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 드러나듯이 공익단체의 활동에 ‘스폰서’가 되기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시민사회의 시의성있는 단기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졌는데요. 2020년 12월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의 선정단체인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 보낸 사업후기를 전해드립니다. |
조작간첩은 먼 이야기? 우리 주변 국가폭력사건 피해가족 2세의 목소리
국가에 의한 간첩 조작, 우리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수사반장’같은 곳에서 나오는 군사정권 시절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실제 간첩 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가족은 우리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는 인터뷰를 통해 30대에서 50대의 자녀들이 누명을 쓴 가족으로 인해 생긴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교도소 담장 밖에서 살아가야 하는 피해 가족들은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있는 부모도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야 했지요.
이번 인터뷰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20대의 자녀들을 둔 고문 피해자(20년 복역, 2020년 11월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어렵게 취업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셨습니다. 간첩, 빨갱이, 전과자라는 낙인, 그리고 연좌제는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또, 이번 인터뷰의 자녀들 3명 중 2명은 ‘고아’처럼 자란 피해자들이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부모님을 만나지 못하거나,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홀로 벌어 생존해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자녀,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결국 해외로 이민을 선택해야만 했던 피해자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시민운동가로, 학원 강사로, IT전문가로 살고 있습니다. 또 이번 인터뷰에는 담지 못했지만 식당을 운영하거나, 서점을 운영하거나, 회사원으로, 농부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과자 자녀의 망령은 떄로 군에서의 폭력으로, 회사에서의 인사 불이익으로 피해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나의 잘못, 나의 전과가 아님에도 그들은 그렇게 사회에서 또 다른 차별을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풀지 못하는 숙제가 있으니 그것은 가족과의 관계회복입니다. 수년에서 수십 년간 옥살이를 위해 떨어져 살다 돌아온 부모와의 관계가 여전히 그들에게는 회복되지 못하는 숙제였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대하는 법에 대해 서툰 아버지와 부모에게 살갑게 대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자녀의 냉랭함은 결국 40대, 50대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봉합될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상처였습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회복은 역시 개인의 노력이 아닌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편견과 차별의 인식이 변해야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사회와 제도가 더더욱 더 많은 체계와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소책자의 말미에 지금까지 재심을 통해 무죄가 되었던 사건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수천 건의 국가보안법 사건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재심무죄사건은 200여건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많은 사건들의 피해자들이 속해 있는 가족공동체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구술녹취에서 겨우 3명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사회가 그들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국가의 사죄나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이근안 수사관이나 검사, 판사들은 단 한 번도 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과는 가해자가 사과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충분하다고 말할 때까지 끊임없고 지속적인 사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의 안정성을 이야기하는 검찰이나 법원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이번 인터뷰에 응했던 국가폭력자녀들을 떠울립니다. 한명의 시민의 삶을 망가뜨린 것이 아닌 그와 그의 공동체를 무너지게 한 그 책임은 왜 여전히 묻지 않냐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바로 민주사회로 가는 길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회복을 이뤄내는 것이 바로 인권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러한 피해공동체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끊임 없이 듣고 기록할 것입니다. 그를 통해 고문이나 반헌법행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방법을 우리사회의 고민으로 끊임없이 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