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는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 숨을 후~후 불며 쉴 수 있도록, 변화의 증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5월은 어린이 권리 증진을 위해, 변화를 후후 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산청에서 어린이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정푸른 활동가는 어린 시절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선생님이 나를 아무렇게나 집어서 옮겼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또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을때 어떻게 부끄러웠는지 세세하게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삶에 어떤 파동을 만드는지 알게 된 후부터 어린이 편이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죠.

대안학교 자원교사가 되었고, 마음이 맞는 학부모들과 대안학교를 직접 만들어 1년 간 운영했습니다. 2021년에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작은변화 공모지원사업을 통해 산청 지역에서 어린이 권리 옹호 활동을 진행합니다.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들이 뿌듯해하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동네에 이런 어른도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오랜 기간 어린이와 함께 해온 정푸른 활동가에게 ‘어린이편에 서는 법’을 들어봤습니다.

정푸른 활동가

정푸른 어린이 권리 옹호 활동가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 ‘어린이’입니다.

Q. 대안학교인 ‘방정환하늘학교’를 창립하신 이력이 있는데요. 어떻게 학교를 만들 생각을 하시게 되었나요?

A.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도 대안 교육을 받았었고, 그때의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산청의 한 대안학교에 교사로 가게 됐어요. 또 그곳에서 마음과 뜻이 맞는 분들과 만나서 2019년 3월, 방정환하늘학교를 창립한 거죠. 저와 부모님들이 선생님 역할을 어느정도 했고요. 교사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도 있어서 음악 수업, 책 읽기 수업을 해주시기도 하면서 1년을 운영하다 종료했습니다. 사실 학교를 준비할 때도 그렇고 학교를 세운 이후에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생활을 해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설립 전, 겨울방학에는 부모를 떠나 저와 한 달간 살아보기도 했죠.

Q. 어린이들이 부모를 떠나, 따로 살았다는 말씀이시죠?

A. 네 맞아요. 저는 최소한의 어른으로 옆에 있고, 무엇이든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제일 부족한 지점이기도 하거든요. 지식은 훨씬 많이 쌓였을지 모르지만 자기 옷을 개거나, 세탁하는 것, 또 밥을 해 먹는 건 잘 몰라요.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한번 경험해보고, 배우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도 정해보는 일을 해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해 먹고 우리가 정한 활동 혹은 계절에 맞는 활동을 했죠. 점심 먹고 같이 놀러 다니고, 저녁에는 일기 쓰거나 영화 보는 식이었어요.

Q. 아무리 활동가님을 믿는다 해도, 양육자가 어린이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A. 저도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추측해보면 당장 회사를 가야하니 아이들이 있을 곳도 필요하기도 했고, 또 방정환하늘학교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백수가 된 저를 먹여 살리려고 그러셨나.(깔깔) 사실 저보다는 아이들을 더 믿어서 그랬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좀 부족해도, 아이가 휘둘리고 변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한 번 맡겨보신 게 아닐까요?

Q. 어린이들이랑 2년 정도 시간을 보내신 건데, 사실 사명감 없이 가능한 일인가 싶거든요. 그 근원에는 무엇이 있나요?

A. 근원은 모르겠어요. 다만 채식, 동물권 등 사회 이슈에 대해 자기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존재가 바로 어린이인건 확실해요. 저는 어린 시절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사람이라서, 그 시절이 얼마나 사람을 만드는데 중요한지 알거든요. 다 커서야, ‘어른들이 그랬으면 안 됐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의 기억으로 나중에 아프더라고요.

발 디딘 이곳, 산청의 어린이들을 바라봅니다.

Q. 서울에서 혁신활동가로 일하시다가, 대구에서 산청으로 주거지 이동이 많았어요. 산청에 정착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대구에서 태어났고, 또 서울에서도 살아봤지만 그 어디도 고향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산청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대안학교에서 (자원)교사를 할 때만 해도, 그저 자연풍경이 좋은 곳이었죠. 주변 사람들이 텃밭 가꾸고 배추, 상추 다 키워도 근처에도 안 가봤어요. 근데 아이들이랑 살면서 농사하는 ‘척’으로 시작한 게 재미가 됐고요. 방정환하늘학교를 하면서 진짜 산청을 보게 됐어요. 지역 주민들도 만나고, 장터에도 나가고, 동네 모임에도 나가다 보니까 ‘이제 내가 산청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시에서는 카페 골드 등급, 영화관 회원 VIP를 유지했었고, 화장품 가게도 지나친 적이 없거든요. 근데 카페나 영화 보러 안 간다고 별스러운 일이 생기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더 재밌고 모든 게 가벼워졌어요.

