엇인가 꼼꼼히 살피고 우리의 실수에 대한 사과,대처 방안, 재발방지 약속 등 대응 순서를 머릿속에서 점검하고 수화기를 들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기부자가 항의하는 부분은
왜 기부금 받는 창구가 제대로 안 열려있었느냐는 것인데
실수에 대해 죄송하다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강력한 비난을 받을 만한 부분인가 ……..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어떠한 비난에도 웃는 얼굴로 응대할 만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 기부자에게 전화 걸기는 조금 미루고 생각 좀 해봐야겠다.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자는 고객인가?
퇴근길에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8월 동안 가졌던 기부자와의 크고 작은 만남을 통해서 갖게된 질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아름다운재단의 실무자는 어떻게 기부자와 관계를 맺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해서 기부자를 만나고 소통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는 모금국의 실무자들은 기부자의 존재가 늘 감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마음에 안 드는 기부자와도 웃으며 이야기해야 하고 우리를 오해하여 불같이 화를 내시는 기부자에게도 예의를 차려 얘기해야 한다. 기부자에게 예우를 다해야 하지만 그것이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다.
그래서 서비스 직종 근로자가 겪는 감정노동에 대해 공감한다.
게다가 서비스 정신을 넘어 기부자는 우리에게 비영리 공익재단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헌신도 요구한다. 그런 요구가 전혀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인지라 이래저래 부담스럽다.
경험은 곧 동기이다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겨 있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지그 지글러(Zig Ziglar)라는 동기부여 전문가를 소개하는 아나운서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동기는 행동을 취한 다음에 생겨납니다. 세일즈맨은 손님에게 면박을 당해봐야 다시는 이런 수모를 안 당하겠다는 동기가 생깁니다.”
동기는 곧 경험이다, 기쁨이든 수모든 일단 행동해야 더 행동할 이유가 생긴다.
지그 지글러(Zig Ziglar) :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기계발,성공학,동기부여전문가. 관련분야의 베스트셀러 저자로서 국내에 출간된 책들이 여럿 있음.
그래!
기부자가 화를 내는 것은 부담스럽고 듣기 싫지만
그런 비판도 들어야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는 것이겠지.
쓴 소리 듣는 것 자체에 연연하지 말고 이 후에 어떻게 제대로 할까를 생각하자.
기부자와의 소통
일을 하다보면 게으름도 피우게 되고 싫은 일은 슬쩍 눈을 감고 미루게 될 때도 있었다. 일상의 비루한 업무들 앞에서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길을 잃고 헤메기도 한다.
기부자와의 소통은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는 경고등이 된다. 따듯한 칭찬은 지금 하고 있는대로 그렇게 계속 하라고 격려해 주고 날카로운 질책은 우쭐대지 말고 정신차리라고 경고한다.
버겁지만 즐겁고 감사한 일. 아름다운재단 실무자의 일이다.
기부자님,
당근과 채찍, 그 어떤 것이든 함께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게 다 애정의 표현이겠지요?
그렇지만 실무자들도 마음 약한 사람인지라 불같은 화는 두렵습니다.
조금만 부드럽게, 하지만 냉정함을 잃지 않고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저희도 기부자의 날카로운 지적을 담담히 받아들이도록 맷집을 키우고 바르게 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