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임팩트o 지원단체 : 한국게이이운동단체 친구사이 |
한국 성소수자의 자살율은 얼마나 높을까.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이하 친구사이)가 내놓은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성소수자가 이성애자에 비해 자살을 생각한 비율은 9배가 높았고, 자살 시도 비율은 12배가 높았다. 한국 최초로 3천여 명이 넘는 성소수자가 참여한 대규모 조사였다. 박재경 팀장(친구사이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 연결팀장)은 짐작은 했지만, 실제 수치로 확인하니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3~4배 차이만 나도 심각하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은 자살 시도율이 12배나 더 높았어요. 당시에는 전문가들도 이 결과를 믿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높냐는 거죠. 하지만 조사할 때마다 같은 결과가 나오니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상황이 이런데도 성소수자의 특성을 고려한 자살 예방 교육이나 상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공백을 메우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자살 위기자를 돌보기 위해 2015년 친구사이의 회원들이 나섰다. 성소수자 자살 예방 활동을 하는 ‘마음연결’ 팀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자살 위기자와 상담하고, <무지개돌봄>이란 성소수자 맞춤형 교육을 개발해 자살예방지킴이를 양성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지원할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뭔가 해야겠다 싶었어요. 당장 공부부터 시작했죠. 처음에는 자살 예방 교육을 하는 전문 강사를 초빙했어요. 이론 강의는 잘 끝났는데, 정작 중요한 질의응답에서 강사가 답을 못하는 거예요. 강의하는 날에야 처음 성소수자를 만났다고 할 만큼 배경지식이 없었던 거죠. 우리에게 맞는 자살 예방 교육을 우리가 직접 개발해야겠다는 생각 들었어요. 그렇게 <무지개돌봄> 교육을 시작한 거예요.”
교육의 초점은 하나였다. 자살 위기에 놓인 성소수자를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론 강의에 더해 상황극 실습을 만든 이유다. 친구사이에 20년 넘게 쌓여온 상담 기록을 기반으로 LGBTI뿐 아니라 젠더퀴어, HIV감염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로 상황극을 구성했다. 어디에도 없던 성소수자만을 위한 자살 예방 교육이 탄생한 것이다.
“위기 상황에 놓였다고 모두 전문가를 찾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 때는 주변에서 이 사람이 자살 위기에 놓였다는 걸 알아차리고 개입하는 일이 중요해요. 알아차리고, 물어보고, 연결하는 거죠. <무지개돌봄>은 그 역할을 하는 ‘자살예방지킴이’를 양성해요. 자살 위기자였던 당사자분들이 많이 오세요. 자신은 힘든 시기를 지났지만, 지금 힘들어하는 다른 친구들을 돕고 싶어서요.”
직장에 다니는 친구사이 회원 8~9명이 자원 활동으로 온라인 상담을 하고, 교육을 개발했다. 시간을 쪼개 전화와 대면 상담도 했고, 위기 상황일 때는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 와중에 자살 예방 교육의 토대가 될 연구도 진행해야 했다. 다행히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통해 전문 연구팀과 협업하며 2천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한국 동성애자, 양성애자 건강불평등> 연구는 전문가 협업하며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많이 커졌어요.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덕분에 성소수자의 정신 건강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어요. 이 연구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작년에는 종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성소수자가 많은 지역인 만큼 상담 수요는 많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담당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무지개돌봄>만큼 적절한 교육은 없었다. 마음연결 팀은 매년 연말 <무지개돌봄>의 내용을 현실에 맞게 수정, 보완한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작년 10월, 보건복지부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으로 인증도 받았다.
“그동안 한국에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 교육 자체가 없었어요. 당연히 국가에서 인정한 사례도 없었고요. <무지개돌봄>은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한국 최초로 정부에서 인증한 사례에요. 제도권에서도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거죠.”
작년부터는 강사 양성 교육도 신설해 열 명의 참여자가 이수를 마쳤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은 있지만, 양성한 강사들이 직접 하는 교육도 진행했다. 내년에는 상시적인 전화 상담 창구도 만들 예정이다. 자살을 정말 막을 수 있냐는 마지막 질문에 박재경 팀장은 이렇게 답했다.
“막을 수도 있고, 못 막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도우려고 했던 마음, 상대의 힘듦을 듣고 받아들이려고 했던 그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이 쌓이면 자살 예방이 됩니다. 신기하게도요.”
친구사이는 ‘변화의시나리오’를 통해 한국 최초로 성소수자 맞춤형 자살 예방 교육인 <무지개돌봄>을 개발했다. 한국 최초로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성소수자 교육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이들은 <무지개돌봄>을 통해 성소수자 당사자와 자살 예방 기관의 담당자, 의사, 시민활동가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며 성소수자 자살 예방을 위해 힘쓰고 있다.
글 |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