Q. 한 지역에 오래, 애정을 지니고 머무르다 보면 현실이 더욱 또렷하게 보일 것 같아요. 산청 어린이들의 삶은 어떤 것 같나요?

A. 제가 모든 어린이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소극적 돌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긴밀한 돌봄이 없는 거죠. 아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들, 또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즉, 다치지 않게, 굶지 않게, 봐줄 사람은 있지만 어린이들이 성장하도록, 반짝이는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긴밀한 돌봄은 부족한 것 같아요.

Q. 곧 산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진행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을 주로 물어보실 예정인가요?

A. ‘산청에 어떤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대우를 받고 싶어요?’ 이런 질문들로 구성하려 해요. 또 가능한 어린이들과 함께 ‘구술생애사’를 만들어보려 해요. 어린이들의 인생을 쭉 한 번 들어보는 거죠. 자라면서 어떤 기억을 쌓았는지, 또 어떤 분위기에서 지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5월 5일, 어린이에게도 답이 있어요.

Q.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사랑하는 내 동무야’ 행사를 진행하셨어요. 행사는 어떠셨어요?

A. 어린이 20~30명, 어른도 비슷한 규모로 와주었는데요. ‘오늘은 말할 거야!’라는 코너를 진행했어요. 어른들은 고민을 써서 넣고, 어린이들은 상담해줄 의사가 있다고 하면 상담사로 지원했어요. 진행은 잘 안됐지만, ‘하기 싫은데 자꾸 해야 한다’는 어른의 고민에 ‘그래도 노력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답을 해주더라고요. 답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른들에게만 답이 있는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죠.

어린이날, 산청에서 진행한 '사랑하는 내동무야'

어린이날, 산청에서 진행한 ‘사랑하는 내동무야’

Q. 하반기에는 어린이 권리에 대해 어른들에게 알려주는 ‘어린이 알아가기 강연회’를 준비하고 계시죠. 어떤 어른들이 들어보면 좋을까요?

A. ‘난 어린이에 대해서 어려운거 없는데?’, 혹은 ‘이런 어린이 귀찮고 불편하다’는 두 부류의 어른들이 꼭 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는게 이 지역에서 처음이거든요.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모였으면 좋겠고요.

Q. 어린이들과 지내면서 활동가님의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A. 제가 가지고 있는 극복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어린이들이랑 지내면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제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매일 생겼어요. 아이들은 그 자체였는데 아이들이 저에게 미친 영향이 컸던 거죠.

Q. 활동가님이 만드려는 세계와 반대로, 어떤 어른들은 보호 혹은 존중이라는 이름을 달고서도, 무심하게 선을 넘곤 합니다. 어린이 세계에서 목격한 어른들의 무심한 순간들이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반대로 어린이를 하나의 사람으로 존중했던 어른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A. 무심한게 일상이예요. 동네 도서관이나 코로나 검사를 받을 때도 어린이들에게 함부로 하는 어른들이 있더라고요. 그 관계는 어린이 대 어른이 아니라, 이용자와 손님이라는 사회적 관계거든요. 그런데도 편하게 이야기하고, 무시하는 태도죠. 반면 어린이를 존중하는 어른들은 언어가 달라요. 예전에 ‘만나면 만날수록 넓어지는 세상’이라고 학교에 있을때 어른들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을 했었어요. 아무리 재밌고 좋은 프로그램을 해도 양육자가 ‘우리 애 보낼게’ 이런 말을 안하더라고요. ‘우리집 어린이랑 상의해볼게’라고 하시죠. 어린이를 어떻게 보내고 말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른들도 있는데, 어린이를 다르게 대하는 순간을 관찰해보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일단 존댓말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길가다 누가 반말하면 어린이도 기분 좋을 리 없거든요.

Q. 활동가님은 어린이들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나요?

A. 어린이 해방을 꿈꾸는 사람, 거기에 뭐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린이에 대한 윤리적 압박이 여전하거든요. 착해야 하고, 얌전해야 하고, 어른이 생각하는 틀안에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죠. 어린이가 한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회복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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