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0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변호사실무수습 이광준 님의 글입니다.
※ 이 사업은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이 함께 하였습니다.
2020년 1월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3월부터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이하 ‘동행’이라 합니다)’에서 변호사 실무수습을 했다. 3년간의 수험생활에 지쳐있었기에 4월 말에 있는 합격자 발표가 있기까지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려고 했는데, 2월 말 이소아 변호사의 전화가 열심히 나태하고자 했던 나의 계획을 변경시켰다. 예기치 못한 이른 출근 날, 동행에서 처음으로 맡게 된 업무가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이었다.
7차 교육과정의 혁신으로 국사를 배우지 못해, 고등학교 시절 애국심을 불태울 계기가 없었지만 ‘위안부’, ‘근로정신대’에 대해서는 다행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 점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강제징용으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째서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이 없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과 함께한 2020년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에서 주로 담당했던 일은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강제징용 유튜브 동영상 제작 등 사업 과정을 기록하여 ‘문화 콘텐츠 그룹 잇다(이하 ‘잇다팀’이라 합니다)’가 제작하는 1~3차 영상 사이에 업로드하는 일이었다.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여유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평소에 유튜브를 즐겨 보는 애청자로서의 애정과, 그리고 강제징용에 무관심했던 반성으로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댔고 모니터를 바라보았고, 다행히 에피소드 영상이 한 편 한 편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늘어주었다(사실 마지막 에피소드 영상까지도 많이 부족했으나 관심과 사랑으로 영상을 시청해 주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라 합니다)’ 채널 구독자분들 감사합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과 함께한 2020년에는 지금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다. 치열하게 회의하는 활동가, 연기를 어색해하던 변호사, 불같은 열정으로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하던 잇다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시민모임 기록 창고 등… 그 가운데 인상적이면서도 가슴에 남는 장면은 양금덕 할머니 댁을 방문했던 기억이다.
한 여름에 언덕 위에 위치한 양금덕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은, 아주 조금은 힘들게 느껴졌다.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을 보셨는지, 할머니는 직접 문을 나서 양로원으로 가 시원한 막걸리를 가져오셨다. 그때는 할머니가 내가 흘릴 땀을 대신 흘린 것만 같아서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고 있는 것이 힘들고 죄송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의 러닝타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촬영은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긴 촬영 속에서도 할머니는 80년 전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진술하였다. 당시에는 할머니께서 정정하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힘든 기억이었기에 세기가 바뀐 지금에도 전혀 잊히지 않은 것인지, 슬픈 기분이 든다. 촬영의 막바지에 할머니는 강제징용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함께하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비록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에게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지만, 시민들의 응원에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남을 위해 흘리는 땀의 소중함을, 위로를, 힘을 알고 계셨기에 무더운 날에도 오르막길을 올라 막걸리를 가져오실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업의 과정 자체가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아름다운 재단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