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임팩트o 지원모임 : 해외입양인네트워크 시민모임 해외입양인네트워크는 ‘변화의시나리오’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해외 입양인의 현실을 알렸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강연, 워크숍, 책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케어팜이라는 해외 입양인들의 커뮤니티 공간도 운영 중이다. 앞으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해외 입양인과의 연대를 통해 해외 입양의 문제를 알리고 제도적인 개선 방안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
“입양,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한 아이의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2020년 입양의 날을 기념해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슬로건이다. 입양은 분명 한 아이의 세상을 바꾼다. 문화도, 인종도, 언어도 다른 먼 이국땅으로 가야 하는 해외 입양은 더더욱 그렇다. ‘시모나 은미’ 는 세 살 때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다. 타지로 떠나는 긴 비행길 내내 소리 죽여 울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태어난 곳에서 뿌리 뽑혔다는 상실감을 느꼈다. 그의 앞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의 삶이 놓여 있었다. 매일 소화할 수 없는 우유를 마셨고, 낯선 침대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새벽이면 침대에서 기어 나와 찬 바닥에서 자는 그를 네덜란드의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시모나란 새 이름을 얻었지만, 이름을 물으면 그는 또박또박 한국 이름 ‘은미’를 말했다. 한국인도 네덜란드인도 아닌 그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 친구들은 생김새가 다른 그를 비난과 모욕으로만 대했다.
시모나 은미뿐 아니라 많은 해외 입양인들이 인종차별로 고통을 받는다. 입양된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가정폭력이 없었더라도 어린 시절 갑자기 낯선 언어와 문화에 노출되며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해 평생을 혼란 속에서 보내는 사람도 있다. 시모나 은미는 “좋은 가정에 입양될 확률은 사실상 로또와 같다”라고 말한다. 해외 입양인의 자살률이 일반 사람들에 비해 3.7배나 높다는 스웨덴 보건복지청의 연구 결과가 그 사실을 방증한다. 나는 왜 그 어린 나이에 먼 타국으로 보내져야 했을까. 시모나 은미는 질문을 품고 스무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정부는 ‘입양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입양이 누군가의 삶을 구원한다면 노인과 노숙인은 왜 입양하지 않는 걸까요? 아이를 잃어야 했던 가난한 내 어머니는 왜 나와 함께 데려오지 않았던 걸까요? 그들은 자기 결정권이 없는 어린아이만을 원해요.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려는 욕심을 채우고, 한국은 그 대가로 입양 수수료를 벌죠. 한 친구는 양부모를 바이어(Buyer)라고 불렀어요. 해외 입양은 이미 산업이에요.”
그동안 한국에 알려졌던 해외 입양인은 모두 성공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시모나 은미는 가려져 있던 진실을 알리고자 해외 입양인이 모이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다. 다양한 나라로 입양됐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언어의 장벽도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의 통역자를 자처하며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에 돌아오는 해외 입양인은 매해 100여 명. 언어가 다르고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 사회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그러다 보니 ‘해외입양인네트워크’에 와서야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는 해외 입양인이 많았다.
2019년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시나리오’와 만나며 ‘해외입양인네트워크’는 목소리를 더 키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 입양인 당사자들이 강단에 오른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해외로 보내기만 하면 해피엔딩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날 강연자 중 김송(가명)이라는 해외입양인은 입양 가정에서 겪었던 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했어요. 한국에 자살하려고 돌아왔다고 할 정도로 그는 큰 상처를 입었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던 목소리였어요.”
김송 씨(가명)는 입양 가정에서 겪은 문제를 어린 시절 온전히 홀로 떠안아야 했다. 한국 정부나 입양 기관은 해외 입양 이후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관리하지 않는다. 시모나 은미는 그것이 바로 해외 입양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정말 한 아이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먼 나라로 보내고 모른 척하지는 않겠죠. 저는 묻고 싶어요. 왜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공동체에 해외 입양되는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는 걸까요? 한국 사회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 걸까요? 과연 그 아이들을 먼 해외로 보내는 게 맞는지, 한국에서 어떻게든 키우기 위해 그 문제에 직면하는 게 맞는지 묻고 싶어요.”
작년 그는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을 통해 한국 해외 입양인들의 에세이집을 냈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올해는 세계 각지에서 해외 입양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 중이다. 변화를 위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에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펀딩을 해서 “케어팜”이라는 공간도 마련했다. 갈 곳 없는 해외 입양인의 임시 거처이자, 외로운 명절에 모일 수 있는 파티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곳에서 해외 입양인들은 서로 연결되며 지난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내고 있다. 이런 연결망을 시모나 은미는 전 세계로 확장해 대륙별 해외입양인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다. 그가 이런 노력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어떤 아이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는 사회가 해외 입양인의 목소리를 경청할 때까지 지금의 행보를 멈추질 않을 생각이다.
글 | 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